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생일

by 센터 posted Oct 0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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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은규 쉼표하나 3기 회원



8월 24일, 무슨 날인줄 아는가. 모른다고? 모르는 게 당연하다. 내가 태어난 날이다. 생일이다. 나만 기억하고 내가 나에게 축하해주는 생일이다. 그렇다고 날 고아로 봐주지는 말라. 오해다. 그리고 나에게 생일은 두 개가 더 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또래들은 세 가지 생일이 있다(아닌 경우도 있다). 음력 생일, 양력 생일, 호적(지금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신고된 생일이다.


음력 7월 12일(올해의 경우 8월 25일), 양력 8월 24일, 호적 9월 12일. 나의 생일들이다. 세 가지 생일은 날짜가 다른 만큼 기억해주는 사람과 축하해주는 사람이 다르다. 음력 생일 7월 12일은 어머니가 기억해 주신다. 그날은 아침에 가족들과 미역국을 먹는다. 생일 선물은 없다. 딱, 미역국뿐이다. 호적 생일 9월 12일은 친구들이 기억해준다. 해마다 조금씩 날짜 변동 있는 음력 생일보다 고정적이라서 친구들에겐 그 날짜를 알려주고 축하를 받는다. 그날은 생일 선물이 있다. 물론 케이크도 준비되어 있고 “생일 축하합니다”라는 노래도 들을 수 있다. 정도를 넘는 음주와 웃음도 포함되어 있다.


양력 생일은 오롯이 나만 챙긴다. 너무 늦게 알아서일 것이다. 대학 졸업 때까지 양력 생일을 몰랐다. 정확한 날짜를 몰랐다고 해야 하겠다. 인터넷에서 음력 생일을 양력으로 변환해 준 프로그램을 통해 양력 생일을 찾았다. 그날은 일요일이다. 일요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지금은 이름밖에 기억에 남지 않는 여자 친구 덕분이다. 내가 태어난 날, 세상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고 싶어 그날 신문을 구하러 신문사를 찾았는데, 일요일이라 신문을 발행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 신문을 선물로 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 마음이 가끔 기억이 난다. “내가 태어난 날의 소식을 알려면 다음날 신문을 보면 되지”라고 타박했던 기억이 난다. 미안한 추억이다. 8월 24일에는 선물도 있다. 1년 동안 내가 준비한 생일 선물이다. 그날은 빨간 돼지 저금통의 배를 가르는 날이기도 하다. 배를 갈라 모은 돈으로 공연을 보기도 했고, 만년필을 사기도 했다.


생일은 기쁜 날이다. 여섯 살 딸, 효민이는 7월 1일 자기 생일날 유치원을 안 가겠다고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자기 생일에는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한다. 생일 선물도 자기가 갖고 싶은 걸 골랐다. 난 생일 선물은 한 개뿐이라고 신신당부를 할 뿐이다. 그만큼 좋은 날이다.


기쁜 생일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고등학교 친구 중 홍기라는 놈은 생일을 무척 싫어했다. 선물이나 케이크 없이 축하해 줘서 그러나 싶어 18세 홍기 생일에는 선물과 케이크, 여자 후배까지 대동해 축하 자리를 만들었는데 ‘깽판’을 쳤다. 평소에 그런 놈이 아니었는데. 이유는 바로 밝혀졌다. 홍기가 군대를 가기 위한 ‘신체검사’를 받은 것이다 스물 살 때나 받는 신검을. 홍기의 실제 나이는 우리와 같았는데, 호적 나이는 두 살 위였다. 사연인즉슨 홍기가 태어날 무렵 형이 죽는 바람에 형의 이름과 호적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다. 우리는 짧은 위로와 함께 홍대 허름한 2층 대폿집에서 홍기의 나이를 무기 삼아 소주를 마셨다.

“홍기를 위하여~”

최근 임금피크제 때문인지 정년 퇴직 시기를 늦추거나 연금 수령을 앞당기기 위해 나이 정정 신청이 늘었다는 기사를 접했다. 이래저래 기쁜 날보다 우울한 날이 많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내 생일은 8월 24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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