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춤

by 센터 posted Mar 1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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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현하 쉼표하나 2기 회원



“얼씨구!”

 “좋다!”

목구멍을 타고 추임새가 절로 튀어 나온다.

‘덩더쿵 덩더쿵 덩기덩기 덩더쿵’ 장고소리가 빨라질 때마다 들썩이는 어깨와 무릎을 치는 양쪽손도 덩달아 빨라졌다. 어찌나 때려댔는지 무릎 팎이 얼얼하다. 장고소리가 서서히 느려질 무렵 막걸리를 한 잔 털어 넣었다. 술이 좋아서인지 흥이 나서인지 “아이고, 조오타”가 또 터져 나왔다.  


풍물을 오랫동안 해온 지인이 이번엔 풍물 공연이 아닌 탈춤 공연에 초대했다. 마침 큰 집회도 없었던 주말인지라 그를 같이 아는 지인들과 공연을 보러갔다. ‘목탈’이라는 탈춤 모임의 10주년 발표회였다.


탈춤 공연인 만큼 도착한 공연장엔 사람들이 바닥에 삼삼오오 모여 삐뚤빼뚤 자유롭게 퍼질러 앉아 있었다. 우리도 공연이 잘 보인다고 지인이 추천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시루떡과 두부김치 등 안줏거리, 막걸리가 제공되었다. 춤꾼들과 관객이 같이 어우러질 수 있도록 하려는 주최 측의 배려였겠지만, 난 ‘이거 이거 관객들에게 술을 먹여 춤꾼들의 춤사위가 틀려도 못 알아보게 하려는 고도의 전략 아냐.’ 하고 잠시 엉뚱한 생각도 했다.


매우 섬세하고 정적이어서 보는 이들의 숨이 다 멎어버릴 것만 같은 여는 춤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춤판이 벌어졌다. 장중하게 시작하여 신명난 춤사위로 마무리하는 사상좌춤, 투박한 듯하면서도 남성적인 춤 맛을 잘 간직한 원양반춤, 그리고 영남 말뚝이춤.

쉼표2.탈춤.jpg‘목탈’ 10주년 발표회


이렇게 몇 차례의 레퍼토리가 지난 후 지인이 출연한 봉산탈춤 8먹중 춤이 시작되었다. 여덟 명의 춤꾼이 차례로 나와 짧은 재담과 함께 각자의 춤을 추는 형식인데, 탈은 쓰지 않고 추는 춤이라 지인의 얼굴을 알아 볼 수 있었다. ‘목탈’ 10주년 발표회

예전에 큰 병치레를 한 사람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앉았다가 뛰어 오르는 그의 몸짓은 힘이 넘치고, 여유롭기까지 하였다. 눈과 입이 거의 닿을 듯한 얼굴로 마당을 이리저리 뛰며 돌아다니는 그와 일곱 명의 신명나는 춤꾼들을 보고 있으니 세상의 시름은 모두 날아간 듯했다.

‘저기에 한번 뛰어 들어가 봐?’하는 취객이나 할범직한 상상초월 행동까지 발동하는 것이, 옆에 앉은 지인의 “이따 마지막에 다 나가서 한판 추는 거지?”라는 질문만 아니었으면 아마도 뛰어나갔을지도 모르겠다. 잠깐 경거망동할 뻔했던 정신을 추스르며 계속 춤판 속으로 빠져들었다.   


통영오광대놀이 말뚝이춤, 노장소무춤, 문둥북춤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그나마 내가 알고 있는 봉산탈춤의 백미 중의 하나인 미얄과장이 나왔다. 헤어졌던 미얄할멈과 영감과의 상봉, 영감의 배신, 그리고 죽은 미얄할멈의 영혼을 달래는 굿으로 마무리되는 미얄과장. 저고리 밖으로 뱃살이 통통하게 튀어나온 미얄할멈과 허세가 묻어나는 영감의 춤과 노래, 연극적 재담이 함께 잘 어우러져 여러 레퍼토리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는 과장이 아닌가 싶었다.

미얄과장을 끝으로 춤판이 마무리될 즈음 양주별산대놀이 맞춤이 시작되었다. 이 부분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즉흥적으로 관객과 함께 어우러지는 춤판이다. 춤꾼들이 춤을 추면서 관객에게 나오라고 손짓을 하자 우린 기다렸다는 듯이 마시던 막걸리 잔을 내려놓고 달려 나갔다.


따로 배워 본 적이 없는데도 신기하게 덩실덩실 춤이 잘 춰졌다. 어깨와 팔을 이리 덩실 저리 덩실, 고개도 오른쪽으로 까딱 왼쪽으로 까딱, 다리도 이리 올렸다 저리 올렸다. 아마도 내 몸 어딘가에 나도 모르는 춤꾼의 피가 흐르고 있었나 보다. 어린아이들도, 젊은 학생들도, 내 또래의 중년들도, 흰머리의 할아버지 관객들도 춤과 함께 모두 하나가 되었다. 춤을 추고 있는 이 순간만큼은 머릿속을 채우고 있던 온갖 걱정 근심은 사라지고 없었다. 계약 만료가 머지않은 집 걱정도, 폐업 위기에 처해있는 동생 얼굴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 얼굴이 점점 하회탈로 변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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