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泰壹 커다란 하나] 전태일과 사회연대 전략

by 센터 posted Aug 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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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호  전태일재단 기획실장



“전태일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게 아니다. 우리가, 사회가, 국가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충격적 진단이다. 전태일 분신 항거 이후 50년, 사회와 국가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진단은 많이 있었어도 ‘우리’에게 책임을 묻는 진단은 없었다. 한데 사회와 국가뿐 아니라, ‘우리’도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것도 모자라 사회와 국가보다 ‘우리’를 먼저 거론하며 책임을 묻는다. 겁 없는 진단이다.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가 진행한 《전태일 평전》 독후감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경남지부 조합원 김은정의 <청년 전태일과 세 번의 만남>에 담긴 내용이다. 김은정의 독후감을 더 읽어 본다.

“부한 환경은 더 공고해졌고, 여전히 목숨보다 돈이 중하다. 전태일이 살던 때처럼 돈이 젊은 청년들을 집어삼키고 있다. 우리는 현실과 한패가 되어 태안화력발전소 청년 김용균과 구의역 스크린 도어 청년 김 군 그리고 이름 없는 이 땅의 수많은 노동자의 죽음에 묵묵부답이다. 여공들이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노동 착취를 당하는 현장에는 전태일 혼자만 있지 않은데, 왜 우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방관하고 있을까? 타인의 고통에 눈감으면 우리는 점점 괴물로 변해갈 것이다.”

100%, 아니 100만% 동의한다. 정확한 진단이다. 더는 사회와 국가에만 책임을 떠넘길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 노동자와 노조도 이미 괴물로 변해가고 있다. 


노동조합 운동에도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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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는 연봉 분위별 노동자의 평균 연봉 및 연봉 하한액 추이다. 원재료는 고용노동부의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다. 2018년 상위 10%의 평균 소득은 9천931만 원이다. 하한액은 6천950만 원이다. 양 노총 조합원 상당수가 여기에 속한다. 6분위(상위 50%) 하한액은 2천864만 원이다. 양 노총 조합원 대부분이 상위 50%에 속한다는 뜻이다. 


평균 연봉 증감률을 보자. 2018년도에 3분위(하위 30%)와 2분위(하위 20%) 연봉은 10.4%와 10.3% 증가했다. 주로 최저임금 적용 대상이다. 16.4%로 대폭 오른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다. 상위 10%는 3.2% 향상에 그쳤다. 비율로만 따지면 그랬다는 것이다. 액수를 따지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하위 30%와 20%의 증가액은 187만 원과 146만 원이다. 그런데 상위 10%의 증가액은 311만 원이다.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된 상황에서 빚어진 결과다. 앞으로 소득 불평등이 얼마나 더 심각해질지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브레이크 없는 사회 양극화는 노동자마저 중심부와 주변부로 분단시키고 말았다. 상위 10% 하한액과 하위 10% 상한액의 차이로 계산하는 노동자 상위 10%와 하위 10% 소득 격차가 무려 6배까지 벌어졌다. 노조 운동이 사업장 울타리 안 조합원의 임금·고용·노동조건 향상에만 몰두한 것이 한몫 톡톡히 했다. 재벌사와 공공부문처럼 지불 능력 있거나 투쟁력 있는 노조 사업장의 임금만 계속 올랐다. 1등 노동과 3등 노동으로 분단된 것이다. 한데도 대개의 상층 노조는 여전히 자신의 임금 인상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 상황에서 교사·공무원·공공부문 등을 중심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또는 처우개선을 반대하는 흐름이 확산하고 있다. 몇몇 노조는 대놓고 반대에 앞장서고 있고, 대다수 노조는 굴복하고 있다. 노동운동의 비정규직 철폐 또는 차별 철폐는 사업장 바깥에서만 요란할 뿐이다. 사업장에 들어가서는 조합원을 핑계 대며 꼬리를 내린다. 비정규직을 밟고 올라서서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외치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전태일에게는 3대 정신이 있다


2020년 올해는 전태일 50주기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50주기 범국민행사위원회가 구성되어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갈수록 약해지는 연대와 평등의 가치를 되살려내려고 한다. 


