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실

by 센터 posted Jun 3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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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범 쉼표하나 3기 회원



누군가 묻습니다. 술이 좋아서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니냐고. 물론 술이 들어가면 좋기는 합니다. 알코올 때문에 몸과 정신이 분리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즐거움은 계속될 겁니다. 음주 다음날 어지러움으로 고생을 하거나 어깨에 상처가 왜 났는지 알 수 없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반성을 해보지만 며칠 가지 못했습니다. 지난 4월 사건은 정말 어마어마했습니다.  


닭강정과 맥주, 전과 막걸리, 대구포와 맥주 그리고 문어와 소주가 뒤죽박죽 몸에 들어왔습니다. 떠들썩한 1차, 정치적 이견으로 화가 난 2차, 분을 삭이며 먹은 3차, 걱정 가득한 술자리가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술을 먹고 집에 왔지만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SNS를 보다가 괜히 마음이 상했습니다. 신호음이 울릴 때마다 짜증이 밀려왔습니다. 가입됐던 카톡방 나가기를 누르고, 휴대폰에 있는 SNS용 앱을 모두 지웠습니다. 속이 편해졌습니다.


다음날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겨우겨우 카메라 가방과 갈색 백팩을 매고 지하철을 탔습니다. 몸은 무겁고 어지럽고 다리는 아팠습니다. 빈자리는 없었고, 어깨들이 부딪쳤습니다.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바닥에 놓고, 백팩을 선반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어제 술자리와 SNS 집단 탈퇴를 왜 했는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광화문까지 가는 40분 동안 내내 서있어야 했습니다. 지하철에서 내리면서 ‘어떻게 SNS에 초대해 달라고 하지?’, ‘다들 어제 왜 탈퇴했냐고 물을 텐데’, ‘그런데 내가 왜 앱을 지웠지?’ 어지러움과 함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하면서 사무실로 향했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등에 가방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무거운 카메라 가방 탓에 백팩을 메고 있다고 착각하고 걸어온 것이었습니다. 가방 안에는 노트북, 책, 각종 서류 등 고가의 물품이 들어 있었습니다.

“큰일 났어요”를 외치며 사무실로 들어갔습니다. 박 과장과 김 선배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도대체 어떤 것부터 할지 몰랐습니다. 박 과장은 지하철 신고센터 전화번호를 알려줬습니다. 그 시간대에 지하철 5호선을 수색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사무실을 뒤집어 놓은 이 사태에 사장과 박 과장은 저를 방으로 불러 긴급 비상 회의를 했습니다. ‘어제 왜 SNS 방을 떠났는지. 술자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묻고 싶었을 것입니다. 가방 분실 사태에서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사장은 가방을 찾을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하면서도 분실 시 노역장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고 농담을 했습니다. 박 과장은 그나마 카메라를 놓고 오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위로했습니다.


정확한 시간을 알아야 지하철 차량번호를 알 수 있다는 동료의 조언으로 신용카드 결제 시점을 조회해 봤습니다. 컴퓨터로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은행을 찾아가서 신용카드 사용 내역 조회를 요청하니 담당 직원은 하루가 지나야 확인 가능하다고 답변했습니다.


오전 10시 22분, 5호선 측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 사내는 두 개 차량을 수색했으나 가방을 찾지 못했다는 비보를 전했고, 계속해 찾아보겠다고 말했습니다. 한 동료는 경찰 분실물 센터를 알려줬습니다. 전화를 하니 인터넷 접수 또는 지구대에 방문해 공식 접수를 하라고 알려줬습니다. 번거로운 일이었습니다. 일단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11시 13분. 한 줄기 빛 같은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마천역에서 분실물을 보관 중이라고 했습니다. 가방 회수 소식에 사무처는 모두 박수를 쳤고, 저는 웃으며 인사를 했습니다. 낮 12시 22분, 마천 역에서 신원 확인을 거친 후 가방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왜 SNS를 지우고 퇴장했을까요? 이제 그 질문에 답해야 하는데, 알 수가 없습니다. 나의 감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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