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에서

by 센터 posted Apr 2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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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하| 쉼표하나 2기 회원



새벽 댓바람부터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무슨 애가 그리 아침잠이 많은지. 옛날 같으면 할머니 소리나 들었을법한 나이임에도 아무리 소릴 지르고, 두들겨 패 봐도 도무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음··· 엄마 조금만···.”, “응. 알았어. 일어날게.” 하더니 또 드러눕는다.

“아휴. 저걸 믿은 내가 바보지.”

계속 이러다가는 혈압 올라 제명에 못 죽을 것 같아 포기하고 혼자 가기로 했다.


이른 새벽, 사람이 제법 많다.

‘나 같은 늙은이는 그렇다 치더라도, 저눔의 젊은 여편네들은 잠도 없나?’

예상치 못한 많은 사람들로 괜한 짜증이 났다. 이 짜증엔 아직도 자고 있을 딸년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대충 몸을 씻고, 온도가 제일 높은 녹차탕 속을 비집고 들어갔다. 한동안 몸을 푹 담그고 있으니 점점 기분이 좋아졌다.

“아이고, 시원하다.”

며칠 전부터 아프던 팔과 허리가 다 나은 것처럼 느껴진다.

‘역시 목욕탕에 오길 잘했어. 이따가 때 좀 밀고, 한증막에 들어가서 또 지져야지’

딸이 오거나 말거나 한켠에 자리를 잡고 앉아 때를 열심히 밀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등은 나중에 밀기로 하고, 한증막 안으로 들어갔다.


땀이 또르르 팔을 타고 내려간다. 얼마나 있었을까. 얼굴이 화끈거려 한증막을 나와 샤워기의 찬물을 틀었다. 시원한 물줄기를 맞고 있으니 화끈거렸던 얼굴이 잠시나마 진정이 된다. 이렇게 한증막과 샤워기 사이를 몇 번 오가고 있는데, 앉아있는 사람들 사이로 코딱지 만한 눈을 찡그리면서 두리번두리번하고 있는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 모양이 꼭 딸 같다. 아니 딸이다. 안경을 벗어서인지 인상이란 인상을 다 쓰면서 나를 찾고 있는 딸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참 한심하기 그지없다. 아침잠도 많지, 나이도 많지, 눈도 어둡지···. 아이고, 저걸 누가 데려갈란가. 쯧쯧쯧.


곁으로 다가가 툭 치니 “어디 있었어? 아무리 찾아도 없던데.” 한다.

“어딨긴 어딨어. 저기 한증막 들어갔다 샤위기 앞에 계속 서서 물 좀 맞고 있었지.”

앉았던 자리를 딸한테 넘겨주고 다시 한증막 안으로 들어갔다. 딸은 한증막을 싫어하는지 아주 가끔 목욕을 같이하는 날이 있으면 목욕만 쏙 하고 먼저 집으로 가버렸다. 한증막 안에 좀 있으면 몸이 노곤노곤한 게 팔과 허리 통증도 가시고 참 좋은데, 딸이 이 기분을 알 나이가 됐음에도 한증막을 싫어하는 건 좀 의외다.


딸의 목욕이 거의 끝나갈 즈음 마지막으로 머리를 감으려고 샤워기 앞에 섰다. 기분 탓인가? 머릴 감고 있는 나를 딸이 쳐다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딸 등만 밀어주고 나가려고 자리로 갔더니만, 딸은 진짜 나를 쳐다보고 있었는지 잘 보이지도 않는 눈을 끔뻑거리고 있다. 때 안 밀고 뭐하냐고 등짝을 한번 후려치고, 딸의 등을 밀기 시작했다. 살짝 밀었는데도 아프다고 엄살떠는 딸이 얄미워 한 대 더 때렸다. 예전엔 딸이 허리를 접어도 이렇게 옆구리 살이 삐져나오진 않았었는데···. 살에 탄력도 떨어지고, 뱃살은 튀어 나오고. 에구, 관리 좀 할 것이지. 딸의 게으름으로 변한 몸매가 아쉬워 괜히 성질이 났다. 에이, 더 늙기 전에 아무나 빨리 데려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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