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화된 위기

by 센터 posted Apr 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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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



코로나19라는 사상 초유의 바이러스가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 당연한 것으로 인지되었던 일상성은 파괴되었고 비대면, 비접촉이 사회적 기준이 되고 있다. 이 상황이 고통스럽고 힘든 것은 누구나 당연하다. 사람과 어우러져 사는 것이 당연한 삶의 모습이었다가 살기 위해 그 연결을 끊어야 하는 극단적 상황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라고 명명된 생존 양식은 코로나 우울증, 건강염려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정신적 문제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 세계적 양극화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부자들은 섬을 사 의료진을 대동해 자가격리를 떠나지만, 빈자들은 굶주림을 걱정한다. 


군집으로 이루어졌던 사회 시스템이 파괴되면서 그 속에서 삶을 영위했던 취약계층들이 가장 먼저 타깃이 되고 있다. 청도 대남병원이 그러했고 콜센터 노동자들이 그러했다. 위기는 약한 고리를 먼저 치고 들어간다. 용역회사 소속이라는 이유로 마스크를 지급받지 못한 청소 노동자, 의료 현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방역용품을 지급받지 못했던 요양보호사. 이들은 안전에 대한 위협과 더불어 생계의 위협에도 시달리고 있다. 위기는 성별화된다. 이번에도 역시 여성이다. 1997년 IMF 때도, 2008년 금융위기 때도 그랬듯 역시 여성의 노동이 위협받고 있다. 여전히 사회적 안전망에 포섭되지 못한 비정규직, 5인 미만, 초단시간 노동자들이 1차 타깃이 되고 있다. 이들의 다른 이름은 여성이다. 여성 노동자 중 비정규직이 50.7%, 5인 미만 사업장 종사자는 22.7%에 이른다. 초단시간 노동자 중 73.9%가 여성이다. 여기까지는 경제 위기가 닥칠 때 가장 먼저 위협받는 이들이다. 가뜩이나 불안한 고용상의 지위에 겹쳐 남성 생계 부양자 이데올로기는 여성들을 더욱 위협한다. 같은 신분상의 위치여도 가장이 아니니까 라는 이유로 여성이 1순위 해고 타깃이 되는 것을 우리는 늘 목도해 왔다.


게다가 이번 위기는 특정 산업 위기까지 겹치면서 여성들을 더욱 위협하고 있다. 대면접촉 서비스 산업에 여성들이 집중 고용되어 있기 때문이다. 3월 고용동향을 살펴보면 전체 취업자가 19만 6천 명 감소한 가운데 이중 여성이 11만 5천 명으로 58.6%에 이르고 있다. 특히 숙박 및 음식점업 11만 6천 명, 교육서비스업에서 6만 9천 명, 도매 및 소매업 4만 5천 명이 감소하여 23만 명의 감소를 보이고 있다. 이는 특정 산업의 위기로 지목될 수 있다. 이 부문에서 종사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은 36.1%에 이르고 있다. 산업 자체가 흔들리는 코로나19 위기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있어 어쩌면 1997년과 2008년 위기보다 더욱 심각한 위기 상황일 수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사회 시스템과 병행하여 움직이고 있던 돌봄체계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사설 교육기관이 가동을 멈추면서 아이들을 돌보는 문제가 심각한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돌봄의 책임을 국가가 가정에 넘기면서 그 자리를 메워야 하는 것은 당연한 듯 여성이 되고 있다. 집에 있는 아이들과 재택하는 본인, 남편의 삼시 세끼를 책임져야 하는 여성들의 고단함은 성별화된 위기의 단면이다. 여성들은 “아이들이 잠든 뒤에 간신히 일을 처리하고 있다.”고 말한다. 위기는 재택이 가능한 이들과 가능하지 않은 이들을 다시 나눈다. 간신히 일자리를 유지하고 있어도 출근해야만 하는 여성들은 아이 돌봄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른다. 다시 여기서 돌봄 휴가가 가능한 직장과 그렇지 않은 직장의 희비가 엇갈린다. 긴급 돌봄 휴가가 그림의 떡인 사업장이 태반이다. 가족 내 돌봄이 가능한 인력을 찾아내어 어떻게 해서든지 맡겨 보지만 녹록지 않다. 돌봄 휴가가 가능하다고 해도 지속되고 있는 이번 위기가 끝날 때까지 휴가를 쓸 수는 없다. 사태의 장기화는 여성들에게 퇴사를 종용하고 있다. 맘카페에는 “코로나가 장기화되면 퇴사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노인 돌봄도 비상이 걸렸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가장 취약한 집단이 노인이다. 바이러스 자체뿐 아니라 바이러스가 가져온 사회적 변화 때문에 취약성이 심화되고 있다. 지속적인 자극과 사회적 활동이 있어야만 치매 등의 노인성 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 각종 문화시설과 체육시설이 모두 문을 닫고 노인들의 활동반경을 제한하는 코로나 시국에서 노인들의 발병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다. 더군다나 정기적으로 방문해야 하는 병원으로의 접근성을 차단당하자 이에 따른 기저 질환 악화의 위험성도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을 중심으로 한 집단 시설에서의 감염 위험성이 커지자 노인 돌봄 역시도 가족, 여성의 책임이 되고 있다. 일시적으로 돌봄이 가족에게 맡겨지는 현실에서 여성들은 어쩔 수 없이 상황을 수용해 왔지만, 상황의 장기화 속에 여성들은 자신의 삶 자체를 위협당하고 있다. 노인의 위기가 여성의 위기를 연쇄적으로 가져오는 형국이다.


우리는 위기가 성별에 따라 다르게 작용하고 있음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더구나 이번 코로나19로 촉발된 위기는 여성에게 더욱 심각하게 작용하고 있다. 취약한 노동시장 위치에서의 위기, 산업의 위기, 돌봄의 위기가 중첩되고 있다. 그런데도 위기의 최전선에서 일을 해결하고 있는 것은 여성들이다. 위기는 이 구조를 이해하고 있는가 아닌가에 따라 대응책이 달라질 수 있다. 누가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위기를 세분화하여 각각의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 이번 위기는 여성의 노동에 대한 재평가 계기가 되어야 한다. 또한 그동안 여성들에게 당연하게 요구해왔던 돌봄에 대한 총체적 대안을 만들어가야 한다. 어떠한 위기에도 흔들림 없이 사회와 국가가 온전히 돌봄을 책임지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평등한 시민으로서 존중받는 여성은 그래야만 존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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