문자 한 통

by 센터 posted Jan 0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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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맛보는 한가한 오후.
인터넷 바다를 헤엄지고 있는 와중에 휴대폰이 ‘지잉’ 하고 울린다.
한 번만 울리고 마는걸 보니 문자나 카카오톡 알림인가 했다. 역시나.
모르는 번호의 문자가 와 있었다. 내심 머릿속으로 동네 마트나 은행, 이것도 아니면 휴대폰 회사인가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동네 마트에서 보낸 문자였다.
‘대림홈마트입니다. 11월 5일자로 사정상 폐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혹 누적된 포인트 사용을 아직까지 하지 않은 고객님들께서는 폐업 전에 사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대림홈마트을 이용해 주신 고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유 1,000L가 반값, 소고기 폭탄 세일, 시금치 한 단 500원 등등 평소 문자와는 다른 내용에 놀라면서, 성실해 보였던 주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 기억으론 가끔 이용하던 그 마트의 주인이 바뀐 건 일 년도 채 되지 않았다. 뭔가 얍삽해 보이던 전 주인에 비해 사람 착하게 생긴 새 주인은 종업원과 같이 물건을 열심히 닦고, 또 진열도 하면서 계산까지 하는 친절한 사람이었다.
동네엔 이 대림홈마트 말고도 다른 마트가 하나 더 있긴 했지만, 두 블록이나 떨어져 있는 지라 이곳엔 그럭저럭 드나드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그러던 중 7월경인가 대림홈마트에서 몇 걸음 떨어진 새로 지은 건물 1층에 엘마트라는 대형마트가 들어섰다.
그 당시 개업 준비를 하고 있던 엘마트를 지나오면서 속으로 ‘아휴. 이제 대림홈마트는 어쩌냐….’ 했는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엘마트가 개업하자마자 대림홈마트에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겨 버린 것이다. 
아무리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세상이라지만 막대한 자본과 물량을 무기 삼아 이렇게 마구잡이식으로 동네 상권을 무너뜨리는 대형마트의 횡포가 너무나 야만스럽고 비열하게 느껴졌다. 그것도 가진 거라곤 성실한 몸뚱이와 근면함밖에 없는 힘없는 동네 작은 마트를 타깃으로.
난 사람들이 바글대는 곳도 싫고, 줄 서있는 것도 귀찮고 또 이렇게 상도(商道)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엘마트가 너무 얄미웠다. 그래서 평소에 물건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구매하던 것을 멈추고 대림홈마트에서만 구매하기 시작했다. 나름 지극히 소심한 저항이긴 했지만 대형마트라는 골리앗과의 싸움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었다. 또 마음 한켠엔 대림홈마트가 이 어려운 난관을 잘 극복하여 보란 듯이 제 위치에 자리 잡을 수 있길 바랐다.
그러나 역시 역부족이었나 보다. 물건 가격도 낮추고, 종류도 늘리고, 또 여러 이벤트 세일도 하며 사방팔방 부단히 애를 써 봤지만 결국 ‘폐업’이라는 선택밖에 없었던 것 같다. 이런 대림홈마트의 모습이 늘 주변에서 일어나는 또 다른 우리네 현실이기에 마음 한구석이 짠하게 아려 왔다.
늘 ‘공존(共存)과 상생(相生)’을 말하면서도, 실제는 이 단어들이 전혀 통용되지 않는 각박하고 냉혹한 이 세상. 모처럼 별 생각 없이 느긋했던 오후가 친절한 폐업 안내 문자 한 통에 씁쓸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김현하|누구나 손쉽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나 소설을 좋아하고, 한번 시도한 단편소설의 호평에 힘입어 착각의 늪을 헤엄치고 있는 사람입니다. 상상은 나의 힘! 공공운수노조·연맹에서 일하며, ‘화초(花草)’ 무지 사랑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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