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임기 여성은 잘라야 해

by 센터 posted Feb 2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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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선 손잡고 활동가



“가임기 여성은 잘라야 해!” 이 한마디를 바로잡으려 했던 두 노동자가 있다. 2015년 원종복지관에서 시작된 두 노동자의 투쟁은 5년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다. 두 노동자는 직장 내 괴롭힘에 저항한 이후 일자리를 잃었다. 뿐만 아니라 원종복지관 사건을 공론화한 이후 29건의 민·형사 소송에 휘말리게 됐다. 직장 내 괴롭힘에 맞선 용기에 복지관은 무더기 소송으로 응수했다. 


괴롭힘에 침묵하지 않은 대가


2015년 조재화 씨가 둘째 임신 소식을 상사에게 알리자 상사는 “가임기 여성은 다 잘라야 해.”, “면접 볼 때는 둘째 안 낳는다고 했다.”며 조재화 씨를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조재화 씨는 갈등을 일으키기 싫었지만, 용기를 내어 해당 폭언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를 복지관 쪽에 요구했다. 그러나 표면적인 사과만 있었을 뿐 실질적인 조치는 없었다.


조재화 씨가 출산 후 복귀하자 본격적인 직장 내 괴롭힘이 시작됐다. 먼저 근무 공간이 바뀌었다. 가해 상사와 같은 공간에 책상이 배치되어 있었다. 조재화 씨가 용기를 내어 문제 제기할 수 있도록 곁에 있어 준 이은주 씨는 ‘계약 해지’되었다. 복지관 측은 이은주 씨가 조재화 씨를 ‘부추겼다’고 몰았다. 처음 상사의 폭언에 대해 조재화 씨를 위로해주던 동료들이 관장의 방치 속에 상사와의 갈등 상황이 이어지자 하나둘 등을 돌렸다. 복지관 관장은 분명 사과와 재발 방지를 약속했는데 출산 후 돌아온 일터는 직장 내 괴롭힘의 공간이 되어있었다. 조재화 씨가 함께 있는 공간에서 문제의 상사와 동료들은 이은주 씨를 고소 고발하는 소송에 대해 이야기했다. 조재화 씨는 고통의 공간이 된 직장에서 괴롭힘을 견디다 끝내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갔다. 병원으로부터 ‘불안, 우울을 동반한 적응 장애’ 진단을 받고 병가를 냈다. 곧바로 산재 신청도 넣었다.  


타깃이 된 비정규직 노동자


원종복지관 사건이 이례적인 것은 사 측의 무더기 소송 대상 당사자인 조재화 씨가 아닌 그이의 편에 섰던 이은주 씨라는 점이다. 이은주 씨는 소송의 대상이 되었을 뿐 아니라 조재화 씨보다 먼저 일자리를 잃었다. 복지관 측은 계약직 노동자였던 이은주 씨에게 ‘계약 기간 만료에 의한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이은주 씨는 자신에게 벌어진 상황을 쉬이 납득하기 어려웠다. 맡아서 진행하던 사업이 끝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뉴스에 소개될 정도로 잘 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은주 씨는 복지관 내 사회복지사들과 달리 ‘마을 만들기’라는 특정 사업을 전담하는 업무로 합류했다. 이은주 씨는 복지관에서 일하기로 결정하면서 기존에 하던 일들을 모두 정리했다. 제안이 들어올 때 계약직이라는 언급은 없었다. 첫 출근에서야 계약 내용을 들었다. 이미 하던 일을 정리한 상황이라 문제 삼기도 곤란했다. 업무도 계획부터 실무까지 전담하는 형태였기 때문에 추후 노동자 지위가 문제 될 일이 생기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실제 일을 수행하는 동안 문제가 되지도 않았다. 마을 만들기 사업이 본격화되고 지역 언론을 통해 주목받으면서 관장은 이은주 씨를 원종복지관 직원으로 소개하고, 기관지에도 일과 성과를 소개했다.


‘계약직’ 지위가 문제된 것은 조재화 씨의 문제 제기에 함께 목소리를 낸 시점부터다. 복지관은 이은주 씨가 ‘조직문화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라며 사업 진행과 상관없이 계약 기간 종료에 따른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이미 마을 만들기 사업에 대해 차기년도 예산안까지 작성해 보고를 마친 상황이었다. 상사의 폭언으로 인한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마을 만들기 사업에서 손을 떼라는 어떠한 언질이나 상황조차 없었다고 했다. 하루아침에 일을 빼앗긴 셈이었다. 


