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비화秘話

by 센터 posted Sep 0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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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하 쉼표하나 2기 회원



찜통더위 때문인지, 화장품이 피부에 맞질 않아서인지, 얼굴이 계속 가렵고, 뾰루지도 나고 하여 사무실 근처 피부과에 왔다. 작년에도 한번 온 적이 있다는 내 말에 간호사가 묻는다.

“성함이?”

“김현한데요.”

“네··· ··· 없는데요?”

“김_현_하 요. 끝에 ‘아’가 아니고 ‘하’요.”

“아. 예. 있네요. 앉아서 기다려주세요.”

오늘도 여전히 한 번에 통과하지 못했다. 이름이 너무 예쁜(?) 나머지 꼭 두 번 이상은 답해야 한다.

작명소도 아닌, 아버지도 아닌, 집에 마실 온 아버지의 친한 친구 분이 지으셨다는 내 이름. 두 분이 거나하게 만취한 상태에서 졸다가 마시다가 극구 사양하던 아버지의 암묵적 동의까지 이끌어내며 탄생하게 됐다는 작명설화. 그 친구 분이 작명 공부를 하신 분인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미루어 짐작해보면 선견지명과 센스는 꽤 있으셨던 분 같다. 영미, 희순, 복희, 희영, 미영, 숙영 등 비슷비슷한 또래 친구들의 이름에 비해 평이하지 않으면서도 나름 희소성도 있으며, 예쁘고, 좋은 이름을 만들어주셨으니 말이다.


반면에 이름 때문에 겪게 되는 애로사항과 에피소드도 제법 많이 생기게 됐다. 친구들로부터 받은 크리스마스카드나 편지 따위에 이름이 또박또박 제대로 쓰인 우편물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각종 행사에 참여할 때 서명부의 이름 표기나 명찰이 잘못된 경우도 부지기수고, 요즘엔 이메일에서 틀린 이름을 자주 보게 된다.


중학교 2학년 무렵이었을 것이다.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전설의 이대 메이퀸이었다는 깍쟁이 선생이 마침 한참 꽃받침 포즈로 멍 때리고 있던 나를 갑자기 불렀다.

“35번. 김현하.”

“네.”

“누구니? 이름 예쁘네. 일어나 봐.”

영문도 모르게 주뼛주뼛 일어난 내게 왕방울 눈을 가진 그녀가 얼굴을 쭉 한번 훑어보고는, “으응. 이름은 예쁘네. 28페이지 한번 읽어 봐.” 하는 것이었다. 속으로 ‘이건 뭐지? 이 반응은? 쳇!’ 하고, 어린 마음에도 몹시 불쾌하고 기분이 언짢아 모기만한 소리로 책을 읽었던 것 같다. 


또 한번은 전화로 상대방에게 내 이름을 알려줘야 할 일이 있었다. 연세가 드신 분인지 몇 번을 큰소리로 말해도 잘 알아듣질 못하셨다. 이름의 맨 끝 자가 복병이었다.

“김_현_하 라고요. 김_현_아가 아니고.”

“뭐라고요. 김_현_화 라고요?”

“아뇨. 김_현_하. 왜 하수도할 때 ‘하’ 있잖아요.”

“아. 하수도할 때 ‘하’. 김현하 씨.”

“네.”

얼떨결에 흘러나온 하수도할 때 ‘하’를 말해놓고 하늘할 때 ‘하’도 있고, 하나님할 때 ‘하’도 있고, 하루할 때 ‘하’도 있는데, 왜 그 수많은 비유 단어 중에 하수도가 불쑥 튀어나와 버린 건지. 내 스스로도 참 어이없고 기막혀 했다. 상대방도 아마 덕분에 많이 웃었으리라.


그럼에도 메이퀸 선생의 “이름은 예쁘네.”란 말은 이름과 관련된 에피소드 중 가장 기분 언짢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제법 이름만 예쁘다는 웃지 못할 말을 많이 들었음에도 희한하게 그 메이퀸 선생이 한 말이 제일 기분 나쁜 것이었다. 아마도 어른이 질문을 하면 ‘몰라, 싫어, 안 해’ 세 단어만 말한다는 질풍노도의 예민한 시기에 존경의 대상인 선생으로부터 그런 소릴 들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요즘도 이름과 관련된 애로사항은 일상다반사처럼 일어난다. 며칠 전에도 수강 신청한 강좌의 선생이 재차 물었다.

“김_현_··· 뭐라고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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