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코로나19] 학습지 교사로 살아가기

by 센터 posted Jun 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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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복임  학습지 교사



2020년 1월 마지막 주 설 연휴를 마치고 출근하니 코로나19 확진자가 우리나라에서도 생겼다고 했다. 중국 거리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람들이 픽픽 쓰러져가는 모습이 방송되었지만 실감은 나지 않았다. 2월로 접어들자 회원들이 “수업을 잠시 쉬어야겠다, 몇 달 쉬고 잠잠해지면 하겠다.”는 전화와 문자를 보내왔다. 메르스 때처럼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해서 위생 수칙 잘 지키고 수업하면 된다고 설득했지만, 회원들의 불안은 줄어들지 않았다.


6.학습지.jpg

민주노총과 서울지역본부가 5월 22일 서울 교원내외빌딩 앞에서 진행한 ‘2020차별철폐대행진’ 캠페인에 학습지 노동자들도 함께했다.(@학습지노조)


코로나19 31번 확진자가 슈퍼확진자로 연일 방송에 나오자 “수업을 쉬겠다, 교재만 넣어달라.”는 연락이 계속 왔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내가 그 확진자와 접촉하거나 동선과 겹치지도 않았는데 왜 이렇게 하지? 마치 내가 바이러스 덩어리라도 된 것 같았다. 물론 조심은 해야겠지만 좀 심한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일상이 무너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생소하고 낯설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 사회적 거리두기라 하여 마음까지 멀어지는 듯 거리감을 느끼면서 산다는 것이 힘들고 우울하기까지 했다.


평소 시끌벅적하던 지국 사무실이 조용했다. 마스크를 한 낯선 얼굴들이 묵묵히 자기 일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3월부터는 라이브 톡으로 지국 회의, 지구 회의를 했다. 변화하는 것에 적응하기보다는 끌려가고 있는 듯했다. 학교는 개학을 두 번 연기하고 급기야는 온라인 개학을 했다. 모든 게 멈춘 듯 이렇게 3, 4월이 가고 조금 진정되는가 싶더니 다시 수도권을 중심으로 내가 사는 곳 가까이에서 확진자들이 나왔다.


5월부터는 교재만 받던 회원들도 대면 수업을 시작했다. 회원 집에 가면 화장실부터 들어가 손을 씻고 마스크를 몇 번이나 올리면서 수업을 했다. 안전 안내 문자가 울리면 수업하고 있는 지역에 확진자가 나올까봐, 내가 수업하는 회원이 확진자일까봐 마음을 졸였다. 모 학습지 교사가 확진자라고 맘 까페에 올린 글은 혐오와 배제로 더이상 교사로 생활할 수 없을 것 같아 더 그랬다. 이렇게 6월이 왔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힘들었던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학습지 교사를 하면서 한 아이를 키우는 선생님이 2월 29일자로 계약해지되었다. 회사는 잘못된 관행의 책임을 가장 힘없는 교사에게 물었다. 해고된 후 일자리를 못 구해 생활비 걱정을 하는 선생님을 보는 것이 마음 아팠고 지켜주지 못해 미안했다. 그리고 4월부터는 수업하고 있는 지역을 빼라는 전화를 많이 받았다. 


이 어려운 시기에 생계 대책을 세워주지는 못하더라도 하고 있는 교실까지 빼라고 한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평소에 우리는 가족이라며 우애 및 일치단결을 외치던 회사는 어디로 간 것인지 본사로 전화하면 담당자가 아니니 담당자에게 전하겠다, 회의 중이라고 하고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으려 했다.


아이들이 좋아서, 회원들이 조금씩 성장하는 것을 기뻐하며 보낸 시간이 10년을 훌쩍 넘겼다. 회사는 동종업계 1, 2위를 다투며 성장했다. 수많은 학습지 교사들이 노력한 결과라고 단언한다. 밤늦게까지 수업하고 주말, 휴일에 보충하고 학부모, 회원 상담에 짬짬이 홍보까지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일했다. 그런데 회사가 교사를 대하는 태도에 기가 막히고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다. 어려울 때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본모습인 것 같다. 학습지 교사를 쓰다가 버리는 소모품 정도로 아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20년 일한 선생님을 계약해지하고 일하고 있는 지역을 하루아침에 내놓으라 하고 코로나19 사회적 재난 앞에 마스크 20장, 손 소독제 하나 주고 책임을 다했다 한다. 기본적인 배려나 존중이 없다. 


국가에도 화가 난다. 국민의 권익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어떻게 이런 법을 만들어 놓았을까? 법의 정신은 정의 구현일 텐데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들에게 모든 비용과 책임을 지게 하고 사용자에게는 고용에 대한 책임을 면제하니 말이다. 기본금·연월차·상여금·퇴직금이 없고, 4대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왜 안 되는지 물으면 우리가 사장님이란다. 이건 상식적으로도 말이 안 된다. 우리는 노무를 제공하고 매달 월급을 받는다. 그래서 이건 잘못되었으니 법을 바꿔 달라고 한 것이 20년이 되었다. 학습지 교사는 사장님이 아니라 노동자라고 꼭 바꿔야 한다.


코로나19로 어려움도 있었지만 얻는 것도 많았다. 나의 삶에 대해, 나의 주변에 대해 생각하고 돌아볼 기회가 되었고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도 깨닫게 되었다. 어느새 나의 삶과 생각에도 깊숙이 들어와 있는 자본주의적 가치들을 반성하고 무엇보다 사람이 중심에 있어야 하고 소중하다고 되새긴다. 그리고 국가재난지원금을 모아 어려움을 겪는 이웃에게 기부하고, 생필품을 지원하고 서로서로 도움을 주는 모습에서 희망을 보았다. 


우리는 혼자 살 수 없고 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이 나와 상관없어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두 연관되어 있다. 지금 내 자리에서 하는 작은 실천들이 모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 거란 소망을 가져본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살아내고 있는 분들에게 마음의 평화와 행복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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