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by 센터 posted Mar 1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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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최대한 진정성 있게 쓰자.’ 하면서도 막상 부끄러운 얘기를 나누려니 망설여진다. 자기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고, 난 융통성과 사교성도 부족하고 때로는 이기적이기까지 해 인간관계가 그리 넓지 못하다. 잘 알면서도 고치기가 쉽지 않다. 시쳇말로 자존심 빼면 시체라는 말은 나에게 딱 어울린다. 그래서 사람 사귀기가 쉽지 않다. 주위에 친구가 많지 않은 건 순전히 내 탓이다. 다만 한 번 마음을 주면 오래 간다. 
중고등학교를 같이 다니고 지금까지 계속 깊은 만남을 이어온 오랜 벗들이 다섯 있다. 거의 30년,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 흘렀다. 그 시간만큼 친구들과의 추억도 많다. 한없이 정답고 기뻤던 순간도, 또 한편 아쉽고 쓰라린 일들도 있다. 이제는 각자 가정을 꾸리고 일터에서 평범한 40대 가장으로 살아간다. 서울, 부산, 세종, 거창 등 사는 곳도 제각각이라 명절 때가 아니면 만나기 어렵다.
그런데 오랜 세월 무탈하게 이어온 우리에게 최근 몇 년 동안 엄청난 일이 있었다. 나와 한 친구의 불화와 모임 탈퇴, 경솔했던 내 행동이 큰 화를 불렀다. 3년 전, 당시 나는 그에게 업무상 부탁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20만 원의 손해를 입혔다. 여기서 20만 원이라고 하자니 스스로도 좀 그렇다. 돈보다는 내가 그에게 입힌 마음의 상처가 훨씬 더 했으리라. 아무튼 겉으로 표현하면 그렇다. 나는 그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고, 그사이 친구는 나에게서 또 우리 모임에서 멀어져갔다. 언젠가부터 모임에 나오지 않는 그를 보며 나는‘저 놈이 왜 저러지?’ 하고 별 일 아닌 듯 스쳐 넘겼다. 따로 만날 기회도 없었다. 그러다 재작년 말 친구들과 함께한 제주도 여행(그 친구는 오지 않았다.)에서 다른 친구에게 그동안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 순간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딱 그 심정이었다! 바로 마음을 털어놓고 용서를 구하면 되었는데…. 이후 최근까지 혼자만의 속앓이를 해야 했다. 지금 돌아보니 나 스스로에게 무척 안타깝고 부끄러운 시간들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둘 간의 자존심이 단단한 벽을 쌓았고, 그만큼 마음의 앙금도 계속 쌓이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결자해지(結者解之)라고, 원인을 제공한 내가 풀어야한다는 걸 잘 알면서도 먼저 다가가지 않은 내 잘못이 컸다. 고의든 아니든 나로 인해 손해를 끼쳤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는데 도무지 내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 결국 쓸데없는 자존심이 문제였다. 안재욱의 노래 〈친구〉를 들으면서 기분이 울적했던 적도 많았고, 주말에 낮잠을 자다가도 순간순간 떠오르는 그 친구 생각에 불편하게 깬 적이 여러 번이다. 그렇게 두 해가 훌쩍 흘렀다. 이러다 영영 친구와 헤어지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지난 연말에도 더 늦기 전에 내가 먼저 사과해야겠다고 마음먹고서도 또 어물쩍 넘기고 말았다.
그러다 마침내 이번 구정 명절에야 어려운 숙제를 풀었다. 아홉 시간 운전 후 자정이 되어서야 고향에 도착해 무척 피곤했지만, 그 친구가 모임에 나왔다는 소식에 짐을 풀자마자 한 달음에 달려갔다. 다른 친구들의 도움이 컸다. 다섯 놈이 모여 이미 소주 여러 병을 비우고 있었다. 다들 어찌나 반가운지, 특히 그 친구를 오랜만에 보니 말로 표현 못 할 만큼 기뻤다. 30년을 이어온 친구 사이에 그동안의 불화는 잠시 스쳐가는 일이었다. 잠깐의 어색한 침묵도 없이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는 함께 마음껏 어울렸다. 그 자리에서 서로 굳이 미안하다 말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이미 서로의 마음을 읽고 있었다.
이 글을 쓰던 중 그 친구와 통화하며 정식으로 사과의 마음을 전했다. “정말 정말 미안하고 우리 만난 세월을 생각해서 한번만 봐줘라. 앞으로 내가 정말 잘 할게. 아프지 말고.”
이제서야 마음이 편하다. 이래서 죄 짓고는 못사나보다. 내 경솔함과 옹졸함, 쓸데없는 자존심 싸움으로 흘려보낸 시간들이 그렇게 후회될 수가 없다. 가까운 사람이 가장 큰 상처를 준다는 말, 이번 일로 뼈저리게 느꼈다. 친구라는 존재만큼 팍팍한 세상살이에 기쁨을 주는 소중한 존재가 있을까. 비 온 뒤 땅이 굳는다고, 이번 일을 계기로 내 오랜 벗들과 멋진 만남 어어 가고 싶은 마음 더욱 간절하다.

 

 

글|이응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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