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노인 일자리의 정체성

by 센터 posted Apr 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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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



“휴업급여 받을 수 없나?”

“네? 받으실 수 없어요! 어르신은 유급 자원봉사자거든요.”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는 김재석(가명. 남, 78세) 어르신은 코로나19로 일자리가 무기한 휴업에 들어갔다. 한 달 수입 27만 원이 줄자 공과금을 내지 못한다. 답답한 마음에 혹시나 해서 사회복지사에게 휴업급여를 문의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서울시는 긴급 생계비 지원을 하라고 했다. 하지만 김재석 어르신은 받을 수 없다. 노인 일자리 참여자는 긴급 생계비 지원 제외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이 문제 핵심에는 노인 일자리 참여자의 정체성에 있다. 노동자인지 유급 자원봉사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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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폐지를 수집하는 어르신


노인 일자리 사업 참여 어르신은 노동자인가, 자원봉사자인가?


노인 일자리 사업은 2004년 노무현 정부에서 도입됐다. 노인 빈곤을 완화하기 위해 소득을 보충하고, 활기찬 노후를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2020년 기준 노인 일자리 사업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공공형과 민간형이다. 공공형은 사회서비스를 취약계층 또는 공공시설(지역아동센터, 장애인시설 등)에 제공한다. 월 30시간 일하고 27만 원을 받는다. 민간형은 다시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되는데 여기서는 시장형 사업으로 표현한다. 1인당 1년에 최대 250만 원을 인건비로 받고 성과에 따라 추가 임금을 받는다. 시장형은 연중무휴 운영되고 최저임금을 적용받는다.


노인 일자리 참여 어르신을 노동자로 볼 것인가, 유급 자원봉사자로 볼 것인가는 16년째 논란이다. 보건복지부는 판단을 유보하다가 2016년부터 입장을 정리했다. 시장형 참여자는 노동자, 공공형 일자리 참여자는 유급 자원봉사자. 한 달 일하고 받는 돈의 명칭은 시장형은 급여, 공공형은 활동비라고 부른다. 시장형 노인 일자리 참여자는 산재보험을 가입하지만, 공공형 일자리 참여자는 상해보험을 가입한다. 


보건복지부가 판단한 공공형 일자리 참여 어르신은 노동자가 아니라 유급 자원봉사자가 맞는지 근로기준법 정의와 대법원의 판례를 기준으로 검토해보자.

근로기준법 제14조는 근로자 정의를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자”로 규정되어 있다. 어르신들이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는 목적이 돈을 위해서인지, 돈보다는 사회 기여와 보람을 위해서 노동을 제공하는지를 확인하면 된다. 100명의 어르신에게 물었다.“무급으로 자원봉사 하실 의향이 있으신지요.” 모든 어르신이 다 안 한다고 했다. “유급으로 자원봉사 하실 생각은 있느냐?”는 질문에는 어느 정도 돈이 나와야지 교통비 정도만 준다면 안 한다고 했다. “노인 일자리 참여 이유가 생계 목적이거나 최소한의 금액이 필요해서 참여하셨나요?”라는 질문에도 모든 어르신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노인 일자리 참여는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한 소득임을 분명히 했다. 아무리 보건복지부가 활동비라고 주장하더라도 어르신들의 노인 일자리 참여 목적이 자원봉사로 바뀌진 않는다.


2020년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 운영 안내 지침서가 의미하는 것


대법원에서는 노동자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사용종속성을 근거로 삼는다. 사용종속성에는 지휘 명령 요소, 임금 요소, 자영업자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보건복지부의 2020년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 운영 안내라는 지침서가 있다. 지침서에 사용종속성의 세 가지 요소가 있다면 노동자로 인정될 것이고, 없다면 유급 자원봉사자로 규정이 가능할 것이다.


첫째, 지휘 명령 요소이다. 노인 일자리 참여자 담당 업무는 수행기관(대한노인회, 시니어클럽, 노인복지관 등)과 업무계약을 통해서 결정된다. 참여 노인은 선발된 이후에 ‘사업참여계약서(참여조건합의서)’를 작성하게 된다. 여기에 계약 일자, 계약 기간, 보수, 근무 장소, 주요 담당 업무 등의 상세한 내용이 포함된다. 또한 공식화된 업무 규칙, 복무 규정, 인사 규정을 준수할 책임이 수반된다. 출퇴근, 지각 및 조퇴 등의 근무 상황이 근무 관리 대장에 의해 관리되며 업무와 관련된 지시를 불이행하였거나 결근, 지각 및 업무 태만에 대해서 시정명령이나 제한조치를 내리고 있다. 따라서 복무 및 인사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을 따른다.


둘째, 임금성 요소이다. 어르신들은 공공형 일자리 참여 동기가 생계 수단이라고 대답했다. 한 달 27만 원이 생계 수단이든 보건복지부의 말처럼 소득 보충이라도 임금을 목적으로 노동을 제공한 것은 분명하다. 제도를 설계한 보건복지부의 뜻은 중요하지 않다. 노인 일자리에 참여한 어르신들 생각이 우선이다. 


셋째, 자영업자적 요소이다. 어르신이 제3자를 고용하여 대신 업무를 수행하게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비품·원자재·작업 도구 등은 지원 사업비로 구입하고, 사업단 중단 또는 종료 시 해당 사업단의 자산대장상 구입연도로부터 3년 차 미만 자산은 지자체로 반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자영업자로 볼 수 없다.


결국 보건복지부는 2020년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 운영 안내를 통해 어르신 선발, 참여 자격, 복무 규정, 급여, 장소, 활동 관리를 하고 있다. 대법원 판례 기준으로 보면 공공형 노인 일자리 참여 노인도 노동자이다. 


모범 사용자로서 정부의 역할


코로나19로 2월 중순부터 노인 일자리 사업이 중단되었다. 어디를 가지도 못하고 갈 데도 없었던 김재석 어르신은 당장 생계가 어려워 서울시 긴급 재난 생활비를 신청했지만 받지 못했다. 노인 일자리 참여자는 제외대상이기 때문이다. 낙담한 김재석 어르신에게 누군가 말했다. “휴업급여 신청해봐! 장애인 일자리는 급여 70%가 휴업급여로 나온대.” 그 말을 듣고 김재석 어르신은 사회복지사를 찾아가 휴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지 물었지만, 자원봉사자라서 받을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노인 일자리 참여 어르신의 노동자성이 인정됐다면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휴업급여는 받지 않았을까. 정부 방침에 따라 노인 일자리 사업이 중단되었기에 사용자의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2017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은 “비정규직을 줄이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격차를 줄여나가는 것은 가장 중요한 시대적 과제”라며 “정부가 가장 ‘모범적인 사용자’가 되겠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모범 사용자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한 기본조건으로 노인 일자리 사업 참여 어르신들의 노동자성을 확실히 인정해야 할 것이며, 이후 괜찮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단계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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