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코로나19] 수입 제로, 우리에게 국가는 있는가

by 센터 posted Jun 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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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방과 후 강사



코로나19로 사상 초유의 개학 연기에 온라인 개학, 등교 개학을 맞은 우리 회원들에게도 불안과 걱정보다는 당당히 맞서 함께해 나가라고 말해 주고 싶다. 학교에 가고 싶고 선생님과 친구들이 보고 싶다고 했던 맑은 모습. 잘해나가리라 믿는다. 서로 격려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내자!나는 학교에서 방과 후 독서 논술을 가르치는 방과 후 강사이며 노동조합 위원장이다. 우리는 보통 인류의 역사를 기원전과 기원후로 나눈다. 그런데 요즘은 코로나 전과 코로나 후로 나눠졌으며 코로나 이후 모든 삶의 방식과 형태가 바뀌었다고 한다. 그만큼 코로나 바이러스는 위협적이고도 엄청난 인류의 재난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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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후강사노조는 방과 후 강사의 생계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방과후강사노조)


최근 코로나19 바이러스로 개학이 여러 차례 연기되면서 방과 후 강사들은 몇 달째 수입이 전혀 없다. 강사들은 쿠팡 알바나 시간제 알바를 하면서 개학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아주 일부 학교가 수업을 하거나 수업 운영을 앞두고 있지만, 신청률이 30%도 되지 않기 때문에 생계를 해결할 수준이 전혀 아니다.


강사들 가운데에는 남편 없이 아이를 키우는 분들처럼 실제적 가장이 60%가 넘는다. 이제 신용카드로 버틸 수 있는 한계 시간도 지났다. 그래서 몇 달째 생계 대책이 없는 강사들을 위해 생활자금 대출 받는 방법을 알아보러 내가 직접 금융감독원에 달려갔다. ‘소상공인진흥공단1357’이라는 대출상품이 그나마 우리 직군이 받을 수 있는 조건에 가깝다고 했다. 그런데 이 또한 방과 후 강사들은 개인사업자로 등록되어 있지 않아서 자격이 안 된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대한민국 그 어느 은행에서도 방과 후 강사에게는 대출금을 한 푼도 주지 못한다는 뼈아픈 경험을 하게 되었다.


방과 후 강사들은 영락없이 이제 굶어야 할 처지다. 그래서 강사들은 임시방편으로 공장도 나가고 신문도 배달한다. 이미 계약서를 학교와 썼으니 다른 직업으로 바꿀 수도 없다. 개학하면 언제든지 달려가서 수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바쁜 사람은 정은경 질병본부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나도 지난 3개월 동안 그분만큼이나 바쁘게 살았다. 왜냐하면 방과 후 강사들의 어려운 현실을 세상에 알리고 조금이라도 이분들의 생계와 법적 신분이 개선되기 위해 최전방에서 활동했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학습지 강사, 보험 설계사, 대리기사 등 특수고용직이 언론에 거론되고 그중에서도 방과 후 강사들이 유일하게 수입이 넉 달째 제로인 상황이 매일 같이 보도되었다. 그만큼 고용 형태가 열악하고 법적인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3월 특수고용 노동자와 프리랜서들에게 한 달에 최고 50만 원씩 지원하는 특별기금을 발표하였는데 그 직종에 방과 후 강사는 빠져 있었다. 그래서 노조는 전국의 강사들을 동원해 지자체에 전화를 걸어 민원을 넣고 교육부와 교육청을 통해 모든 지역에 방과 후 강사들도 그 기금을 받을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런데 지원 자격이 건강보험료 기준이었는데 대부분의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지역 의료보험이라 기준 금액을 초과한다. 이처럼 현실에서 기금을 받을 수 없게 되자 을지로위원회 민생 현안 간담회를 통해 국회의원, 고용노동부, 교육부 관계자에게 간절하게 호소하였다. 또한 20여 차례 기자회견, 100여 차례 언론 인터뷰에서 방과 후 강사들의 위기 상황을 알렸다. 


