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갑일 수 있다!

by 센터 posted Jun 0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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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2005년부터 살았으니 십 년이 넘었다. 몇 해 전 우연히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후 지난달까지 대략 사 년 동안 동대표를 했다. 말이 동대표지 뭐 특별히 한 건 없다. 매달 한 번 정기 회의하고, 두세 번 결재서류 사인하고. 회의하면 주는 5만 원 수당을 용돈처럼 받는 재미가 쏠쏠했다. 두어 시간 회의하고 5만 원 받으면 나도 하겠다고 마누라는 부러워했다.

“그럼 당신이 가서 해. 얼마나 머리 아프고 이 말 저 말 말이 많은지 모르면서.”

돌아보니 그동안 꽤 대우도 받았다. 아파트 관리 용역회사에서 명절마다 주는 김이나 식용유 세트 선물도 받았고, 동대표 회장과 부녀회에서 주는 양말도 몇 번 받았다. 무엇보다 경비 분들이 꼬박꼬박 인사하고, 택배 물건 있으면 우리 집에 먼저 가져다 주셨다. 그러지 않으셔도 된다고 몇 번이나 말해도 막무가내였다.

“아닙니다 재무이사님. 당연히 저희가 먼저 해드려야죠.”

대부분 육십 넘는 분들에게서 매번 인사 받고 살자니 한편 미안한 마음이 자주 들었다.


지난달 마지막 회의에서 오랫동안 끌어오던 10년차 하자 보수 문제와 자동문 설치 등 굵직굵직한 아파트 현안을 대략 마무리했다. 그런데 마음에 하나 걸리는 게 있다. 지난 연말부터 제대로 된 경비원 휴게 공간을 마련해 드리자는 말이 있었는데 결국 하지 못했다. 다른 큰 공사들 뒤로 밀린 탓이다. 어쨌든 임기를 마치기 전 마무리하고 싶었지만 다섯 명 동대표 중 한 명에 불과하니 내 주장만 할 수도 없었다.


사실 동대표하면서 가장 무겁게 떠오른 건 ‘나도 갑일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몇 해 전부터 돈으로, 지위로 이른바 갑질하고 진상질하는 막돼먹은 사람들로 사회가 시끄러운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솔직히 그동안 동대표로서 갑질했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들지만, 그건 내 생각이고 다른 사람들 눈으로 볼 때는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매사에 좀 더 조심하고 겸손해야 하는 이유다. 아무튼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니 동대표 경험도 나쁘지 않았구나 싶다.



글 | 이응덕

문학과 역사에 관심 많은 40대 직장인. 글쓰기를 통해 더불어 사는 ‘나와 우리’를 생각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려고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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