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경비 노동자] 조직화 없는 사회적 대화가 가능할까?

by 센터 posted Apr 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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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찬  서울노동권익센터 소장



몇 년 전 서울에서 열린 비정규노동박람회 주제는 ‘숨겨진 노동을 말하다’였다.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 노동은 그야말로 존재감이 미약하다. 굳이 나의 일을 말하고 싶어 하지도 않고, 사람들 또한 나의 일에 대해서 궁금해하지 않는다. 청소년들의 장래 직업 목록에 들어있지도 않다. 그런데 우리 생활과 아주 가까이에 그런 비정규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바로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존재. 사회적 연대를 위해서 우선 그 노동을 마주할 필요가 있었다.


아파트 경비 노동자. 그들 또한 그림자 같이 우리 주변에 숨겨진 노동이었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이들의 노동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예외 없이 그들의 노동에도 수많은 부조리함이 스며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해결해야 할 문제임에는 틀림없다고 하지만 여전히 제자리걸음만 하는 형국이다. 어떤 경비 노동자는 “우리 문제가 언론에 나가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해결되는 일은 없으면서 오히려 주민들이 감원하자고 할까 봐 겁나요?”라고 말하기까지 하는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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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네와 고용노동부의 비조직·비정규 노동자 이해 대변을 위한 정례협의회


코로나19 대응 단계가 ‘심각’으로 격상되고 2주가 지난 어느 날, 아파트 경비 노동자에게 돌리는 소식지와 손 소독제, 마스크를 갖고 서대문구에 있는 아파트단지 몇 군데를 돌았다. “아파트 경비원에게 경비 말고 다른 일 시키면 단속한다는데 어떻게 되는 거요?”라는 질문이 쏟아진다. 며칠 전부터 언론을 통해서 경비업법을 위반하는 아파트 경비 업무에 대해서 상반기에 행정계도를 하고 하반기부터는 단속을 하겠다는 경찰청 발표가 언론을 탄 것이다. 이렇게 이들의 노동은 또 한 번 세상 밖으로 소개되었다. 아파트 경비 노동자들의 불안을 한껏 돋우고.


이번만큼은 케케묵은 이 문제-경비업법, 감시단속직-를 풀고 가야지 않겠나? 그런데 이 또한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오랜 세월 관행으로 굳어온 것을 현행법 위반이라 단속만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고, 그렇다고 관행을 합법화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이 경우야말로 이해관계 당사자가 모여 앉아서 해법을 찾을 수 있도록 조직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파트 경비 노동자들의 의제가 다른 사회적 대화 기구 의제에 비하면 시답잖아 보일지 모르지만, 훈련도 환경도 조성되어 있지 않은 사회에서 그럴듯한 의제만 사회적 대화의 의제가 아니라 현장에서 실험하고 조직해낼 수 있는 의제를 갖고 실현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이 대목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조직화다. 아파트 경비 노동자들이 조직되어 있지 않고 사회적 대화와 타협은 구성될 수 없다. 우리는 의제 중심의 조직화를 해보자는 것이다. 관료 중심의 정책 결정이 아니라 ‘보다 타당하고 수용 가능한 정책’을 만들기 위해서 사회적 대화를 통한 정책 결정을 해보자. 이것이 지난 2년간 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이하 한비네)와 고용노동부가 비조직·비정규 노동자 이해 대변을 위한 실무협의를 지속해 온 이유이다. 


2018년 1월,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중소·영세사업장의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서 정부는 일자리안정자금 지원을 시작했다. 서울시는 아파트 경비 노동자의 고용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고 판단해서 서울노동권익센터에 ‘아파트경비노동자고용유지특별대책반’을 설치하고, 아파트 경비 노동자 전수조사, 구별 아파트 경비 노동자 고용유지 설명회(일자리안정자금 설명회)를 고용노동부와 공동으로 개최하고, 피해 노동자 발생 시 권리구제 지원, 아파트 경비 노동자 교대 근무제 개선방안 연구와 아파트단지에 실험적 적용 컨설팅을 주요 사업으로 편성했다. 


이를 계기로 그전부터 아파트 경비 노동자 모임 형성을 지원했던 노원구를 필두로 4개 구에서 아파트 경비 노동자 조직화 지원사업을 공동으로 시작했다. 이때 우리가 구상했던 것이 아파트 경비 노동이 좋은 일자리로 지속 가능하기 위해선 경비원이 아닌 관리원으로 직무를 일부 바꾸고, 이미 의미가 없어진 24시간 교대 근무제를 개선하자는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 같은 기관이 컨설팅사업으로 편성해서 입주자대표회의가 결정하고 전환하는 방법과 아파트 경비 노동자 당사자 모임을 조직해서 우리 센터와 같은 기관을 포함하는 ‘좋은 일자리 상생협약’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었다. 


2019년 이 사업은 한비네 공동사업으로 선정되고 고용노동부 공모사업에도 선정되었다. 이후 고용노동부와의 비조직·비정규 노동자 이해 대변 활성화를 위한 실무협의에서 아파트 경비 노동자 공동사업은 꾸준히 공유되었고, 지역적 편차는 있으나 지방고용노동청의 협력도 얻었다.


2019년 말, 서울지역 단위와 전국 단위가 각각 아파트 경비 노동자 한마당 행사와 고용안정 권리선언을 조직하고 2020년까지 공동사업을 결의했다. 공동사업 단위는 더욱 확대되어 20여 개 기관과 단체가 전국 각지에서 아파트 경비 노동자 모임을 형성하고 있고 전국적인 조직화를 위한 지원사업을 하고 있다.


지역별로 아파트 경비 노동자 당사자 모임이 다양한 형태로 활발히 조직되고 있던 터에 코로나19 감염병 확산으로 모임이 모두 중단되고 있어 걱정이다. 현장 방문을 해보자고 하던 때에 마침 언론에 경비업법 위반 단속 보도가 나온 것이다. 2년을 준비해 왔다. 올해엔 이 문제를 풀어보자. 당사자 조직과 함께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로. 노동존중·포용성장·사회적 대화가 중요한 정책이라면 비조직·비정규 노동자의 조직화 지원 또한 정부의 중요 정책 중 하나여야 한다. 조직화 지원사업의 전형도 매뉴얼도 아직은 미흡하지만, 아파트경비노동자공동사업단의 새로운 시도는 이해 대변, 사회적 대화, 협약에 의한 고용안정의 의미 있는 결과를 이뤄낼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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