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하고, 공부하고, 활동하고_강경희 회원

by 센터 posted Oct 2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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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인권센터는 본교 학생들에게 노동·인권·여성·복지 등 시민사회단체에서 자원 활동할 기회를 제공한다. 현재 자원활동가 6명이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이하 비정규센터)에서 활동 중이다. 3명씩 두 팀(연구팀/인터뷰팀)으로 나뉘는데, 연구팀은 서울대 내 비정규 노동자 실태조사, 인터뷰팀은 비정규 노동자 인터뷰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강경희 회원은 2018년 비정규센터에서 자원 활동을 했다. 당시 비정규센터 상근자들은 그이를 비롯한 자원활동가들이 상당한 열의를 가지고 활동했다고 종종 말하곤 했다. 누굴 인터뷰할지 고민하면서 그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 이번에는 조금 결이 다른 회원을 인터뷰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주로 현장 활동가 회원을 인터뷰 해왔던 터다. 다행히 강경희 회원은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강경희.JPG


앎을 위한 공부와 활동


강경희 회원은 인터뷰를 여러 번 해봤으나, 인터뷰이가 된 적은 없다며 멋쩍어했다. 그러나 첫 질문을 하자마자 답변이 쏟아졌다. 한바탕 폭풍이 몰아치는 것 같았다. 말뿐만 아니라 생각도 많았다. 과거 여러 활동을 했다. 주로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는 일이었다. 학보사 기자가 그랬고, 비정규직없는서울대만들기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이라는 모임이 그랬다. 

1, 2학년 때 학보사 기자를 하면서 너무 바빠 놀아본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흔한 학과 캠프나 엠티도 못 갔다. 그래서 학보사 기자를 그만두자마자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둘 시작했다. 공동행동에 들어갔고, 비정규센터 자원 활동에 지원했다. 예상외였다. 개인적인 일이라고 해서 여행이나 교환학생, 취미생활 등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이는 궁금한 게 너무나도 많은데 답을 몰라 답답하다며 한탄했다. 그리고 앎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공부하고 활동한다고 덧붙였다. 듣다 보니 그이의 치열한 고민과 왕성한 활동이 어느 정도 이해됐다.


삶에서 길어 올린 갈증


그이의 갈증은 어디서 온 것일까? 특별한 사건이나 자극을 받아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아니라고 말했다. 중학생 때 신문을 읽으면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학교에서 다양한 계층의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불평등 문제를 몸으로 느낄 기회가 많았다. 경로 의존적으로 자연스럽게 문제의식을 느끼게 된 것이다. 

대학교 1학년 때였다. 반올림에서 활동한 의사의 교양 수업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물신주의가 팽배해 있어도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이토록 경시할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수업을 계기로 노동 문제에, 특히 산업재해에 천착하게 된다. 산업재해와 건강 격차를 만들어내는 사회적인 조건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그것을 해결할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고민의 하나로 공동행동에서 생활협동조합 급식 노동자의 근골격계 질환 실태조사도 벌였다. 


노동운동에 정답은 없다


그러나 공동행동에 있으면서 현실이 낭만적이지만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이는 글로벌사회공헌단(이하 공헌단)이라는 곳에서 활동한 바 있다. 봉사하려는 학생에게 국내 및 해외 봉사를 소개하고 연결해주는 단체다. 공헌단에서 일하는 선생님들은 최저임금을 겨우 받고, 포괄임금 식으로 계약하여 초과수당은 꿈도 못 꾸며, 1년 단위로 계약하는 기간제 노동자였다. 

마침 공헌단에 있었기에 공동행동과 공헌단을 연결하고 노동 조건을 개선하는 활동을 했다. 그런데 선생님들 간에 이해관계가 각기 달랐다. 누구는 1년 정도 계약 기간이 남았고, 누구는 당장 나가야 했다. 누구는 강하게 투쟁을 하고 싶었고, 누구는 상사의 눈치를 보았다.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공통 요소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 노동운동에 쉬운 답이 없다는 걸 몸소 느꼈다.   


소외된 청년의 목소리가 더 필요하다


대학교 졸업을 앞둔 시점에서 어떤 계획이 있을까? 올해 중순까지 노무사 공부를 하고 시험을 봤다. 계속 공부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지금은 대학원 진학을 고민 중이다. 산업재해는 물론이고 문제의식을 조금 더 확장하여 산업 체제, 기술과 노동 등을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궁극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주제는 청년 노동이다. 청년이 힘들다고 한다. 취업도, 연애도, 결혼도, 내 집 마련도 어렵다. 자살률은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로 인해 우울증이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왜 청년이 힘들까? 그이는 노동 문제를 공부하며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청년 이야기가 나오자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의 화두인 ‘공정’으로 주제가 넘어갔다. 공정 담론을 보면서, 청년들이 기성세대에 의해 호명되는 방식이 아니라 스스로 사회 문제를 외치며 정치적 세력화의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고 판단했다. 분명 긍정적인 변화였다. 하지만 공론장에 떠도는 공정은 제한적이라고 봤다. 개인의 노력, 경쟁은 중요하다. 하지만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을 오로지 혼자서 획득할 수는 없다. 다양한 청년이 있다. 대학에 가지 않은 청년, 일을 쉬고 있는 청년,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청년. 이들의 목소리를 더 발굴해야 한다. 이는 그이가 대학원에서 연구하고 싶은 주제와 맞닿아 있다.  


시와 글쓰기, 마주함과 치유


너무 딱딱한 이야기만 한 것 같았다. 과거 그이는 《비정규노동》의 YOUTHTORY 코너에 1년 가까이 글을 썼다. 시를 좋아한다고 쓴 구절이 기억났다. 또 학보사 기자로 활동했으니 글쓰기도 좋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와 글쓰기에 관한 생각을 물었다. 속에 말들이 쌓여 견디기 힘들 때 글을 쓴다고 했고, 시는 평소 그것들을 꺼내기 두려워 읽는다고 했다. 그이의 속에 쌓이는 건 어떤 걸까, 어떤 걸 괴로워할까? 

답변은 씁쓸했고 고독했다. 우리는 누군가가 나라는 고유한 인격체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정상성이라는 사회적 폭력으로 재단할 때 실존적 위기에 직면한다. 여기서 괴로움이 비롯된다고 말했다. 시는 부조리를 한 차원 거리를 둔 채 간접적으로, 그러나 뚜렷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부조리를 직접 마주할 용기가 없을 때, 그럴 기분이 들지 않을 때 시를 읽는다. 하지만 속이 터질 거 같아 도저히 참기 힘들 때가 있다. 그때 글을 쓴다. 일종의 치유인 셈이다. 


필자이자 애독자


그이가 필자가 아닌 독자로서 《비정규노동》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했다. 그이는 평소에 기사를 많이 읽는다. 사람들의 생각을 듣기 위해서다. 언론의 노동 보도가 부족하다고, 그래서 디테일을 놓치고 있다고 봤다. 기사에는 노동정책,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거대 담론과 조직들이 자주 언급된다. 반면 지역, 일터의 세세한 목소리는 많은 부분 놓치고 있다. 기획 보도를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기획이다. 

이에 반해 《비정규노동》은 격월간이어서 아쉽긴 하지만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잘 담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좋은 글이 있으면 친구들에게 추천한다고, 언론의 틈을 메울 수 있는 창구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애정 어린 답변이었다. 《비정규노동》을 즐겨 읽는다는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배병길 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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