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와 공존하는 삶

by 센터 posted Jun 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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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형철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대표



우리 조합이 관리하는 여의도샛강생태공원에는 요즘 산책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많은 인파가 숲길을 걷는다. 지난달엔 가까우면서도 호젓하게 걸을 수 있는 트레킹 코스를 추천하려다가 포기한 적이 있다. 자연을 벗할 만큼 외진 길이었는데 사람들이 갑자기 많아진 탓이다. 


눈을 돌리면 여기저기 꽃이 피어나고 초록빛이 고운 계절이기도 하지만, SNS에는 자연과 함께하는 모습들이 부쩍 눈에 띈다. 코로나 이후 집안 생활이 길어지고, 밀폐된 공간에서의 전염 위험이 강조되면서 시민들이 자연으로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아직 백신도 치료제도 없어 오직 사회적 거리두기만이 대책인 상황에서 시민들이 자연을 찾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또 다행스러운 일이다. 코로나 사태가 오래가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 사라지고, 우리의 일상이 방역을 염두에 두고 재편될 것이라는 판단으로 새로운 적응을 시도하는 것일 테다. 이렇게 ‘사회적 거리두기’는 점차 ‘자연과 가까이’라는 뉴 노멀로 다가오고 있다. 


우리가 누리지 못하는 ‘일상’에 대한 회고가 넘치고, ‘일상의 소중함’에 대한 광고와 수필 공모들까지 등장하는 지금, 재앙 속에서 우리가 잃은 것이 무엇인지 잘 알게 되었다. 코로나19 발생 후 반년 만에 우리의 걱정은 감염증과 경기침체에 대한 것을 넘어 훨씬 나아가고 있다. 장기간의 고립에 따른 우울증이나 스트레스, 단절되고 이완된 관계에서 사회가 흔들리고 혼란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의 2차 대유행이 전망되고, 코로나20, 코로나21 같은 것들이 오리라는 경고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뉴질랜드, 대만 등이 운 좋게 코로나19 종식을 선언했지만, 지구 차원에서 코로나 시대를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기후 위기와 생태계 파괴 때문에 서식지를 잃은 야생동물들이 인간사회로 다가왔고, 바이러스들과 인간의 접촉이 늘어난 상황에서 위험을 벗어날 길이 없는 것이다. 자연을 훼손하며 모셔온 손님들이니 함께 살 수밖에 없게 됐다.


이제 우리는 코로나와 함께 가는 시대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재난 뒤에 찾아오는 문화적 진공상태, 즉 생소한 생활, 관계, 의식에 대비해야 한다. 낙담하고 포기하지 말고 중심을 잡고 앞으로 나가야 한다. 물론 새로운 세상은 두려운 것이지만, 코로나19 발생 이전의 일상이 과연 ‘정상적’이었는지 돌아보며 조금은 용기를 낼 필요가 있다. 


코로나 19 때문에 세계의 생산활동이 줄어들면서 공기가 맑아지고, 자연이 생기를 찾았다는 기사들도 있잖은가. 코로나19 때문에 발생한 사망자보다 대기오염 저감으로 수명을 연장한 이들이 몇 배나 많다는 보고조차 있다. 우리가 마스크를 벗지는 못했지만, 근래 몇 년 만에 ‘미세먼지 때문에 마스크를 쓸 일’이 없었던 봄을 넘겼다. 코로나19를 지구가 보낸 전령이라 주장하는 이들이 있고, 지구는 하나의 생명체와 같아서 스스로 조절한다는 ‘가이아 이론’이라는 것도 있다. 


그러니 코로나19를 이기는 단기간의 기술적 대응을 넘어, 우리 사회가 정신적·사회적 면역력을 증강하는 방향을 찾아야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공생의 윤리를 부정하는, 그리하여 우리 모두의 면역력을 체계적으로 파괴하는 탐욕이라는 바이러스다.”라는 김종철 선생의 진단은 새겨들어야 한다. 코로나19는 현상일 뿐이고, 자연과 사람을 착취하고 쥐어짜는 무자비한 탐욕이 본질인 것이다. 


