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경비 노동자] 전국 아파트 경비 노동자들이 함께할 날까지

by 센터 posted Apr 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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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헌 서대문구근로자복지센터 자문위원



“서대문구근로자복지센터에서 왔습니다.”

“무슨 일로 왔어요?”

힐끗 돌아보는 표정이 ‘또 무엇을 팔려고 왔나 보다’ 또는 ‘바쁜데 또 무슨 귀찮은 일?’ 하며 빨리 이야기하고 가라는 태도다. 시간이 좀 걸리는 실태조사 설문지를 받기가 쉽지 않은 분위기지만 한 발 더 경비실 안으로 들어선다. “노동부에서~~, 잠시 시간 좀 내주시겠습니까?” ‘차분하게 말해야지.’ 하는 경비초소 앞에서의 다짐과 달리 분위기에 쫓기듯 숨이 가쁘고 말은 꼬인다. 경비 노동자들의 반응은 갖가지다. “노동부? 아무 쓸데 없는 일 뭐할라고 해요? 바빠 죽겠는데~ 그만 가소!” “나는 이런 거 몰라요. 이런 거는 관리실에 가서 이야기해야지. 저기 관리실에 가보소.” “단체(노조) 만들자는 건가? 돈 내야 되는 거 아니요?” “글쎄, 이런 거 한다고 얼마나 도움이 될까?” “진작 했어야 할 일을~ 더운데 수고하시네요.” 지난해 7, 8월 무더위 속에서 실태조사 설문지를 들고 아파트 단지를 처음 방문할 때 이야기다. 서대문구 아파트 대략 250개 경비실을 일일이 방문해 받은 설문은 백 장을 넘지 못했지만, 출발로는 결코 작지 않은 성과였다.


4.한마당.jpg

2019년 11월 7일, 서대문구 사회적경제마을센터에서 열린 서울지역 아파트 경비 노동자 한마당


아파트 경비 노동자 자기 대변 조직의 의미


전국 15개 지역에서 이뤄진 아파트 경비 노동자들의 고용 노동 실태 설문조사에서 경비 노동자들의 불합리하고 열악한 노동 현실이 드러났다. 가장 심각한 현실은 용역업체들의 단기계약 확산으로 일상적인 고용 불안과 말 한마디 못하고 시키는 대로 일할 수밖에 없는 현장 분위기와 떼먹히는 퇴직금 문제다. 여기에 늘어나는 휴게시간과 여전히 형식적인 휴게공간 문제도 있다. 사실 아파트 경비 노동자들의 노동 현실은 이미 이런저런 지역 차원 실태조사로 다 알려져 있던 사실이다. 이번 전국적 실태조사가 특별히 의미를 갖는 것은 단지 실태조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파트 경비 노동자들의 자기 대변 조직 건설을 목표로 한다는 점이다. 경비사업단 토론에서 아파트 경비 노동자도 노동자인 이상 자신들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대안은 결국 노동조합이라는 것에 이견은 없다. 하지만 촛불혁명 이후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크게 늘어나고 있음에도 하청 용역 등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길은 여전히 수많은 희생을 요구하는 고난의 길이다. 아파트 경비 노동자들은 특별히 더 어려운 현실이라 조금 더 실현 가능한 경로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아파트 경비 노동자들은 고령이라는 당사자 특성에 원청이 서비스 대상인 다수 주민이라는 노사관계 또한 특이하다. 또 시대적 특성도 있다. 갈수록 대단지화 되면서도 인력 절감형 건축으로 예전에 비해 턱없이 줄어드는 경비 노동자 숫자다. 한때 민주노총 안에 아파트 경비 노동자 노동조합 건설이 힘을 얻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다르다. 강남 현대아파트 이만수 열사 분신 투쟁 이후 서울일반노조가 아파트 쪽 조직사업을 중단한 것처럼 아파트 경비 조직사업이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영역으로 확인되어 왔다. 경비 노동자들의 전국 조직 건설을 시도하고 있는 ‘전국아파트경비노동자 사업단’의 고민도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전국 조직 건설 도정에 주요 사업으로 기획하고 있는 단지별 지역별 ‘좋은 아파트 상생협약’ 운동도 그러한 고민의 연장선이다. 한 가지 공통된 인식은 아파트 경비 노동자들의 전국 조직은 예전과 같은 아파트 단지 차원의 교섭 투쟁이 아니라 전국적 단결로 사회적 투쟁을 만들어갈 수 있어야 존립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국적인 조직화를 위해서는 열다섯 지역 수준으론 거점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해를 넘기면서 함께할 수 있는 비슷비슷한 이름의 지역 센터들을 합류시키고 있고, 센터가 아니더라도 함께할 수 있는 지역 단위를 찾고 있다. 적어도 올해 상반기 내에 전국 모든 광역단위 주요 도시에 함께할 거점을 세워야 할 것이다. 


