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오페라 본 적 있어? 〈힘내라 대한민국 오페라 갈라콘서트〉

by 센터 posted Aug 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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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극복 〈힘내라 대한민국 오페라 갈라콘서트〉

 

조건준 산업노동정책연구소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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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좀 보다가 잠들 거 같아.”

“나도 그럴 거 같은데, 지금 피곤한 상태라 더.”

토요일 수련회로 1박을 하고 난 일요일에 귀가하자마자 쌓인 피로 그대로 지고 오페라를 보러 간다. 단 한 번도 구경한 적이 없기에 생애 첫 오페라 구경을 나가는 준비 상태는 엉망이었다. 

“근데, 오늘 무슨 오페라를 보는 거야?”

“뭔지도 모르고 가는 거야? 문자로 보냈잖아.”

 

며칠 전 가족이 싼 값에 오페라를 볼 수 있다면서 시간이 되는지 물었다. 오페라 소개 내용도 있었는데 대충 읽어서 그런지 기억이 잘 안 난다. 싸면 수만 원, 좋은 자리는 십만 원을 훨씬 넘는다지만 코로나19로 공연문화산업이 완전히 바닥인 상태인 데다 아는 단체를 통해 구입한 입장권은 몇천 원이라고 했다. 부담 없이 가족이 처음으로 오페라를 보러 왔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고 했던가. 완전 무지 상태라도 조금 벗어나려 5천 원에 공연 소개 책자를 샀다. ‘아, 하나의 오페라가 아니라 한국 사람들이 좋아라는 오페라 중에서 네 개를 골라 특히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구나.’ 소개 책자를 보면서 빵과 음료수를 먹고 공연장에 들어섰다. 

 

음··· 이렇게 웅장한 홀에 평생에 몇 번이나 들어 올 수 있을까. 뮤지컬을 보았던 곳보다 훨씬 웅장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런 공연장을 지었을 건설 노동자들은 여기에서 공연을 본 적이라도 있을까. 생각이 스치는 순간 공연을 시작한다. 무대 앞 아래쪽에 자리 잡은 오케스트라가 인사를 마치고 연주를 시작하자마자 ‘와~’ 곁에 앉은 우린 서로를 쳐다보며 놀랐다. 음향이 완전 다르다. 무심코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나오는 오페라를 볼 때와는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이런 느낌 때문에 직접 관람을 하는 거겠지. 

 

워낙에 유명한 장면들을 모아놓아서인지 언젠가는 한번 들어본 것 같은 노래들이 나온다. 이탈리아 말로 노래를 하는 건가. 다행히 무대 위쪽에 커다란 한글 자막이 나온다. 음··· 잘 모르지만 재밌고 좋다. 카르멘이 뭔가 했더니 여성의 이름이었구나. 노래 부르는 카르멘 모습은 굉장히 고혹적이다. 특히 하바네라Habanera를 부르는 장면이 그렇다. 카르멘의 자태와 음악과 함께 ‘사랑은 길들여지지 않은 새᾿라는 가사도 인상적이다. 1820년대 스페인의 세빌리아가 배경이라고 하니 페미니즘이 생기기 한참 전인데 남성에 순종적인 여성이 아닌 자유분방하고도 강렬한 모습에서 여성주의를 생각했다. 

 

그녀를 사랑하는 조폭 비슷한 남성의 사랑 강요에 굴복하지 않고 죽음을 맞는 카르멘의 삶은 비극이다. 비극을 예상하지만 과감하게 거부하고 자신의 사랑을 선택하는 카르멘에게서 왜 죽음을 알면서도 항거를 선택한 민중항쟁의 최후를 떠올리는 것일까. 개인이 선택하는 비극이든 집단이 선택하는 비극이든, 비극에는 단지 슬픔만이 아니라 어떤 숭고함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집에 돌아와 카르멘이 하바네라를 부르는 장면 동영상을 다운 받아 들었다. 웅장하고 화려한 무대와 굉장히 많은 배우들, 매혹적인 카르멘 역할을 하는 배우들이 부르는 노래지만 맛이 나지 않는다. 공연 현장에서 들은 그 맛.

“혹시 오페라 본 적이 있어요?”   

 

오페라를 본 후 며칠 동안 사람들을 만나면 물었다. 주변의 대부분이 노동자들이다. 대부분 오페라를 본 적이 없단다. 어렸을 적에 본 기억이 있다는 한 명이 있었다. 한 친구는 오페라를 물었더니 판소리를 얘기했다. 판소리는 혼자서 끝까지 공연하지만 오페라는 수많은 주인공이 등장한다. 판소리는 고수 한 명이 장단을 맞추지만 오페라는 대규모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한다. 판소리는 소리꾼과 관객이 그냥 마당에 어울려서 추임새와 소리를 주고받으며 어울리는 놀이라면 오페라는 관객과 무대가 분리된 공연이란다. 

 

몇 년 전 노조 간부들과 판소리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다. 지루할 거라는 걱정과는 달리 새로운 문화를 접해서 좋았다고 했다. 문화예술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삶의 애환과 고뇌를 극적으로 넓혀주는 삶의 연장이 아닐까. 독서는 경험하지 못했고 생각하지 못했던 경험의 연장이 아닐까. 그래서 문화예술 공연을 만나고 책을 만나는 것은 우리의 삶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화성에 사는 우리 조합원들이 다른 문화 경험을 자주 하면 좋겠다.” 우주선 타고 가는 화성이 아니라 경기도 화성에서 일하는 조합원들을 만나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단 한 번 태어나 사는 인생에서 뮤지컬이나 오페라를 한 번도 보지 못한다는 것은 서글프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이야말로 타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문화적 편견인지도 모른다. 

 

지구별이든 화성이든 어디에 살든 그 삶에는 문화들이 있다. 우월감 듬뿍 구겨 넣어 상류 문화로 분류한 것들을 모르는 사람에게 그런 문화를 경험하지 못한 안타까움을 느낄 여지가 얼마나 될까. 하위문화라고 함부로 지껄인다고 해도 오페라보다 더 신나게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노래방이 으리으리한 예술의 전당보다 더 멋들어진 우리들의 공연장인지도 모른다. 그런 문화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아쉬울 것도 안타까울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여 기회가 있다면 현장의 노동자들도 오페라 한번 보기를 권한다. 노동자들도 이런 문화예술을 자주 접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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