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염쟁이 유氏>를 보러가다

by 센터 posted Apr 1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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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쟁이유씨.jpg


한국비정규노동센터 글쓰기모임 ‘쉼표하나’ 회원들과 3년 째 다달이 모임을 해오고 있다. 이번 달엔 연극을 보고 글 합평을 하기로 했다. 입춘이 지난 3월의 어느 주말 오후. 약속 장소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앉아 일행들을 기다렸다. 봄 햇살 따사로움 속에 많은 사람들이 휴일의 여유로움을 느끼며 한가롭게 거리를 거닌다. 사는 게 뭐가 바쁜지 평소 연극 한 편 볼 여유가 없었던 나에겐 “아~ 저 많은 사람들이 연극 보러 온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염쟁이 유氏>  제목 그대로 사람이 죽어야만 만나는 염쟁이 직업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다. 연극 내용에 앞서 주인공 배우가 내겐 무척 인상적이었다. 공연 시작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암전이 걷히고 지긋한 나이의 배우가 홀로 걸어 나왔다. 그는 등장하자마자 관객들의 시선을 끌어들이며 연극 관람에 방해되지 않게 휴대폰을 끄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공연 도중에 입장하는 관객이 있어도 무안하지 않게, 재치 있게 자리에 앉히는 모습을 보면서 그의 내공을 느끼게 됐다. 단순히 대본 대로만 읽고 보여주는 공연이 아닌 배우와 관객들이 소통하고 교감하는 연극의 매력을 새삼 느끼며 공연을 보게 됐다.


이 연극은 염쟁이 일을 마지막 하는 날을 배경으로 시신을 정성껏 염하는 과정들을 소개하며 그 속에 담은 내용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문상객이 된다. 또한 망자의 친지가 돼서 곡을 하며 극에 동참한다. 공연 시작과 함께 염하는 모습을 취재하겠다는 젊은 기자를 ‘민 선생’이라 칭하며 관객 중에 한 명을 선정했다. <염쟁이 유氏>는 민 선생을 비롯한 관객들에게 곡을 하게 하고 술까지 따라 주며 상갓집의 떠들썩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소품으로 진짜 술도 나온다. 염쟁이와 문상객이 주고받는 술 몇 잔과 멸치 안주에 분위기는 더욱 떠들썩해진다.


연극은 1인 다역 모노드라마다. 주인공이 염쟁이에서 조폭, 기자, 장사꾼 등으로 변신하며 여러 역할을 하는 동안 객석의 관객들도 즉석에서 캐스팅되어 또 다른 배우가 된다. 죽은 망자를 정성껏 씻어주고 시신이 오그라들지 말라고 손과 발을 주물러주는 것을 ‘수시’라 하고, 저승 갈 때 배고프지 말라고 입안에 쌀을 넣어주는 것을 ‘반함’이라 한다. 시신을 입관하는 전체 과정을 지켜보며 관객은 점차 구경꾼이 아니라 문상객으로, 혹은 망자의 친지로 자연스럽게 극에 동화되어 간다. 낯선 이웃의 죽음 앞에서도 고인의 명복을 빌던 우리네 삶의 미덕처럼, 망자를 위해 곡을 하고, 상주를 위해 상갓집을 떠들썩하게 하던 모습이 연극 속에 자연스럽게 우러난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 배우와 관객들이 함께 웃고 어울리는 동안 한 시간 이십여 분의 공연이 끝났다. 근 10년 만에 연극을 봤지만 좋은 사람들과 좋은 연극을 봐서 그런지 나에겐 또 하나의 소중한 ‘삶의 쉼표’로 기록될 것 같다.



글 | 이상선

은평지역에서 서울서부비정규노동센터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는 40대 후반의 독거 중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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