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금을 생각하다

by 센터 posted Jun 3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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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기훈 쉼표하나 회원



‘삼국지를 세 번 읽은 사람과는 언쟁을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국민학생 때 반강제로 구독했던 어린이 신문에는 이 문장을 전면에 내세운 광고가 항상 실려 있었다. 요코하마 미쓰테루의 60권짜리 만화 삼국지의 광고였다. 동년배 남자애들은 다들 어릴 때 이 광고와 만화를 봤을 것이다. 이 만화 삼국지로 처음 삼국지연의를 접했다는 사람도 많다.

나는 고등학교에 올라가는 외사촌 형에게서 만화 삼국지를 물려받았다. 골판지로 된 감 박스 하나가 책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네 번 정도 삼국지연의를 읽었다. 하지만 누구와 언쟁이 붙어도 이길 만큼 영리해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보통 남자애들이 으레 그렇듯 나도 어릴 적부터 자연히 영웅기담을 많이 접하게 되었다. 어른들도 먼저 권하거나 하지는 않아도 책을 읽는 모습을 보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법이었다. 더러는 말을 걸기도 했다.

“니는 그래, 누가 제일 멋있드노?”

어릴 때에야 유비, 관우, 장비가 제일이다. 조조는 밉고, 손권은 왠지 인상이 약하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는 다른 인물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조조를 다시 보게 되고 손권과 장소의 갈등에도 관심을 가지며 읽는다. 누가 “니는 커서 뭐 될 끼고” 물었을 때 망설임 없이  대통령이 될 거라고 대답하던 나이에는 유비, 조조, 손권 말고는 감정이입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언젠가 대통령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나면 연의를 읽을 때도 여러 장수들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그중 내 마음에 가장 밟히는 인물이 우금이다. 우금은 위 무제 조조의 신하였다. 처음에는 포신의 부하였다가 포신이 전투에서 죽자 왕랑을 섬겼다. 왕랑이 우금의 능력을 높이 사 조조에게 천거하여 그때부터 조조의 신하가 된다. 서주 공략부터 동행했으니 위나라의 장수 중에서도 제법 일찍 임관한 편이다. 이후로는 장수(張繡)의 반란을 진압하고 관도전투에서 전공을 세우는 등 무공을 떨친다.


그러다 훗날 형주 공방전에서 관우에게 항복한 것이 문제가 되어 불우한 말년을 보내게 된다. 번성을 포위당한 조인을 돕기 위해 찾아갔으나 한수(漢水)가 범람해 발이 묶여 있는 사이 관우에게 기습을 당해 그대로 투항하고 만다. 이때 조조군에서는 신참인 방덕이 끝까지 저항하여 참수를 당하는데 이것이 알려지자 조조는 “우금을 안 지 어언 30년인데 위기에 닥쳐서 방덕보다 못하다”며 탄식했다고 한다.


우금은 관우에게 포로로 잡혀 있다가 오나라와의 전투에서 관우가 전사하자 오의 포로가 되었다. 결국 조조 생전에는 귀국을 못 하고 조비가 즉위한 뒤에야 위나라로 돌아가게 된다. 돌아간 뒤에는 치욕을 당하며 살게 되는데 대표적인 사건이 조조의 능을 찾아간 이야기이다. 우금이 오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면서 조조의 능을 지나게 되었는데 참배하기 위해 들렀더니 그곳의 벽화 중에 번성 전투를 그린 것이 있었다. 그림에서 방덕은 고개를 들고 관우를 노려보고 있었으나 우금은 무릎을 꿇고 목숨을 구걸하고 있었다. 우금은 그림을 본 후 울분을 견디지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고 만다. 이 벽화는 조비의 지시에 따라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젊어서 한 주군을 섬기고 평생을 종군하여 공을 세웠으며 마침내 나라를 일으키는 데에 큰 몫을 했으나 한 번의 패배로 평가가 완전히 달라졌다.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는 것이 고금의 미덕이라고 하지만, 우금의 일생을 생각하면 가끔 마음 한구석이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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