인권위도 법원도 보호해주지 못한 노동권 


조재화 씨와 이은주 씨는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진정을 넣었다. 인권위는 ‘별도의 구제 조치가 필요없다’는 결정을 했다. ‘피진정인으로부터 시말서를 받은 점’, ‘복지관의 공식 사과나 조치가 다소 미흡했다 할지라도 이후 당사자 및 구성원 간 일어난 일들의 제반 사정을 종합해 볼 때 별도의 구제 조치는 필요치 않을 것’이라고 기재했다. 이은주 씨에 대해서는 ‘계약 기간 만료에 의한 계약 해지’로 보았다. ‘계약 갱신 기대’나 마을 만들기 사업 전담인력이었다는 점 등을 다퉈볼 여지조차 갖지 못했다. 


비록 기각일지언정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은 ‘인권 침해’를 전제로 하고 있다. 다만 법령상 인권위 차원에서 구제 조치로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복지관 측에서 당사자가 사과하고 복지관도 재발 방지를 위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인권위가 더 조치할 것이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인권위 기각은 복지관 측에 또 하나의 빌미가 되었다. 이후 산재 과정, 민·형사 소송 과정에서 복지관과 관장은 인권위 기각 결정을 두고 ‘인권 침해가 없었다’는 자의적 해석을 달아 기관과 법원에 제출했다. 결정문 어디에도 ‘인권 침해가 없었다’는 내용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인권 침해’를 전제하고 있음에도 법원과 근로복지공단에서는 사 측의 해석에 따라 판단했다. 인권위 기각 결정이 반영되기 전 법원에서 승소했던 재판마저 뒤집혔다. ‘인권위 기각 결정 이전의 활동에 대해서는 무죄, 이후의 활동에 대해서는 유죄’로  판결되기 시작했다. 


조재화 씨의 경우 산재 판정이 매우 중요했다. 직장에서 일하던 중 극심한 스트레스로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는데도 복지관 측은 ‘병가’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직장 괴롭힘을 호소했고, 병원에서도 ‘불안과 우울을 동반한 적응 장애’라고 진단했는데도, 복지관은 ‘무단결근’이라며 수차례 내용증명을 보냈다. 심지어 산재 기간 동안 조재화 씨의 아픔을 두고 ‘산후우울증’이라며 모욕을 주기까지 했다. 병가를 인정받기 위한 유일한 창구는 산재를 인정받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마저도 인권위 기각 결정을 주요하게 받아들였다. 2018년 산재마저 기각되자 복지관은 조재화 씨에게 산재 신청 기간 결근을 ‘무단결근’이라며 해고통지서를 보냈다. 해고 사유로 ‘가혹한 성차별, 인권 침해, 직장 내 괴롭힘 등 허위사실을 유포’했다고 기재되어 있다. 


2.북콘서트.jpg

시민사회단체에서 주최한 원종복지관 토크콘서트 ‘두 여자 이야기’(@손잡고)


직장 괴롭힘이 허위사실일까?“


가임기 여성은 잘라야 해.” 이 말이 2020년 현재 임신을 알린 노동자에게 전해졌다면 어떻게 될까? 2019년 7월 16일 시행된 직장내괴롭힘금지법(근로기준법 개정안)은 마음에 안 드는 직원을 왕따시키고, 언어 폭력을 일삼고, 상사가 개인 심부름을 시키는 등 ‘직장갑질’을 행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2019년 10월 4일 원종복지관 문제를 주제로 한 토크콘서트가 시민사회단체 주최로 열렸다. 법률 자문 패널로 참여한 윤지영 변호사는 원종복지관에서 일어난 일은 “직장 내 괴롭힘이 맞다.”고 답했다. 안타깝게도 새로 만들어진 법은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저항이 ‘경력 단절’로, 연대가 ‘손배 폭탄’으로


