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코로나19] 우리가 언제 안 힘든 날이 있었나

by 센터 posted Jun 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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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승  공연예술인노동조합 위원장



저는 1993년 극단에 들어가 연극을 시작했습니다. 뒤늦게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생활을 위한 경력단절 기간을 빼면 17년 정도 연극을 한 배우입니다. 연극을 하면서도 생활비는 다른 일을 하며 벌어야 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불행하다고 생각하거나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다른 일로 생활이 가능하니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예술이 언제는 안 힘들었나?” 하며 지냅니다. 버티자! 버티면 언젠가는 좋아지겠지, 라는 기대로.


공연 한 편하면 연습 기간과 공연 기간 일주일 정도해서 한 달 반에서 두 달 정도 걸립니다. 공연 사례비(노무 제공비)는 천차만별이지만 보통 50만 원 정도입니다. 당연히 이걸로는 생활이 안 되니 무대 제작, 행사 아르바이트, 일용직 등 닥치는 대로 일하며 생활비를 충당했습니다. 다른 일거리들이 있으니 다행이었지요. 그런데 코로나19는 예술계뿐만 아니라 대한민국과 전 세계를 얼어붙게 했습니다. 사람들이 밖에 나오지 않으니 당연히 소비는 줄고, 일자리도 줄어들었으며 영세사업장은 고용된 인원마저 해고하는데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일부 특수를 누리는 배달과 택배 등 인력이 필요한 몇몇 업종만 구인을 했으나 엄청난 실업 상태에 사람들이 몰리니 이마저도 구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문화예술노동연대.jpg

2019년 9월, 문화예술노동연대는 예술인, 특수고용 노동자의 고용보험법 개정안 통과를 요구하며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문화예술노동연대)


코로나가 터지기 전 올해 1월에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은 주인공의 트라우마를 담은 〈불편한 너와의 사정거리〉 공연 이후 예정되었던 공연들이 연달아 취소되었습니다. 소속된 극단에서 2월에 예정되었던 1946년 화순탄광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화순 1946〉과 국민은행노조 조합원 교육에 공연하는 뮤지컬 〈투명인간〉, 보건의료노조와 공연하기로 한 〈전태일〉 제주 4.3사건 추모 공연, 4.16 추모 공연, 지역축제 취소로 공연도 취소되는 등 넉 달 동안 공연예술 쪽은 실내, 실외를 막론하고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설상가상 객석을 꽉 채워도 적자인 공연이 대부분인데 서울시가 어렵사리 공연을 올리는 팀에게 현실적 대안없이 객석 거리두기 지침만 내려 절망감을 더하게 했습니다.


공연예술은 관객과 호흡하고 현장 분위기를 느끼며 즐기는 상호작용에 의한 현장성, 특수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무시하고 무관객 영상 송출을 위한 작업에 지원하고, 공연을 한다는 전제하에 공모를 통해 선정된 단체나 개인에게 지원하는 선별적 지원책만 나왔습니다. 당장 개개인의 생계가 막막한데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직접 지원은 아무것도 나온 것이 없습니다. 지자체와 국가재난지원금 외에 지원을 받으려면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으면서 피해를 입증하고, 통장내역을 통해 수입이 줄어든 것을 증명하고, 앞으로 공연할 기획안을 머리 싸매고 고민해서 신청해야 합니다. 그것도 선정되어야 겨우 지원받을 수 있는 현재 지원방식에 대출이라도 받으려 은행에 가면 조건이 안돼 대출 또한 받기가 어렵습니다. 프리랜서 예술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한 현실입니다. 전 그나마 학교 강의라도 나가니 다만 얼마라도 수입이 있지만, 문화센터나 아동센터를 비롯해 연극 교실, 문학, 전통(춤, 악기), 댄스, 노래 수업 등 아예 수업을 못 하는 예술 강사들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상황에 문화체육관광부는 방송에서 인기가 있는 트로트를, 그것도 청소년 트로트가요제 라는 지원사업 공모나 내놓고 있으니 한숨만 나옵니다. 


코로나19 재난 앞에 공연예술인들은 스스로 조심하며 서로 규율을 만들어 나누며 정부 방침에 최대한 협조하며 확산을 막고자 노력했습니다. 내가 소속된 극단 ‘경험과 상상’에서도 자체 규율을 만들어 지키도록 했습니다. 우리 일터에서 확진자가 나오지 않도록 발 빠르게 대처하면서, 그래도 위험할까봐 많은 공연을 취소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일터로 넉 달이 넘도록 돌아가지 못하고 언제 정상적으로 공연을 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 이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어 조금씩 조금씩 공연을 하는 곳들이 하나둘 생기고 있습니다.


공연장은 이전에도 관객들이 말하지 않고 조용히 보아왔고 모두가 무대를 향해 보고 있으니 일반 식당이나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철저한 방역과 세부수칙을 따르도록 하고 마스크를 쓰고 관람하니 공연장에서 감염자가 발생하지 않는 것입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공연장은 객석 거리두기로 빈자리에 대한 지원도 없이 위험한 곳으로 간주되고 있는 현실이 슬픕니다.


예술가들에게 가난은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자기 좋아서 하는 일이니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합니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술가도 사람이고 국민으로 보호받으며 똑같이 기본적인 권리를 누려야 하는 우리 이웃입니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부당한 것을 참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예술가는 아닙니다. 예술가도 사회안전망 속에서 누구나 차별받지 않고, 불안하지 않고, 인간답게 일할 권리가 있습니다. 


지금의 코로나 사태로 인해 그나마 다행이라 할 부분은 국민과 예술가 스스로 예술가들의 사회안전망을 다시 보게 되었다는 겁니다. 예술인 고용보험법이 통과되어 2021년 실행됩니다. 느리지만 조금씩 조금씩 우리 환경이 안전할 수 있도록 변화되는 모습에 희망을 가집니다. 당장 공연계가 활성화되기는 어렵겠지만 하나둘 조심스럽게 공연이 올라가고 있고, 저도 6월 말 지방공연을 시작으로 8~10월 공연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또다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공연 계획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상황을 버텨나가는데 힘이 됩니다. 코로나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는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하루빨리 일상이 정상화되고 극장에서 거리에서 관객과 만나 울고 웃으며 우리 사는 이야기를 나누게 되길 바랍니다.


올해 전태일 열사 50주기,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사북항쟁 40주년, 4.19혁명 60주년 등 굵직한 공연들이 많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공연계가 활기를 찾아 동료들과 일터에서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빨리 오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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