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타투 문화의 선봉이지만…

by 센터 posted Jun 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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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윤  타투유니온 지회장



“너희가 왜 노동조합을 만들었어? 어떻게 그게 가능해?”

타투이스트 노동조합인 타투유니온을 설립하고 가장 먼저 들은 질문이고,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여기에 대한 우리의 답변은 의외로 단순했다.

“우리는 노동을 하고 있으니까.”


사실 나도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규직이고, 사업체에 소속되어야 하고, 단체교섭을 할 대상이 필요하다고 알고 있었다. 현재 정치발전소에 있는 조성주 이사의 “특정 자격을 갖추어야 노동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행위로써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것”이라는 방송을 보고서야 처음으로 우리도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는 상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상상은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의 타투유니온지회라는 이름으로 현실이 되었다.


1.타투.jpg

 6월 9일 전태일기념관 앞에서 진행된 ‘타투할 자유와 권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


코로나19로 인해 어떤 모임이나 집회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타투유니온지회는 꾸준한 조합원 가입을 통해 현재 270명의 조합원이 모였다. 이는 타투이스트들이 처한 노동 현실이 얼마나 각박한지를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은 타투를 의료 행위로 규정해 타투 작업을 막고 있는 세계 유일의 국가이다. 법적 보호가 전무하고, 오히려 신고나 단속의 대상인 타투이스트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고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창적인 장르 개발과 아트워크로 새로운 시장과 소비자를 탄생시켰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과정에서 세계 유일의 타투 법률 후진국이 세계 타투 문화의 선봉이 되었다. 세계 대표 도시의 가장 큰 타투스튜디오에서 일하는 간판 타투이스트들은 거의 대부분 한국인이다. 가장 몸값이 높은 타투이스트들의 절반이 한국인이며, 타투 문화의 트랜드는 서울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외국 잡지에 실릴 정도다.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한국의 타투이스트들이 가장 위축되는 순간은 인천공항에 내려서 타투 용품이 검색대에 걸릴까 조마조마하는 순간이다. 국내에서는 타투를 시술했다는 이유로 신고를 당하고, 단속을 당해 벌금을 물기도 하고, 실형을 사는 사례도 있다. 이렇게 처절하게 웃긴 한국의 타투 문화가 연대에 능숙하지 못한 그림 그리는 예술 노동자들을 연대의 자리로 이끌었으니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타투유니온은 두 가지 큰 목표가 있다. 첫 번째는 연대를 통해 타투의 법 제도를 개선시키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연대를 기회 삼아 어떤 예술 노동자들도 이루지 못한 무리의 보살핌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 30여 년간의 처절한 코미디가 세계에 보란 듯이 내놓을 수 있는 예술 노동 연대의 표본이 될 것이라 믿는다.


우리가 가장 먼저 마주한 장벽이 우리의 직업을 ‘일반직업화’ 시키는 일이다. 30년 전 타투를 불법 행위로 단정 지은 판례를 바꾸기 위해 우리는 여러 이익단체와 협상을 해야 하고, 입법 과정도 거쳐야 한다. 엄두도 나지 않던 이 일들은 6월 9일 ‘타투할 자유와 권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출범으로 변화의 진정한 시작을 알리게 되었다. 화섬식품노조의 도움으로 감히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시민사회단체들과 협력하여 구체적 사업을 진행하려고 한다.


녹색병원은 타투유니온의 위생/보건부와 함께 타투에 대한 사회적 염려를 차단할 ‘위생 및 감염관리 가이드’ 제작과 교육을 진행한다. 타투유니온의 최진주 조합원은 교육 사업을 위해 타투를 하면서 모은 2천만 원을 기부했다. 이 기부금은 ‘조각기금’이라는 이름으로 녹색병원과 함께 ‘타투 예술문화 교육센터’를 설립하는 자본금이 될 예정이다. 타투유니온은 조각기금이 고갈되지 않도록 관리·운영하여 모든 타투이스트들의 교육에 지원할 것이다. 먼저 자리 잡은 사람이 동료들을 위해 나눔과 돌봄을 실천하는 것이 우리들의 문화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법무법인 오월과 민변 노동위는 타투이스트들의 법률 지원·자문과 판례를 바꾸기 위한 헌법소원을 계획하고 있다. 법 제도 보호를 받지 못하는 타투이스트들의 상황을 악용한 소비자나 단체들은 사소한 민사적 잡음도 협상이나 합의가 아닌 형사고소를 통해 원하는 결과로 관철시키려는 일이 잦다. 타투의 현재 상황을 잘 파악하고 사례를 쌓아가는 법률 전문가들의 조언은 조합원을 보호하는 데에  큰 힘이 되고 있다. 이외에도 전태일재단, 노회찬재단, 일과건강, 문화연대,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타투인협회, 민중의집, 정치발전소 노동정치센터,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 등 오랜 경험과 실력, 전국단위 조직을 갖춘 연대의 도움으로 홀로 할 수 없었던 거대한 일들을 하나씩 만들어 나아가는 중이다.


코로나19로 우리가 근래에 겪어보지 못한 생소한 상황 속에서 장담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올해 늦가을에는 제주도에서 국제 타투 행사를 여는 것이 타투유니온의 꿈이다. 세계 속에서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로 타투 문화를 바꿔놓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작품과 작업자들을 선보이는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전 세계의 중소도시라면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타투컨벤션이라는 행사를 제주도에서 열기 위해서 우리는 큰 산을 또 넘어야 한다. 제주도의 행정적 도움이 없다면 타투 시술을 하는 컨벤션은 절대 열릴 수 없다. 또 행사를 위한 지역 주민들의 정서적 동의도 필요하다. 이 또한 우리의 연대가 해내리라 믿는다.


미술을 공부하던 청소년 시절부터 전공자인 대학생 시기를 거쳐 사회에서 전문가로 일하는 순간까지 나는 연대와 조직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예술가(?)의 삶을 살아왔다. 지금 우리가 이룬 연대와 조직을 통해 과연 우리가 들어왔던 우리의 종족 특성이 진리였는가에 대해 의심하고 있다. 또 경험이 없어서 어설펐던 것은 아닐까 의심하고 있다. 연대에 있어 전문가인 본조 활동가들의 도움으로 우리 스스로가 만든 편견과도 싸울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아마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 중에도 타투/문신을 좋아하지 않는 경우가 상당히 많을 것이다. 오랜 세월 타투가 불법이란 명제에 익숙해져 동의가 어려운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개인의 호불호가 문화를 재단하는 법률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먼저 생각하고 좀 더 대중에게 사랑받는 문화로 발전할 수 있도록 응원해주었으면 좋겠다. 편견이 노동의 가치를 제한하는 도구가 되지 않도록 타투유니온의 노력에 힘을 보태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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