현실은 정반대였다. 이은주 씨가 원종복지관 사건을 알리기 위해 했던 기자회견, 1인 시위, 집회, 심지어 SNS에 올리거나 공유한 20여 개의 게시글까지 모두 소송의 대상이 됐다. 모욕부터 정보통신법 위반, 손해배상 청구까지 이은주 씨 앞으로 누적된 민·형사 소송은 종류도 다양했다. 살면서 송사에 휘말려본 일이 없는 이은주 씨는 무더기 소송 앞에 법률 비용은 물론 재판에 오가는 것조차 버거웠다. 일자리를 잃은 후 생계조차 챙기기 힘든 상황에서 시도 때도 없는 소송은 말 그대로 일상을 뒤흔들었다. 투쟁을 위한 활동들은 줄어들고, 그 자리에 소송이 빈틈없이 들어찼다. 심지어 인권위 결정 이후 패소가 줄줄이 이어졌다. 


조재화 씨에게도 법은 너무 멀었다. 법률 비용 감당이 안 되니 변호사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조재화 씨는 해고통지서를 받은 이후 부당해고구제신청을 넣으려고 했지만, 법률 도움 없이 스스로 방법을 찾다가 기간을 놓쳤다. 인터넷을 뒤져가며 어렵게 시도한 행정소송은 전자소송 절차를 놓쳐 ‘절차상 이유로 기각’되었다. 


복지관과 관장은 소송을 멈추지 않았다. 사건 당시 관장은 이은주 씨에게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을 앞두고 청구 금액을 2천만 원에서 2천2백만 원으로 증액하는 청구취지변경서를 제출했다. 조재화 씨에게는 원종복지관의 법인 대표인 석왕사 영담 스님의 이름으로 구상금청구신청서가 날라왔다. 산재 기간 동안 사회보험료 자부담분을 복지관에서 지급했으니 돌려 달라는 것이다. 정작 조재화 씨는 산재 신청 기간 동안 임금 한 푼 받지 못했다. 해고도 억울한데 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던 사회보험료를 일방적으로 내고 이제 와 한꺼번에 토해내라니, 조재화 씨로서는 금액마저 부담되는 액수였다. 


현재 이은주 씨와 조재화 씨는 변호사 없이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형사소송 4건(병합 진행)은 2심 선고에서 벌금 500만 원이 선고됐다. 민사 손배 2천2백만 원은 1심에서 660만 원으로 판결되었다. 법원은 페이스북 22개 게시글에 대해 1건 당 30만 원씩 적용했다. 소를 제기한 관장은 이마저도 부족하다며 항소를 제기했다. 현재 2심을 기다리고 있다. 원금을 갚지 못해 지연이자가 12퍼센트씩 쌓이고 있다. 조재화 씨를 상대로 한 약 3백여만 원의 구상금 청구는 법원에서 화해조정결정을 내렸다. 기한을 두고 분할해 돌려주라는 요지의 결정이다. 폭언에 저항한 죄, 직장 괴롭힘을 직장 괴롭힘이라고 말한 이유로 일자리를 잃은 것도 모자라 무더기 소송에 휘말린 끝에 약 1500여만 원의 부담까지 짊어져야 하는 셈이다.


용기가 무더기 보복 소송에 무너지지 않도록


처음 두 노동자가 요구했던 사과와 재발 방지는 온데간데 없어졌다. 분명한 것은 원종복지관 사건의 시작은 “가임기 여성은 잘라야 해.”라는 상사의 폭언이라는 것이다. 사건을 심화시킨 주요 책임은 직장의 최고 책임자인 관장에게 있다. ‘일자리 성차별, 인권 침해, 직장 괴롭힘’이라고 말한 것은 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직장괴롭힘금지법이 통과된 과정도, 일자리 성차별 문제가 수면 위로 등장한 것도 누군가의 용기와 저항이 토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직장 내 괴롭힘을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말한 이유로 명예훼손 등 민·형사상 소송의 대상이 된다면 누가 ‘갑’의 횡포에 맞서 용기를 낼 수 있을까? 더욱이 비정규직 노동자가 괴롭힘을 당하는 동료에게 연대했다는 이유로 계약 해지를 당한다면 비정규직 노동자는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할 권리조차 차별받게 되는 게 아닌가. 두 노동자의 용기가 무더기 소송에 무너지지 않도록 독자 여러분도 손 내밀어 울타리가 되어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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