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더운 날의 갑질

by 센터 posted Oct 0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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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상선 쉼표하나 2기 회원



연일 열대야 더위 속에 밤잠을 설쳤다. 출근하러 나와보니 동네 길냥이가 차 위에 널브러져 나를 빤히 쳐다본다. 가까이에서 사진을 찍는 동안에 더위에 지쳤는지 차가운 차 지붕 위에서 꼼짝을 않는다.


관리사무소 오전 업무 회의를 하는데 예정에 없던 구청 수목 소독차량이 아파트단지로 들어온다는 연락이 왔다. 2주 전에 했던 수목 소독을 했는데 뭐가 잘못되었나 싶어 가봤다. 일하러 온 구청직원들이 소독을 자주 해주는 데도 벌레가 많다고 민원이 들어왔다며 잔뜩 골이 나있다. 내가 봐도 미안한 일이라 연신 사정을 하며 잘 좀 해달라고 읍소를 했다. 직원들이 일마치고 가면서 날도 더운데 웬만하면 부르지 말라고 짜증을 내며 간다.


8월의 뜨거운 열기가 얼마나 더운지 아침 뉴스에 “지난달 31일 이란의 반다르마샤르 지역의 열지수는 섭씨 74도를 기록했습니다. 이번 더위가 지난 2003년 사우디아라비아의 다란 지역에서 측정된 열지수 81도 이후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뜨거웠던 것으로 관측됐습니다”라고 나온다. 마치 온 세상이 불덩이가 되어 가는 것 같다. 


이 더위 속에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줄줄 흐르는데 열 받고 짜증나는 일이 가끔 있다. 차량통행이 많은 통행로 입구에 상습적으로 차를 주차시키는 주민이 있다. 오가는 차량마다 관리사무소가 뭐하는 거냐고 한마디씩 한다. 그때마다 차량 이동을 요청하면 짜증을 낸다. 그는 평소 조금이라도 자기가 불편한 상황이 있으면 관리실 직원들에게 고압적으로 따지는 전형적인 아파트 갑질 주민이다. 그럴 때마다 과거 입주자 대표회의 임원을 했다고 큰소리치는데 하는 짓은 영 수준 이하다. 


하도 보다 못해 며칠 전부터 상습적으로 세우는 자리에 이동용 주차금지 삼각대를 세웠다.  그 덕분에 며칠은 안 세우더니만 오늘은 그 마저도 치우고 떡 하니 그 자리에 세운다. 급할 때 연락할 전화번호도 부착하지 않아 매번 직접 찾아가 벨을 누르고 차량 이동을 다시 요청했다. 그럴 때마다 적반하장으로 잠자다 일어났다고 엄청 짜증을 내며 차량 이동을 거부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람이 다니는 직장이 아파트 관리사무소다. 24시간 격일제 근무로 아침에 교대하고 들어와 번번이 골탕을 먹이는 짓을 한다. 듣기에 다니던 직장을 은퇴하여 경비원으로 근무하고 있단다. 아마, 전날 24시간 일하다 받은 스트레스를 집에 들어와 이곳에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푸는 것 같다. 마침내 그의 갑질에 열 받은 관리소장이 아예 주차금지 말뚝을 박으라고 지시했다. 다음날 당장 말뚝 사다가 설치하기로 했다. 가뜩이나 더운 날씨에 갑질하는 사람 때문에 더 열 받는 하루다.


벌레 한두 마리 나왔다고 소독한 지 2주 만에 구청 민원 넣어 이 폭염 속에 작업하게 하는 주민, 주변의 불편함은 나 몰라라 하고 자기 편할 대로 살고자 하는 주민. 이제 어느덧 퇴근시간이다. 찬물로 샤워하고 동네 형아에게 맥주나 한 잔 하자고 전화해야겠다. 아윽~ 오늘 밤도 여러모로 열나고 더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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