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권 사각지대, 돌봄 노동

by 센터 posted Oct 2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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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



코로나 장기화로 인한 여성들의 돌봄 노동 피로감이 극에 달하고 있다. 당연한 듯 가정으로 돌아온 돌봄 노동은 다시 당연하게 여성들의 일이 되고 있다. 2019년 통계에 따르면 여성이 평일 가사 노동을 3시간 10분 하는 데 반해 남성의 가사 노동시간은 48분에 불과했다. 안 그래도 불평등한 현실은 코로나로 인해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8월 전년 동월 대비 비경제활동인구 증감을 살펴보면 22만 1천 명의 여성들이 가사를 이유로, 2만 4천 명의 여성들이 육아를 이유로 비경제활동인구로 편입되었다. 남성들은 가사 1만 8천 명, 육아 3천 명에 그치고 있다.  


여성노동자회는 지난 9월 코로나 시기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과 돌봄 현황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결과를 토대로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응답자의 42.3%가 코로나 이전보다 돌봄 노동시간이 하루 2시간 이상 늘었다고 응답하였다. 6시간 이상이라는 응답자도 13.8%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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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 증가한 하루 평균 돌봄 노동 시간


가정 내 돌봄 분담 비율에 관한 질문에서는 여성이 감당하는 몫이 73.5%에 육박하였고, 배우자가 담당하는 몫은 14%에 불과했다. 여성 노동자들은 이러한 상황이 계속될 경우 그만둘 가능성을 묻는 말에 36.4%(‘그만둘 가능성 매우 높음’ 16.8%, ‘그만둘 가능성 높음’ 19.6%)가 ‘그만둘 가능성이 높다’라고 응답했다. 자녀가 어릴 것으로 예상되는 30대의 경우 54.8%가 ‘그만둘 가능성이 높다’라고 응답했다. 코로나로 인한 경력단절의 심각한 증가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여성들이 가정에서 수행하는 무급 돌봄 노동은 여성들의 임금 노동에 악영향을 미친다. 무급 돌봄 노동은 노동시장에서의 성별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악순환의 고리를 강하게 연결하고 있다. 회사 호출에 24시간 대기해야 하는 20세기형 노동자 모델이 여전히 일반적인 노동자 모델로 인식된다. 여성들은 현재의 돌봄자라는 이유로, 혹은 미래에 당연히 돌봄자가 될 것이라는 가정만으로 노동시장에서 차별받는다. 그 결과 여성들은 2등 노동자로 취급당해 좋은 직장으로의 진입도, 승진이나 임금 인상도 쉽지 않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일반화된 오늘이지만 가정 내 무급 돌봄 노동은 여전히 여성의 몫으로 여겨진다. 더욱 심각한 것은 남성들은 여성들이 사회로 진출한 만큼 가정 내 무급 돌봄 노동으로 진출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성들은 무급 돌봄 노동과 임금 노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한다는 강요 속에 살아간다. 


여성들이 묵묵히 무급으로 돌봄 노동을 수행해 온 대가는 돌봄 노동의 저평가로 돌아온다. 돌봄 노동의 저평가는 시장노동으로 이관되어서도 이어진다. 낮은 임금과 불안정 고용이 당연시되는 것이다. 이는 다시 여성의 임금 노동 전체에 영향을 준다. 여성의 노동 전체에 대한 저평가로 이어지며 여성의 저임금을 불러온다. 여성의 저임금은 다시 무급 돌봄 노동이 전적으로 필요할 때 여성들이 집안으로 돌아가는 합리적 이유가 된다. 고임금의 남성이 임금 노동을 하고, 저임금의 여성이 무급 돌봄 노동을 하는 분담의 합리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결국 무급 돌봄 노동은 불평등한 임금 노동, 저평가된 유급 돌봄을 만들고 이는 다시 무급 돌봄 노동을 여성의 몫으로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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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평가된 유·무급 돌봄 노동과 성차별적 임금 노동의 악순환

(출처 : ILO(2018), Care work and care job for the future of decent work)


문제는 돌봄 노동을 저평가하는 관습이다. 여성의 무급 돌봄 노동은 노동으로 인정조차 받지 못한다. 토론회를 전하는 기사에 ‘돌봄은 노동이 아니다’라는 댓글이 달렸다. 돌봄을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무급 돌봄 노동을 존속시키기 위한 전략이다. 사회는 여성의 무급 돌봄 노동을 자연적인 것, 당연한 것, 쉬운 것으로 포장한다. 하지만 돌봄 노동은 고난도 기술이 필요한 고강도 노동이다. 밥 한 그릇 제대로 짓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해본 사람은 안다. 쉽게 ‘네가 밥하고 내가 설거지할게’의 배분은 어처구니없는 불평등이다. 밥을 한다는 노동 뒤에는 식재료에 대한 정보 습득과 실제 구매하는 행위, 재료들의 조합, 다듬기, 조리하기, 세팅하기까지의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기술을 요구한다. 이런 과정이 설거지와 너무나 쉽게 등치되어 버린다. 알면서도 외면하고, 몰라서 당당하다. 집밥 찬양은 존재하지만, 집밥이 만들어지기까지 제대로 된 맛을 내기 위한 고숙련, 고기술, 고강도 노동을 수행한 여성에 대한 인정과 존중, 보상은 없다.


아이나 노인, 환자, 장애인을 돌본다는 것이 얼마나 고강도의 감정 노동인지에 관해 기술하지 않는다. 상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어떤 감정인지를 알아채는 것은 고도의 집중력과 관심이 필요한 일이다. 돌봄 노동자들은 돌봄 대상자의 변화나 교감에서 보람과 기쁨을 얻는다고 말해진다. 보람과 기쁨은 임금이 아니다. 돌봄 노동을 헌신에 기반한 보람 있는 일이라 말한다. 노동에서의 헌신은 착취와 동의어다. 어떤 노동도 그렇게 쉽게 헌신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로지 돌봄 노동에서만 유통되는 단어다. 


이 글을 쓰는 오늘 아침, 밥을 차려주지 않는다고 67년간 함께 살아온 88세 아내를 때려 숨지게 한 91세 남편에게 치매 등을 참작하여 법원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는 기사를 본다. 묵묵히 돌봄 노동을 수행하는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꼬박꼬박하거나 보상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67년간 돌봄 노동을 해왔지만 하지 않은 순간 살해당할 이유가 된다. 보수도, 인정도, 감사도, 존중도 없이 전 세계 여성들은 오늘은 묵묵히 돌봄 노동을 수행하고 있다. 가장 심각한 노동권 사각지대는 바로 당신 옆의 돌봄 노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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