그러자 정부는 5월 7일 중위 소득 150퍼센트 이하 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 석 달 동안 50만 원씩 지원한다고 발표하였다. 수많은 특수고용 직종이 있지만 유일하게 ‘방과 후 강사’라고 명시가 되어 있었다. 이는 방과후강사노조의 요구로 만들어진 기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덕분에 많은 강사들과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기금을 받게 되어 가뭄의 단비를 맞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 생계의 어려움을 당장 해결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강사들의 신분이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고 노동자도 사업자도 아닌 애매한 직업군이라는 사회적 정체성을 깨닫게 된 것이 가장 값진 일일 것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지만,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유령처럼 지내는 방과 후 강사들이 실제로 이런 국가적 재난을 당해도 노동조합이라는 울타리가 없으면 얼마나 힘없는 존재인지 스스로 깨닫게 된 기회가 되었다. 덕분에 강사들은 노조의 필요성을 깨닫고 불과 3개월 만에 노동조합 가입률이 200퍼센트나 되었다.


나는 강사들의 신분을 법적으로 보장받고 현실적인 요구사항들을 개선시키기 위해 유은혜 교육부장관 면담을 요구하는 피켓팅과 농성을 장관 집 앞에서 혼자 실시하였다. 덕분에 교육부와도 5월 1일 간담회를 가졌다. 교육부는 강사들을 위한 대출도 알아보고 일자리도 약속하였다. 그래서 최근에는 학교에서 돌봄과 원격 수업, 방역에 방과 후 강사들이 투입되어 일을 하고 있다. 물론 교육부가 농협과 MOU를 맺은 대출상품은 기대출자에게는 돈을 내어 주지 않는 조건으로 있으나 마나한 생색내기용으로 그쳤지만 말이다. 


방과 후 강사들도 이 사회의 일원이자 학교의 구성원이고, 학교 교육의 한 축으로 25년 동안 묵묵히 일해 왔다. 정규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대출조차 받을 수 없는 현실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하며 이런 국가적 재난에 기본적인 생계에 대한 기준이 마련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을 강사들은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최근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이라든지 기본소득처럼 직군이나 계층에 상관없이 국민이면 누구나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그것이 진정한 복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비정규직, 특수고용직이라는 이유로 노조할 권리도 인정받지 못하고 정작 필요한 고용보험도 적용받지 못하는 것이 이 나라 특수고용직의 현주소이다.


우리 노조는 작년 6월 10일 노조필증을 신고하였으나 1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필증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필증이 없으니 수업료 보존에 대한 교섭도 하지 못한 채 5개월 정도를 수입 0원으로 버티고 있다. 방과후학교법 역시 며칠 전, 정부가 25년 만에 방과 후 돌봄에 대한 법안을 입법하였는데, 교원 단체 항의에 의해 입법 예고 3일 만에 철회되었다. 법 없이 25년 동안 운영되는 교육! 그 교육의 주체가 되는 방과 후 강사들의 법적인 상황은 어떠했는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지금까지 유령처럼 노동자임에도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라는 이름으로 모든 법적 보호에서 배제당하고 있다. 방과 후 강사도 엄연히 이 나라 교육 노동자이자 한 집안의 가장이다. 고용보험, 방과 후 법안, 노조필증 이러한 것들은 법적 사각지대에 있는 우리 방과 후 강사들에게 더욱 필요한 장치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에겐 과연 나라가 존재하는가 수없이 되묻고 싶었다. 방과 후 강사에게도 나라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길 바란다. 우리에게도 생계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법적 제도가 절실히 필요하다.


바이러스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리지 않는다. 감염병의 고통은 누구에게든 찾아올 수 있다. 이로 인한 사회적 아픔과 부담 역시 모두가 함께 나누고 짊어져야 하는 것이 국가가 할 일이다. 국가적 재난에 처했을 때 비정규직과 약자들만이 희생을 더 크게 짊어져야 하는 구조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차별과 배제야말로 또 하나의 바이러스가 되어 사회를 병들게 할 것이다. 바이러스의 침입이 오히려 우리 사회 사각지대를 더욱 변화시키고 차별 없는 보편 사회, 평등 사회로 나아가는 기회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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