전태일의 삶과 죽음에는 3대 정신이 있다. 첫째, 불굴의 조직 및 실천정신이다. 지금으로 치면 정규직 신분의 재단사 전태일은 비정규직 시다와 중규직 미싱사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동료 재단사를 모아 바보회와 삼동회를 만들었다. 노조의 맹아였다. 노동청에 청원했고 대자보를 붙였다. 설문지를 돌렸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언론에 홍보해서 신문에 실리도록 했다. 집회를 만들고, 분신 항거했다. 전태일은 자신의 처우를 개선하려고 그렇게 조직하고 실천한 것이 아니었다. 


둘째, 풀빵 정신이다. 평화시장에 취직한 전태일은 어느 날 미아리파출소에서 밤을 새웠다. 어머니 이소선은 안절부절 기다렸고, 전태일은 새벽녘에 집에 들어왔다. 그런 날이 사흘씩 계속되었다. 더는 참을 수 없어 이소선이 그 이유를 물었더니 전태일은 “오다 파출소에서 자고 왔어요. 어머니가 나 집 나올 때 차비 30원을 주잖아요. 시다들이 밤잠을 제대로 못 자서 낮이면 꾸벅꾸벅 졸고, 일은 해야 하는데 점심까지 쫄쫄 굶기에 보다못해 그 돈으로 풀빵 30개를 사서 여섯 사람에게 나눠주었더니 한 시간 반쯤은 견디고 일해요. 그래서 집에 올 때 걸어왔더니 오다가 시간이 늦어서 파출소에 붙잡혔어요.” 하고 답했다. 전태일은 하루 14시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배를 곯던 열서너 살의 어린 시다들에게 제 차비로 풀빵을 사주고, 자신 또한 장시간 노동에 지친 밤늦은 시간 평화시장에서 창동까지 12킬로미터 넘는 거리를 걷고 뛰며 퇴근하다가 야간 통행금지에 걸려 파출소에서 쪼그려 자곤 했다. 그러면서 조직을 했고 투쟁을 했다. 전태일 이름 앞에 ‘아름다운 청년’이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붙는 이유다. 전태일은 시다와 미싱사들에게 투쟁만 얘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몫을 나눴다. 


셋째, 모범업체 정신이다. 분신 항거 1년 전 전태일은 새로운 구상을 했다. ‘종업원을 기업주와 하등의 차이도 없이 대우하고 사업을 해 나갈 수 있다는 기본을 보이기 위한 기업체’ 구상이다. “정당한 세금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고도 제품계통에서 사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 경제인에게 입증시키고, 사회의 여러 악여건 속에 무성의하게 방치된 어린 동심을 하루 한시라도 빨리 구출하는데 그 취지가 있다. 나는 이 사업을 위하여 보잘것없는, 물질적으로 본다면 1달러의 값도 없는 나의 전부를 여기에 바칠 것이다.” 태일피복 구상이었다. 분신은 제외하고, 전태일의 삶과 죽음에 깃든 3대 정신은 ‘우리’가 부단하게 본받고 실천해야 한다. 실천이 필요한 곳에서는 실천으로, 풀빵이 필요한 곳에는 풀빵으로, 모범업체가 필요한 곳에서는 모범업체로 전태일의 정신을 받아안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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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권선언 65주년 기념 인권 캠페인 작품 응용(@청년 비정규직 작가 김동희)


사회연대 전략은 전태일의 정신이다


최근 몇 년, 사회연대 전략이 노동운동의 새로운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다. 사회연대 전략은 그야말로 노조가 사회와 손을 잡자는 전략이다. 노조 운동은 이전부터 사회와 연대했다. 특별한 것이 없다. 그러나 지금 시기에 추진하는 사회연대 전략은 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이전의 사회연대는 우리 어려우니까 손잡아 달라면서 노조가 사회를 향해 요청하는 차원의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사회연대는 노동조합이 노조 바깥의 어렵고 힘든 사회를 향해 손을 내미는 차원의 것이다. 이전의 사회연대가 사회로부터 받는 것이었다면, 지금의 사회연대는 사회를 향해 내놓는 것이다.