서울지역 지자체 센터 중심 조직화


특히 서울이 중요하다. 서울에서 아파트 경비 노동자들이 중심을 잡고 대중적으로 일어설 때 전국 각 지역의 호응과 합류는 그만큼 쉽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여러 해를 먼저 개척하며 경험을 쌓아온 노원노동복지센터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노원노동복지센터는 매월 경비 노동자들이 모임을 갖고 교류해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당사자 구심력을 키워가고 있다. 하지만 노원지역만으로는 깃발을 올릴 수 없어 서울지역 전체가 함께할 날을 기다려왔다. 하지만 넓고 큰 서울이다. 해를 넘기면서 많은 지자체 센터들이 이 사업에 합류하고 있어서 다행이다. 특히 노원노동복지센터가 중심인 동북권역과 서대문구근로자복지센터가 앞장서서 함께하고 있는 서북권역(은평-서대문-마포-용산)처럼 서울지역 실태조사 참여 센터들이 앞장서서 남동·남서·중부 등 주변 권역을 연계하면서 사업 흐름을 만들어가는 노력이 절실하다. 용산 같이 센터만이 아니라 가능한 지역 단체에도 적극 제안해서 한 군데라도 더 넓혀내야 할 것이다. 우선 21대 국회 개원에 맞춰 준비하고 있는 6월 중순 경비 노동자 국회 토론에 결합 또는 참관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연말까지 꾸준히 결합거점을 발굴해나가야 할 것이다. 


전국 조직화에 힘 쏟아야


코로나 장기화 정세가 큰 난관을 만들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전국경비사업단 결정이 줄줄이 폐기되거나 연기되었다. 6월 토론회도 원래 3월로 계획했던 일이다. 작년 12월부터 시작했던 전국적 ‘아파트 경비 노동자 고용안정 권리선언’ 서명운동도 대부분 지역에서 중단된 가운데 서명운동을 5월 말까지로 연장한 상태다. 또 실태조사 이후 매월 모임을 추진해왔던 지역이나 준비 중이던 지역에서도 월례모임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6월 국회 토론에 대한 전국적 관심을 불러일으켜야 하는 4, 5월인데 너무나 안타까운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코로나 역병으로 당장 경비 노동자를 모아내는 것은 어려운 현실이다. 그럼에도 전국적 조직화를 성공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더 많은 지역 거점 확보와 진행 상황을 아파트 현장과 공유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인력과 예산의 문제가 있겠지만 이 기간 동안 모임과 방문 활동을 대체할 수 있는 특단의 대책도 찾아볼 필요가 있다.


주·객관적인 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경비 노동자들의 전국적 단결을 위한 출발은 시작되었다. 작년 11월에 ‘서울지역 경비 노동자 한마당’과 경비 노동자 국회 토론회에 당사자들이 참가하였고 관심 있는 경비 노동자들 사이에 당사자 조직 건설 사업에 관심이 높아졌다. 특히 오는 6월에서 12월로 미뤄진 정부부처의 경비업법 개정 계획 발표는 그런 관심을 크게 증폭시키고 있는 가운데 관련 부처들의 논의 과정에 경비 노동자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모아내야 한다는데 적극 동의하고 있다. 돌아보면 때맞춰 경비 노동자 사업단이 출범하였고 정세는 당사자 경비 노동자들의 관심 속에서 힘차게 사업을 전개할 수 있는 조건이다. 코로나 위기와 재정, 인력의 취약함이라는 어려움이 있지만, 12월이 오기 전에 전국의 경비 노동자들이 함께 깃발을 올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 아파트 현장에서 개별적으로 만나보는 경비 노동자들을 통해서도 그들이 함께 손잡고 나설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업단이 전하는 경비노동자신문도 관심 있게 읽어보고 있다. 사업단을 만나는 경비 노동자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아파트 경비신문 가지고 왔습니다.”

“수고 많습니다. 커피 한잔하고 가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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