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가 온다

by 센터 posted Apr 2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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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덕 쉼표하나 2기 회원



자주 운다. 드라마를 볼 때도 다큐멘터리를 보다가도. 출생의 비밀로 얽히고설킨 드라마가 뻔한 막장인 걸 알면서도 그렇다. 저마다 가진 말 못할 고달픈 다큐의 사연들이 꼭 저들만의 것은 아니다. 그래서 더 감정이입 되는지도 모른다. 그때마다 처는 혀를 찬다.

“아이고 남자가 저래 가지고 험한 세상 어째 사노.”

어제도 그랬다.

그제 밤부터 세월호 인양 소식에 마음을 졸였다. 사무실에서 간간이 인터넷으로 상황을 확인했다.

‘내 마음이 이런데 미수습자 가족들은, 또 생존자들은 어떨지.’

처참한 모습을 드러낸 배를 보고 아침부터 또 먹먹해져 손수건을 적셨다. 일이 있어 나갔다 때마침 들어온 집사람이 말했다.

 “하여튼 저 지독한 비염하고는.”

‘여보 그게 아냐. 애들이 저기 3년 동안 갇혀 있었던 걸 생각하니···.’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구겨 넣었다.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지난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소식에 많은 이들이 환호했다. 나 또한 감격에 겨워 만세를 부르고 싶었다. 그런데 판결문을 자세히 읽어보고 마음이 영 힘들어졌다. 세월호 관련 내용 때문이었다.


‘피청구인은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 보호 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할 수 있도록 권한을 행사하고 직책을 수행하여야 하는 의무를 부담합니다. 그러나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재난 상황이 발생하였다고 하여 피청구인이 직접 구조 활동에 참여하여야 하는 등 구체적이고 특정한 행위 의무까지 바로 발생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피청구인은 헌법상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의무를 부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실의 개념은 상대적이고 추상적이어서 성실한 직책 수행 의무와 같은 추상적 의무 규정의 위반을 이유로 탄핵소추를 하는 것은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중략) 세월호 사고는 참혹하기 그지없으나, 세월호 참사 당일 피청구인이 직책을 성실히 수행하였는지 여부는 탄핵 심판 절차의 판단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고 할 것입니다.’


퍼뜩 생각이 스쳤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인가. 역시 재판관들도 어쩔 수 없나.’

물론 그들의 고충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그렇다고 흔쾌히 받아들일 수는 없다. 판결문을 쉽고 아름다웠다고 평하는 사람들이 많은 거 같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쉬운 건 맞으나 결코 ‘아름다운’ 판결은 아니었다고. 아래 칼럼이 이유를 잘 말해준다.


 ‘대통령이 직접 현장 구조를 하는 것이 대통령 임무는 아니므로 이는 탄핵 사유가 안 된다는 취지의 평결을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 수많은 사고와 사건의 현장에 대통령이 반드시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직접 현장에 나가서 구조했어야 한다고 말한 사람이 누가 있나. 하지만 연가나 월차 또는 생리휴가를 낸 것도 아닌 상황에서 그날 하루 종일 방구석에 처박혀서 무엇을 했는지조차 알 수 없으니 이것은 직무태만이 아닌가, 아무것도 안 한 것이 왜 죄가 안 된다는 말인가?’

-〈탄핵은 당연하지만 판결은 불복한다〉 이승옥,한겨레 2017. 3. 12.


광화문에 촛불이 다시 모였다. 스물한 번째였다. 처참한 세월호 몰골을 떠올리며 나도 광장으로 나갔다. 여전히 탄핵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시청역을 나가는데 그들이 튼 노래가 크게 들렸다.

 “아아 대한민국 아아 우리 조국 아아 영원토록 함께하리라.”

속으로 생각했다.

‘정수라가 뭔 죄야.’

오랜만에 꺼낸 노란 수건을 가지런히 펼쳤다. ‘실종자가 돌아올 때까지 진실에 닿을 때까지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 진상규명 가로막는 대통령령 폐기하라 진실을 향한 국민행진.’ 이 수건을 목에 두르고 홍대 앞에서 광화문까지 행진했다. 집회 끄트머리 동생을 잃은 언니와 자식을 잃은 아빠가 올라왔다. 그들은 촛불 시민들께 연신 감사하다고 했다.

‘인사를 들을 자격이 없는데···.’

자꾸 고개가 숙여졌고 다시 손수건을 꺼내야 했다. 뒤에 앉은 분들의 흐느낌이 전해져 왔고 구호는 더욱 커졌다.

 “세월호가 올라왔다. 진실을 규명하라. 탄핵은 시작이다. 박근혜를 구속하라.”

기자 권석천을 좋아한다. 중앙일보 논설위원으로 있다 지난 해 JTBC 보도국장으로 옮긴 사람이다. 손석희 앵커가 좋아하는 기자라고 듣기도 했다. 한동안 그의 글을 애독했다. 그가 쓴 칼럼을 모아 펴낸 《정의를 부탁해》를 지난달 읽었다. 이번에도 밑줄 그은 부분들이 많았다. 광장에 나가기 전 세월호 관련 부분을 다시 펼쳤다.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서정시를 쓸 수 있느냐”는 철학자의 물음은 세월호 이후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살아남은 자들은 하루하루 비관론과 마주칠 수밖에 없다. 세월호를 다시 대면하고 극복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 언저리를 맴돌 뿐이라고, 나는 믿는다.’

 -세월호 이후의 세상, 《정의를 부탁해》 25쪽


나 또한 그렇게 믿는다. 세월호의 진실을 ‘제대로’ 밝히지 않는 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고. 이제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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