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을 게을리한 순간

by 센터 posted Feb 2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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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인 직장갑질119 노무사



청년 실업률은 7.3퍼센트(2019.12)1)로 전체 실업률의 두 배를 웃돈다. 그나마 청년 실업률이 낮아지고 고용률이 올라갔지만, 시간제 일자리에 취업한 비율이 늘어난 것을 볼 때 청년이 체감하는 취업난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청년들의 취업난을 빗댄 신조어는 괴담이 됐고, 청년들은 괴담의 주인공이 되지 않기 위해 과잉 노력을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청년이 첫 취업을 하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평균 11개월2)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숨겨진 기간이 있다. 4년제 대졸자를 기준으로 대학 생활을 하는 4년 내내 인턴, 어학 연수, 학점 관리, 공모전, 토익, 자격시험 등 쉼 없이 취업에 도움이 될 만한 준비를 한다. ‘명문대’ 간판이 가장 큰 스펙인 사회에서, 간판을 쥐기 위해 보내는 중고등학생 기간까지 포함하면 취업 준비를 위한 직·간접적인 기간은 무한정 늘어난다. 청년들은 이미 청소년 시절부터 차곡차곡 취업 준비를 해온 것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청년들이 처음 취업한 직장에서 근속하는 기간은 평균 14개월3)에 불과했다. 긴 취업 준비 기간이 무색할 정도로 첫 직장의 경험은 오래가지 않았다. 청년들이 첫 직장을 퇴사한 이유로는 근로 여건 불만족이 49.7퍼센트로 가장 많았고 전망이 없다는 비율은 8.6퍼센트였다. 반면 개인/가족적인 이유는 14.5퍼센트, 임시적, 계절적 일이거나 계약 기간 만료는 12.3퍼센트였다.4) 즉 퇴사의 귀책사유가 누구에게 있느냐로 단순 구분하면, 회사 측에서 원인을 제공한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다. 어렵게 취업한 첫 직장에서 청년들은 퇴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린 것일지도 모른다. 


유스토리_표1.jpg

첫 직장, 첫 사회생활 앞에 붙는 ‘처음’이라는 단어는 설렘과 두려움을 일으킨다. 처음 하는 일이기 때문에 더 잘하고 싶어서 행여나 잘못하진 않을까 걱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청년들은 첫 직장 생활에 잘 적응하기 위해 각오를 단단히 한다. 반대로 직장에서 청년들을 존중하지 않을 때 주로 이런 청년의 마음이 이용된다. 


노동자 A의 팀장은 평소 막말을 해왔다. “상사가 까라면 까야지, 내가 니 친구야? 나 때는 이런 거 상상도 못 했어.”라는 식이다. 이곳이 첫 직장인 노동자 A는 ‘사회생활’을 하려면 이런 건 견뎌야 하는 거냐고 질문했다. 팀장의 발언은 위계적인 군사문화를 답습하는 것에 불과했다. 합리적이지도 않았고 수용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었다. 노동자 A는 상사에게 고충을 토로했다. 협박하는 듯한 팀장의 발언에 스트레스를 받았고 때로는 공포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충을 들은 상사는 오히려 노동자 A를 탓했다. “팀장이 심하긴 했지만, 팀장에게 못 맞추겠다면 너가 나가는 게 맞지.”라며 팀장을 두둔했다. 


노동자 B 역시 첫 직장에서 비상식적인 일을 경험했다. 노동자 B는 자신의 업무가 아니더라도 솔선수범해서 상사의 일을 도왔고, 그 결과 상사로부터 친밀감과 신뢰를 얻었다. 그러자 상사는 도를 넘은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주말에 자신의 텃밭에 와 과일을 따라고 했고, 컴퓨터 부팅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이유로 일찍 출근해서 미리 자신의 컴퓨터를 켜놓으라고 했으며, 점심시간에는 자신의 비빔밥을 대신 비벼 달라고 하기도 했다. 지나치게 개인적인 요구를 하는 것 같아 노동자 B는 용기를 내 거절하기도 했지만, 상사는 “와서 공짜로 과일 따가면 되지 않느냐.”며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잘하고 싶었던 노동자 B의 선의는 ‘갑질’이 되어 돌아왔다. 


노동자 A의 회사는 잘못된 기존 문화를 바꿀 생각이 없었고, 노동자 B의 상사는 상대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계속해서 군림하려 했다. 두 상사는 이미 기득권이었고 그러한 환경에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노동자 A와 B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다. 폭언과 퇴사 종용, 허드렛일을 시키는 것 모두 직장 내 괴롭힘이고 ‘갑질’이다. 그러나 반대로 폭언이나 허드렛일을 시켜야만 ‘갑질’인 것은 아니다. 당연한 ‘갑질’을 경험했다면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한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사실 청년들에게 가하는 은근한 ‘갑질’은 일상화되어 있다.


노동자 C는 첫 직장에 취업해 의욕이 넘쳤다. 그런데 머지않아 퇴사를 생각하게 됐다. 출근 시간은 9시지만 매일 30분씩 일찍 출근해 대표 방에 히터 켜기, 바닥 쓸기, 분리수거, 설거지, 신문 정리, 커피머신 청소 등을 했다. 팩스가 오는 소리가 들리면 제일 먼저 달려가 수신자를 확인해 가져다줘야 했고, 상사가 춥다고 하면 일어나서 문을 닫아야 했다. 온갖 심부름이 피곤하게 느껴졌지만 ‘막내’니까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참았다. 그러던 중 노동자 C는 급한 일을 하느라 심부름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상사는 “일 욕심이 없는 애”라면서 노동자 C를 비난했다. 


앞선 두 사례와 비교하면 노동자 C의 경험은 비정상적이거나 폭력적이지 않았다. 다만 ‘막내’에게 잡다한 일을 떠넘겼을 뿐이다. 잘못된 습관이다. 그러나 기득 상사들은 ‘막내’가 심부름을 하는 상황에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자신을 둘러싼 구조가 익숙할수록 그 속에서 누군가 고통을 당한다는 걸 알아차리기 어렵다. 그렇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직장갑질의 주범이 되고 청년을 직장 밖으로 내몰게 된다. 


청년들이 겪는 직장갑질의 원인은 주로 성찰을 게을리한 기득권에 있다.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본인에게 편하고 익숙한 구조를 거꾸로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게 ‘꼰대’가 되고 “나 때는 다 했던 일”이라고 말하는 ‘라떼충’이 된다. 사회초년생이자 청년들은 피라미드 조직구조에서 가장 만만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의욕은 넘치지만 어리숙할 수 있고 실수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어떤 이유에서도 직장갑질은 정당화될 수 없다.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을 의심 없이 따라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직장갑질에 가담하게 될 것이다. 청년을 직장 밖으로 내몬 원인이 나에게 있을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갖고 자신을 성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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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통계청(2019), 경제활동인구조사

2) 통계청(2019), 경제활동인구조사

3) 통계청(2019), 경제활동인구조사

4) 통계청(2019), 경제활동인구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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