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터는 제 활동의 텃밭입니다

by 센터 posted Apr 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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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신 센터 소장



집권 여당이 압승한 총선 다음날입니다. 잠 못 이룬 이들이 부지기수였겠지요. 세월호 참사 6주기 당일이기도 해 맘이 더욱 싱숭생숭합니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가 달라야 한다고 촛불항쟁 때를 비롯해 목소리 높여 외치고 불의한 대통령도 탄핵했지만, 노동 현실은 쉬이 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가 달라야 한다고 많은 뜻있는 이들이 주창하고 있지만, 경제성장을 금과옥조로 여기고 무한 탐욕을 부리며 기후 변화 위기와 생태 환경 악화를 초래한 신자유주의 세계 정치 경제 체제를 결정적으로 뒤바꿀 변화의 흐름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코로나 위기 속에 재난 기본소득을 필두로 변화의 단초가 마련되고 있어 사회 각 분야에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우리 사회가 뒤바뀔 수 있도록 힘 모아 가야겠지요.


미래통합당이 참패한 이번 총선 결과로 비정규 권리보장 입법을 추진할 최소한의 의회 구조가 만들어져 그나마 다행입니다. 당장은 노동을 중심의제로 삼는 진보정당들이 부진해 그 동력이 얼마나 힘차게 작동할지 기대가 크지 않지만, 코로나 위기란 비상상황을 맞은 만큼 다양한 경로로 애써봐야겠지요. 특히 센터가 시민사회단체 정책협약 1호로 정의당과 합의한 ‘비정규직 7법’부터 이행해나가야겠습니다. 당장 코로나 위기가 장기화되고 심대해지면서 4월 고용대란과 대량실직이 예고되는 조건에서 무엇보다 고용보험 전면 확충이 최우선 선결 입법 개선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관련해 200만 명이 넘는 특수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인정도 서둘러야 할 법제도 개선 과제입니다. 코로나 사태 속에서 소득이 90% 이상 격감하거나 아예 한 푼도 받지 못하는 방과후강사와 보험모집인을 비롯한 특수고용 비정규직은 피해가 집중되고 있는 대표적인 취약노동계층이므로 최소한 실업급여는 받을 수 있도록 해야 마땅합니다. 21대 국회 1호 노동 입법은 고용보험법 전면 확충 또는 특수고용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이 되어야 합니다.


센터 창립 20주년을 맞은 올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불러온 심상찮은 정세를 목도하며 여러 생각과 감회가 듭니다. 5월 20일 센터 20주년 창립 기념행사와 토론회도 하반기로 연기되고, 한비네 공동워크숍과 수련회를 비롯한 여러 일정이 취소되거나 순연되고 있어 걱정도 되고 시급하게 대안 마련도 해야 합니다. 제가 2009년 2월 센터 반상근 부소장으로 들어와 센터 소장을 맡아 상근한 지 올해로 만 10년이 되는데요, 세월 참 빠르네요. 제 후임으로 오는 서울노동권익센터 문종찬 소장에게 5월에 센터 소장 직책을 넘겨주게 됩니다. 이번 한울림이 소장 명의로 《비정규노동》에 싣는 마지막 글이 되겠네요.


주마등처럼 많은 일이 스쳐 지나갑니다. 어려운 센터 살림살이를 함께 힘 모아 헤쳐나오면서 정상화시킨 여러 상근 동지들의 얼굴이 먼저 떠오릅니다. 센터가 기존 현장연대 및 정책연대와 더불어 네트워크 사업으로 활동 영역을 확대하고, 서울노동권익센터와 서울감정노동센터 수탁 결정과 운영 과정에서 서로 힘주고 받으며 오늘의 센터까지 이르게 한 동지들의 분투와 노고를 잊을 수 없습니다. 최저임금위원회와 일자리위원회,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참여해 보람도 있었지만 예기치 못한 이런저런 고초를 겪을 때 위로하고 힘이 돼준 동지들의 든든하고 살가운 모습도 눈에 선합니다. 돌아볼수록 참 고맙고 고마운 동지들입니다.