노조가 상층이 되었다. 노조 바깥 밑바닥 노동은 싸늘한 시선으로 노조를 바라본다. 귀족노조라고 비판한다. 노동조합은 제 임금과 고용과 노동조건‘만’을 위해 싸우는 집단으로 인식되어 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노조는 제 임금과 고용에만 집요했다. 노조 바깥의 밑바닥 노동 문제에 소홀했다. 그런 사이에 임금 격차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까지 벌어졌다. 노조의 사회적 영향력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 사회연대 전략은 노조 운동의 추락한 사회적 영향력과 신뢰를 회복하는 유력한 방안이다. 


사회연대 전략은 다양한 방안이 있다. 첫째, 지역생활연대다. 노동조합이 직접 지역사회에 결합해서 취약계층 집수리를 하고 밥상 모임을 하는 등 생활 속 다양한 연대사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대표 사례는 희망연대노조다. 둘째, 기금연대가 있다. 희망씨, 공공상생연대기금, 금융산업공익재단, 사무금융우분투재단, 철도희망재단 등과 같이 노사, 또는 노동조합이 기금을 모아 비정규직 처우 개선과 청년 일자리 지원 등의 사업을 전개하는 것이다.

셋째, 임금연대다. 대표적으로 하후상박 임금 전략이다. 임금이 낮은 직군의 임금은 더 후하게 인상하고, 임금이 높은 직군의 임금은 그보다 낮게 자제해서 인상하는 방안이다. 금융노조가 16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다. 금융노조는 저임금 직군의 임금을 정규직보다 2배 안팎으로 더 인상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노조에서도 실시한 적이 있다. 2018년 현대자동차노조는 원청 정규직보다 하청 노동의 임금을 더 높게 인상했다. 임금 동결은 하후상박의 최고점이다. 상위 10%의 임금을 동결해서 그 동결분으로 밑바닥 노동의 사회적 또는 사업장 임금을 대폭 인상하는 것이다. 그래야 재벌의 곳간도 열게 할 수 있다. 그래야 국가 정책도 밑바닥을 향하게 강제할 수 있다. 


넷째, 고용연대가 있다. 대표 사례는 부산지하철노조다. 부산지하철노조는 540명의 청년 신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조합원 1인당 1천만 원 이상 양보했다. 해당 연도 공공부문 임금 가이드라인이 1.8%였는데, 그것도 0.9%로 양보했다. 임금을 양보하고 청년 일자리를 쟁취하려고 이틀간 파업까지 했다. 노동운동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다. 다섯째, 복지연대가 있다. 금융노조 사례다. 금융노조는 사내근로복지기금을 파견 노동자와 함께 사용했다. 그동안 사내근로복지기금은 정규직에게만 사용되었다. 그 기금에는 비정규직과 하청 노동의 땀방울이 함께 녹아있는데도 정규직 임직원만 사용했다. 금융노조가 비정규직과 함께 사용하는 모범을 열었다.


사회연대 전략의 최고점은 세금복지연대와 투쟁연대다. 노동자가 먼저 제안하고 나서는 증세를 통해 한국 사회의 복지와 사회안전망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것이 세금복지연대다. 투쟁연대의 핵심은 복지와 사회안전망 확보 투쟁이다. 그래야 지금의 중심부 정규직도 퇴직 후에 안정적 삶을 누릴 수 있다. 그래야 굳이 임금 인상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미래세대가 밝은 삶을 누릴 수 있다. 중심부와 주변부로 분단된 노동계급을 복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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