지난 4월 16일 환경운동가이자 세계적인 작가이며 《연애 소설 읽는 노인》으로 널리 알려진 루이스 세풀베다가 코로나19로 스페인에서 타계했다. 박홍규 교수는 그를 추모하며 5월 9일 한겨레 신문 〈박홍규의 이단아 읽기〉에서 이렇게 썼다. 


‘진정한 자유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 대한 존중에서 비롯되며, 궁극적으로 우리가 머물고 있는 지구 자체에 대한 존중을 의미한다는 메시지는 세풀베다가 평생 추구한 가치였다. 코로나19는 그런 가치의 몰각에서 비롯되었을지 모른다. 기후 변화를 포함해 자연을 존중하는 가치관의 회복 없이 권력과 자본이라는 허상만을 좇는다면 인류는 코로나20, 코로나21 하면서 계속 그 숫자만 늘리게 될지도 모른다.’ 


코로나로 타계한 환경운동가이자 작가의 외침을 늦었지만 따라 해 마음에 새기자. ‘자연을 존중하라. 숲을 지켜라. 지구상의 모든 존재를 존중하고 공존하라.’ 이제라도 그의 목소리를 따라 해 보자. 여전히 우리에겐 가진 게 적지 않고, 새로운 길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들이 남아 있지 않은가? 당장 정부도 한국판 뉴딜을 선언했고, 세 가지 주요 내용에 ‘그린 뉴딜’을 포함하겠다 한다. 지난 문명을 성찰하고 새로운 방향을 세우는데 수십조 원을 배당하겠다니 반가운 일이고, 그동안 미뤘던 기후 변화 대책을 세우는 종잣돈이 생겼으니 고맙다. 또한 시민들을 자연으로 안내하고 초록을 즐기는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재원도 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뉴딜이라는 것이 저절로 좋은 결과를 가져올리는 없다. 흔히 ‘뉴딜’이라는 개념이 지닌 맥락이 ‘정부 주도의 대규모 토목 사업’과 닿아있고, ‘재난을 이용해 멋대로 이윤을 챙기는 재난 자본주의’의 세련된 형태가 될 수도 있다. 사회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갈등을 양산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연에 가까이 가고 초록을 즐기는 데’서 시민들이, 노동자들이 소외되지 않으려면 역시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적 여력이 없는 이들이 자연에 나아갈 겨를을 갖기 힘들고, 생산 현장과 떨어진 초록이라면 이용이 어렵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가만히 주어지는 권리라는 건 없으니, 의지를 가지고 주장해야 한다. 의료복지와 기초생계를 보장받았던 것처럼 생태와 자연에 대한 접근도 실천을 통해 확보해야 할 권리다. 


대면 관계가 부담스러워지고, 언택트 기술에 대한 접근이 비싸질수록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정서의 풍부함을 유지하려면 자연과의 교감을 더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이는 노동자들에게도 당연할뿐더러 더욱 강력하게 보장해야 할 복지다. 따라서 그린 뉴딜의 중심에 ‘시민(노동자)’, ‘생활’이 놓이도록 해야겠다. ‘시민’을 붙이고자 하는 것은 정부 주도라는 것이 필연적으로 하향식일 수밖에 없고, 국가적 차원의 대규모 사업으로 연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시민들이 참여하고 주도하는 뉴딜이라면 좀 더 다양하고 구체적인 정책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생활’을 붙이자고 한 것은 생산물의 증대나 GDP 성장이 아니라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걸 목적으로 삼자는 취지다. 


코로나 이후의 뉴 노멀은 자연을 가까이 하고 지구와 공존하는 삶이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곧 평화로운 일상이며 지속 가능한 삶의 길이라고 믿는다. 자본의 이익이 아니라 국토의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3억 5000만 년 전의 에너지를 끌어내기보다 햇빛과 함께하는 삶으로, 기후 변화를 줄이고 자연 생태계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뉴 노멀’을 만들어 낸다면, 코로나19가 폐만 끼치고 지나는 것이 아니게 될 것이다. 다행히 햇볕은 지구 모든 곳을 평등하게 비추고, 바람은 구석구석 훑지 않는 곳이 없다. 공유와 호혜가 자연의 본질이니 이들 권리가 모두의 것이 될 수 있도록 잘 지키고 가꾸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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