센터에 오게 된 과정을 간만에 떠올려봅니다. ㈜이랜드에서 17년 정규직으로 근속하며 노조 활동을 하고 세 차례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 속에서 두 번의 구속과 두 번의 해고를 겪고 난 후 복직하지 못한 채 당도한 곳이 센터였습니다. 이랜드노조 활동을 주축으로 민주노총 서울본부 비정규 담당 부본부장과 서울비정규연대회의 의장,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이하 전비연) 상황실장 등을 맡아 비정규 운동에 주력했지요. 뜻하지 않게 전비연 후보로 민주노총 부위원장 선거에도 출마하고, 2008년 이랜드 투쟁 승리를 위해 진보신당 국회의원 비례후보로도 출마했지만 낙선했지요. 최근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비정규직 계층별 대표까지 포함하면 정규직 활동가가 매번 우여곡절 끝에 비정규 대표로 나서곤 했는데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찬찬히 돌이켜보면 굽이굽이 돌고 돌아 지금 이렇게 센터로 와서 오래 활동하고 있는 게 운명이다 싶기도 합니다.


센터 소장으로 일한 10년이 제 삶과 활동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는 건 물론이고 참 행복한 기간이었습니다. 두말할 것 없이 저를 늘 변함없이 의기투합하며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신 조돈문 대표님을 비롯해 멋진 평생지기 동지들을 남부럽지 않게 많이 만난 것이 제겐 가장 소중한 인생의 선물입니다. 센터가 가진 최고의 자산이기도 하고요. 일상의 애환을 함께 나눈 센터 상근 동지들과 더불어 공동 대표님과 이사·감사님들, 여러 위원회 위원님들, 센터가 수탁 운영하는 서울노동권익센터와 서울감정노동센터 상근자들과 쉼터 상근 간사들, 한비네와 서로넷 동지들, 투쟁과 조직화 현장에서 만난 여러 비정규 노조 동지들, 센터 활동 과정에서 안팎으로 인연을 맺은 수많은 동지들 모두가 제겐 활력과 자부심의 원천이었습니다. 


막상 소장을 그만둔다 생각하니 후회는 없지만, 지난 시간이 많이 그리울 것 같아 감상에도 젖게 됩니다. 이리 오래 할 줄은 몰랐지만 그새 1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촛불항쟁을 비롯한 많은 사회 변화가 있었고 개선도 됐지만,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 노동자들의 현실은 힘겹고 고단합니다. 하루빨리 문을 닫아야 하는 숙명을 지닌 센터가 앞으로도 한동안 비정규 문제 개선과 해결을 위해 열심히 활동해야 할 시대 상황입니다. 비정규 노동자 규모가 여전히 1천만 명을 넘을 정도로 심각한 만큼 센터는 초심을 되새기며 창립 20주년인 올해를 새 출발의 계기로 삼아야겠지요. 특히 코로나 사태 속에서 이름도 모를 수많은 취약계층 비정규 노동자들의 일상이 더욱 고통받고 있는데요, 센터가 지금까지처럼 제 몫을 잘할 거라 믿습니다. 올해 이사회·총회를 통해 새로운 공동대표와 소장, 실행이사들로 새 출발 진용을 꾸린 센터가 듬직합니다.


센터는 여전히 제 활동의 텃밭이므로 저도 비정규 운동 활동가로 무엇이든 손발 보태러 때마다 자주 들르겠습니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과 조직화 현장에서, 다양한 정책연대 일선에서, 네트워크 사업 현장에서 계속 만나도록 하겠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센터를 아끼는 마음으로 부족한 저를 채워주고 북돋아 주신 모든 분께 온 맘으로 감사드립니다. 코로나 이겨내고 건강 잘 돌보며 내내 건승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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