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이 알아야 할 차별금지법

by 센터 posted Aug 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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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장맛비가 그치지 않는다. 이토록 늦고 긴 장마가 있었을까? 곳곳에서 산사태가 일어나고 침수가 일어난다. 경기도 이천에서는 하천 범람으로 농경지나 가옥이 침수되어 이재민이 100여 명 발생했다. 그런데 그중 80%가 이주 노동자였다. 왜 그럴까? 이주 노동자들은 주로 비닐하우스에 있는 컨테이너 등에서 생활하다 비로 침수 상황을 맞았기 때문이다. 내국인 노동자였으면 비닐하우스 안 컨테이너를 기숙 시설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고용노동부가 이중 잣대로 논밭의 비닐하우스 컨테이너를 기숙 시설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주 노동자에 대한 차별행위다. 이주 노동자니까 내국인 노동자와 다른 숙소에서 살아도 된다는 이런 발상이 갖는 인간에 대한 차별이 이주민의 대다수를 이주 노동자를 이재민으로 만들었다. 


이와 같은 차별 사례가 차고 넘친다. 얼마 전에는 정의당의 류호정 의원이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등원했던 일을 두고 SNS 등에서 난리가 났다. “술집 도우미냐.”, “소풍 가냐.”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의원들이 주로 정장 차림으로 등원하던 것에 비해서 파격일 수는 있겠지만, 의원의 복장을 두고 나온 성차별, 혐오 발언들이었다. 또 8월 초에는 신촌역 역사 안에 설치되었던 광고판이 훼손되어 말썽이 났다. 그 광고판에는 “성 소수자는 당신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라는 자극적이지도 않은, 그냥 사실을 전달하는 광고였지만 이 광고는 설치 하루 만에 찢겨졌다. 광고판을 훼손한 범인은 “성 소수자가 싫어서”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 안에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종종 이렇게 나타난다. 


이런 차별들을 없애자는 취지를 담은 차별금지법안을 지난 6월 29일 정의당 장혜영 의원 등이 발의했다. 하루 뒤인 6월 30일, 국가인권위원회는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평등법)」’ 제정 의견표명을 결의하였다. 국회가 더 이상 미루지 말고 평등법 제정에 나서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올해 4월 여론조사에서는 10명 중 9명이 ‘평등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평등법 또는 차별금지법이 이번 국회에서 제정될 가능성은 아직은 반반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세력의 대부분은 보수 개신교 교회 성직자와 신도들이다. 이들은 오래전부터 ‘성 소수자 보호법’이라고 왜곡하거나 차별금지법을 ‘교회파탄법’이라고 하면서 종교의 자유가 위축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주장을 편다. 이들은 차별금지법을 발의하거나 동의하는 국회의원이 있으면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위협적인 행동을 해왔다. 집단으로 전화를 걸어서 업무를 마비시키기까지 한다. 이런 보수 개신교 세력들의 방해로 차별금지법은 제17대, 제18대, 제19대 국회에서 발의되었다가 철회되거나 아예 심의조차 하지 못했다. 20대 국회에서는 아예 발의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번 21대 국회에서 법률안이 발의되었고, 국가인권위원회도 이 법률 제정을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다. 


그런데 이 법률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은 누구일까? 위와 같은 돌출적인 차별 사안 말고 일상적으로 차별을 경험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아닐까?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안한 평등법 시안을 보면 이런 내용은 확실해진다. ‘차별이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장애, 병력病歷, 나이,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인종, 피부색, 출신 지역, 용모·유전 정보 등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전과,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 학력學歷, 고용형태,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고용, 재화·용역의 공급이나 이용, 교육기관의 교육 및 직업훈련, 행정·사법절차 및 서비스의 제공·이용 영역에서 차별하는 것을 금지한다. 위의 사유를 이유로 한 괴롭힘, 성희롱, 광고행위도 금지된다. 


구체적으로 영역별 금지되는 차별행위 중에 고용 영역을 보면, 모집·채용에서의 차별, 임금 등에서의 차별, 교육·훈련에서 차별, 배치에서의 차별, 승진에서의 차별, 근로시간 등에서의 차별이 금지되고, 해고 등 불이익 처분이 금지된다. 이렇게 대충만 훑어봐도 노동자들의 노동 전 과정에서 차별이 금지된다. 이렇게 되면 이 법률을 근거로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 노동자, 이주 노동자, 장애인 노동자들이 차별이 아니라 평등하게 대우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이것을 무시하고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주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차별이 가장 많이 행해지는 곳은 고용 영역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 진정 건수 중 60%가 고용 관련 차별이다. 장애, 성 소수자 차별, 여성에 대한 차별보다 월등 높다. 고용에서의 차별만 사라져도 우리 노동 현장은 상당히 평등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 법률만으로 당장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평등한 노사 관계, 평등한 노노 관계를 만들어갈 중요한 무기가 노동자들에게 주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정부 부처 중에 고용노동부가 이 법률 제정에 가장 열심히 반대하고 있다는 말도 들리니 말이다. 노동자들의 평등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 가장 앞장서서 노력해야 할 노동부가 노동에서의 차별, 위계 구조를 그대로 두고 싶어 한다는 말은 고용노동부의 존재 이유를 묻게 만든다. 


그러니까 누구보다 노동자들이, 그리고 열악한 지위에 있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이 이 법의 제정에 먼저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 전국에 있는 비정규노동센터들에서 이 법률안에 대한 설명회 등을 개최하고, 이 법률 제정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면 어떨까? 누구보다 가장 절실하게 이 법이 필요한 열악한 지위에 있는 노동자들부터 나서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어서 하는 제안이다. 


우리 사회의 노동 현장은 IMF 외환위기 이후 급격한 변화를 겪어왔다. 정규직 일자리는 급격히 사라졌고, 비정규직 일자리는 확대되었다. 고용이 불안하니 사용주의 부당한 요구와 각종 괴롭힘이나 차별행위가 극성을 부렸다. 노동조합이 건재한 곳은 그래도 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하고 싸움도 했겠지만 노동조합조차 없던 직장의 노동자들은 어디 하소연도 못하고 잘리고 쫓겨나야 했다. 사람이 하던 일은 자동화 시스템에 의한 기계들로 대체되었고, 그나마 있는 일자리는 더욱 불안정해졌다. 코로나19 이후 노동자들에게 “아프면 집에서 쉬라”는 질병관리본부의 권고는 그림의 떡이다. 아파도 직장에 나가야 겨우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노동자들이 계속 잘리면서 더 열악한 일자리로 불안하게 옮겨간다. 노동의 미래는 암울하기 그지없다. 


이러한 때에 평등법 또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면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는 데 큰 백그라운드로 작용할 수 있다. 법 하나 제정된다고 모든 게 좋아질 리 없지만, 우리가 늘상 당하면서도 포기해야만 했던 차별행위를 시정하는데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일부 못된 개신교 성직자들의 헛소리에 현혹되지 말고, 노동자들에게 지금 필요한 법인 평등법 또는 치별금지법 제정운동에 노동자들이 관심 갖고 적극 참여하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의 일터부터 평등해지고, 우리의 일터에서 민주주의가 꽃필 수 있다. 그런 바람으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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