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노동] 어차피 둥근 세상에서 우리는···

by 센터 posted Feb 2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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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금분 서울감정노동센터 심리상담팀장



민원인에게 따귀를 맞고 멱살을 잡히는 사회복지사. 퇴근 이후 밤길 조심하라는 위협을 받고 실제 길에서 마주치게 되면서 두려움을 느끼고, 업무상 스트레스 과다로 인해 정신과 진료 후 우울, 불안 장애로 약물을 복용하게 되고 상담 신청하게 된 사례. 무언가 세상에 가치로운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하게 된 일로 이렇게 큰 상처를 입을 줄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오랜 기간 전화 응대하는 일을 하면서 고객들에게 욕을 듣다 보니 자존감이 낮아져 ‘나는 원래 그럴 만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너무 우울하고 한 번 기분이 가라앉으면 회복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들다. 타인에게 칭찬을 듣게 되면 불편한 느낌이 들고 거짓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나는 정말 나쁜 사람인가 보다며 상담을 신청한 사례 등 감정노동에 종사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부정적 정서 경험은 참으로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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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노동자 심리상담


감정노동 심리상담은 2017년 서울노동권익센터 감정노동보호팀이 사업을 시작한 해에는 개인상담을 812회기 진행하였고, 2018년에는 8월에 감정노동보호센터로 서울시와 계약을 체결하고 10월에 센터를 개소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1,778회기, 2019년에는 2,242회기 개인상담을 진행하였다. 이 숫자는 단순히 개인상담만을 진행한 것이고 집단 치유 프로그램은 별도로 진행하였기 때문에 센터의 지원 프로그램을 거쳐 간 감정노동자 숫자는 훨씬 많을 것이다. 


감정노동자들의 업무는 눈에 보이는 신체에 부상을 입지는 않지만, 마음에 지속적인 상처를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심리적 어려움을 호소하며 퇴직하거나 다양한 신체 증상을 보이게 된다. 심리적 요인으로 병원에 가면 원인을 모르는 경우도 많고 꾀병으로 오해받아 억울한 경우도 많다. 나만 아니면 상관없거나 내가 당한 걸 너도 당해보라는 식의 괴롭힘, 감히 나에게 라는 식의 갑질이 만연해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감정노동자 심리상담을 하다 보면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자존감이 낮아지고 지속적인 우울감에 둔감해지고 울컥거리는 화를 참지 못하는 본인을 탓하며 자기비하로 이어지는 경우들을 많이 만나곤 한다. 인간이 노동을 하는 이유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데 노동의 대가로 자기비하나 자존감 하락을 얻는다는 것은 너무나 억울한 대가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마음을 다치거나 힘든 이들이 전화 신청을 통해 상담실을 찾기 때문에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로 내담자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때가 있다. 한숨과 울분이 섞인 격앙된 목소리, 모든 기운이 다 빠져나간 듯 힘없는 목소리,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으나 긴가민가하여 조심스러운 목소리 등. 그러나 하나 같이 누군가의 공감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감정노동자의 감정노동 보호


대개의 심리상담 내담자가 그렇지만 감정노동 직군에 속해 일하는 내담자들은 고객에게 노동을 통해 공감하며 소진을 경험하고, 반대로 있는 그대로 자신을 수용해주는 공감을 통해 소진을 예방하기도 하고 다시 충전되는 경험을 한다. 힘들지 않은 노동이 어디 있겠냐마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직업상 요구되는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감정노동을 직업으로 하는 이들에게 감정은 자신 고유의 것이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더 힘들고 어렵다. 


상담실을 찾는 이들이 이런 부정적 정서를 경험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거기서 머물지만은 않는다. 가족이나 동료, 지인의 지지와 격려로 내면의 힘을 회복하고 어려운 상황에 마주 서는 모습을 보여줄 때 인간이 가진 강인함과 그를 둘러싼 든든한 안전망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고 어깨를 내어줄 때 주저앉았던 이도 다시 일어설 마음을 낼 수 있고, 다시 일어선 이가 또 다른 아픔에 공감하고 자신의 어깨를 내줄 수 있는 마음을 학습하게 된다. 개인에게 1차, 2차 지지세력이 되는 가족과 지인들의 안전망이라는 것은 실로 엄청 중요한 자원이다. 


이뿐 아니라 감정노동자들이 직접 속해 있는 조직의 보호도 매우 중요하다. 자신이 속해 있는 조직이 보호해줄 수 없다고 느껴질 때 개인은 허허벌판에 홀로 놓인 것과 다르지 않게 된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 이 같은 단어들은 그저 허울 좋은 이상에 불과하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갑옷을 두르고 힘을 잔뜩 준 상태로 세상에 맞서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질 좋은 서비스를 기대하기란 너무 힘든 이야기다.


감정노동 예방과 치유


감정노동으로 인한 소진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조직의 보호와 안전망을 잘 활용하여 건강한 사회생활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고, 이미 소진된 상태라면 회복을 위한 치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감정노동자 개인의 스트레스 관리, 조직 차원의 관리, 사회와 국가 차원에서의 관리 모두가 적절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건 모두 알고 있다. 그러나 제대로 안 되는 것이 현실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치유와 예방을 위한 법령이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지, 관리 감독하고 지원하는 시스템이 인식 개선부터 노동 환경 개선에 이르기까지 보다 구체적으로 작동되어야 한다는 얘기이다.


우리는 바쁜 세상을 돌고 돌아 하나의 원 안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다. 서로가 밀접하게 영향을 미치고 영향을 받는다. 핸드폰을 통해 손안에서 모든 희로애락을 경험하기도 하는 복잡한 세상에 살면서 인간의 소외는 어쩌면 피할 수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서울시 노동자 수는 500만 명이 넘는다 하고 그중 절반인 260만여 명이 감정노동에 종사하고 있다고 한다. 길을 가다 어깨를 부딪치는 사람들 가운데 감정노동에 종사하는 이일 가능성이 절반인 것이다. 이는 감정노동자들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이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언제든 나에게 올 수 있는 그이들의 고통에 눈 감아서는 안 되는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둥글게 도는 지구에서 돌아 돌아 만나지는 우리. 일상에서 감정노동으로 만나게 되는 이들에게 만큼은 서로의 손끝 온기가 서로에게 닿아 따뜻하고 살 만한 세상이 되어주면 좋겠다. 어디에 있든 자신의 자리에서 당당히 노동하고 삶을 누릴 수 있는 그런 세상. 그러기 위해서 우리 모두가 치유와 예방의 바이러스를 지녀야 한다. 바로 인간을 인간으로 보는 것, 타인을 나와 동등한 존재로 대하는 것, 그것이 최고의 예방이고 최고의 치유이다. 오늘도 찾아오는 이들과 마주 앉아 그 사실을 기억하고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마음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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