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아저씨

by 센터 posted Dec 0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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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고현종 쉼표하나 2기 회원



주인아저씨는 “돈 많이 벌어!” 하며 검은 봉지를 나에게 건넸다.

내가 이집으로 이사 온건 5년 전이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다니는 딸과 한방에서 잠을 자는 게 불편했다. 무리를 해서라도 아이들 방을 줄 수 있는 집을 찾았다. 지은 지 30년이 되었지만 방이 3개였고 거실도 넓었다. 주인아저씨는 “돈 벌어서 집 살 때까지 걱정 말고 살어. 전셋값 올려달라는 말 안 할 테니까?”라고 무리한 대출을 받아 고민 중이던 내 마음을 가볍게 했다.


2년 후 전세 계약 만료를 한 달 앞두고 있을 때 주인아저씨를 우연찮게 집 앞에서 만났다.

“더 살 거야? 살 거면 천만 원만 올려줘. 우리 아들 차를 사 줘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이사 올 때 주인아저씨가 한 말을 상기시켜줄까 했지만, 그런다 한들 상황이 바뀔까 싶었다.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내 대답이 맘에 들었는지 주인아저씨가 웃으며 한 마디 보탠다.

“집 살 때까지 편히 살라구 돈 걱정 말구.”


또 2년이 흘렀다. 집 앞에서 청소를 하고 있던 주인아저씨가 물었다.

“어떻게 더 살겨? 살려면 월세로 하자구.”

당황해서 머뭇거리자 주인아저씨가 말을 잇는다.

“요즘 전세도 없고 다 월세야. 나도 일이 시원찮고 수입이 없어서. 부담 없이 20만 원씩만 내. 강아지 짖는 소리도 크고 요즘 집주인들 강아지 키우면 세도 안 놓는다구.”

강아지까지 들먹이며 월세를 받아야 하는 이유를 말한다.  가족회의를 했다.

“주인아저씨가 월세 20만 원을 내고 살라고 하는데 어떡할까?”

“이사 가요. 자존심 상해요. 집 살 때까지 돈 걱정 말고 살라고 해놓곤.”

둘째딸의 반응이 공격적이다.

“전셋집도 없고 우리가 가진 돈으론 이보다 더 작은 곳을 가야 하는데.”

짐짓 나는 아이들 학교 문제도 있고 해서 그냥 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되물었다

.“다시 단칸방에 살아도 좋아요. 학교 멀어도 버스 타고 다니면 되니까 이사 가요.”

큰딸의 말에도 주인아저씨에 대한 원망이 묻어났다. 아내도 집을 알아보자고 했다.


이사하는 날이다.전화위복이라고 했나? 살고 있는 곳 가까운 곳에 서울시에서 하는 장기전세주택에 넣었는데 당첨된 것이다. 8대1의 경쟁이라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축하해. 우리 집에 세를 든 사람은 다 집을 사고 나간다니까. 이사 가서 돈 많이 벌라고 선물 준비했어.”

주인아저씨는 우리가 아파트를 사서 가는 줄로 안다. 굳이 아니라고 하기 싫었다. 주인아저씨가 돈 많이 벌라고 건넨 검은 봉지 안에는 세제가 들어 있었다. 세제의 크기는 1.5킬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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