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20년, 비정규직 주체 형성을 향하여

by 센터 posted Jan 0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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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돈문 센터 이사장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창립된 지 20년이 지났다. 세상의 변화 속도는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건만, 강산이 두 차례는 족히 바뀌었을 법한 세월 속에서도 비정규직 문제는 나아진 게 없다. 비정규직은 여전히 임금 노동자의 절반 이상을 점하고, 비정규직/정규직 임금 격차는 두 배 밑으로 떨어지지 않고, 비정규직 조직률은 2%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외환 위기와 경제 위기를 겪으며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이 사회적으로 부각되었다. 덕분에 불평등을 해소하고 사회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일찌감치 형성될 수 있었다. 마침내 촛불항쟁으로 치러진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선 파격적인 비정규직 정책 공약들이 제출되었고, 촛불정부를 자임하는 정부가 출범하며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했다. 하지만 국가 권력은 촛불공약을 뒤로하고 적폐 세력으로 질타받던 자본의 품 안으로 다시 돌아갔다. 


상시적 업무 직접고용 정규직 채용 공약도,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공약도, 최저임금 1만 원 공약도 소득주도성장 공약과 함께 모두 폐기되었다. 촛불은 꺼졌으되, 그냥 꺼진 게 아니라 국가/자본의 지배 동맹으로 무참히 짓밟힌 채 묻혀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는 흉흉한 경제 위기 담론들 속에서 노동의 저항력을 제약하며 감염병 위기를 노동의 위기로 전화할 기세다.


지난 20년의 교훈은, 노동의 대안은 노동계급의 계급 형성을 위한 비정규직 주체 형성밖에 없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도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 있으면 임금 수준이나 사회보험 적용률이 정규직에 근접한 수준을 보이지만, 미조직 비정규직의 경우 정규직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노동조합법은 고사하고 근로기준법도 최저임금법도 비정규직을 보호하지 못하기는 정부나 매한가지다. 오로지 노동조합만이 비정규직을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은 비참하지만 엄혹한 현실이다. 투쟁도 교섭도 조직화 전제 없이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노동계급 내 비정규직, 그 가운데서도 가장 열악한 미조직 비정규직의 이해관계가 노동계급의 보편 계급 이익이다. 비정규직 주체 형성을 위한 실천을 노동기본권 사각지대 해소 운동으로 시작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정치적 기회 구조를 주체적 역량과 함께 고려하여 핵심 과제들에 선택·집중하는 민주노동 운동의 전략적 접근이 요구된다. 


첫째, 의무가입 대상 미가입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고용보험에 즉각 편입하여 명실상부한 전 국민 고용보험제를 실현해야 한다. 미가입 비정규직은 고용보험제뿐만 아니라 노동 관계법들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노동기본권 사각지대라는 점에서 고용보험 편입 조치는 미가입 비정규직의 권리 의식 신장과 조직화의 성과도 가져올 수 있다.


둘째, 노동조합법 제2조의 근로자 개념을 확대하여 모든 임금 노동자의 노동3권을 보장해야 한다. 근로자성 판단 기준으로 사용 종속성뿐만 아니라 경제 종속성까지 포괄하면 특수고용 비정규직을 포함한 모든 노무 서비스 제공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으며 비정규직 주체 형성에 주력할 수 있다. 


셋째, 돌봄서비스의 사회화를 통해 노동자를 보호하고 성 평등 실현을 앞당겨야 한다. 고용률과 임금 등 노동 조건의 성별 격차는 심각한 상황이다. 돌봄서비스의 사회화는 저평가되고 있는 돌봄 노동의 고용안정성과 임금 등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한편 양질의 돌봄서비스 제공을 통해 여성에게 단절 없는 적극적 노동시장 활동을 가능하게 한다.


정규직 중심 노동계급의 보수화 추세 속에서도 민주노동 운동의 노동계급 내 사회적 연대는 진전되고 있다. 민주노총의 비정규직 권리입법 총파업 투쟁, 최저임금 1만 원 투쟁, 최근의 전태일3법 쟁취 투쟁, 그리고 생산 현장의 하후상박 임금연대와 정규직/비정규직 고용연대 실천 사례들은 노동기본권 사각지대 해소 운동과 비정규직 주체 형성의 전망을 밝게 한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도 노동계급 운동의, 민주노동 운동의, 비정규 운동의 한 부분으로서 소임을 다할 것임을 다시 한번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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