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경주를 멈추어 달라

by 센터 posted Feb 27, 202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민길숙 문중원시민대책위 상황실장



막강한 권한을 가진 마사회


지난해 11월 29일, 부산경남경마공원 문중원 경마기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05년 개장 이후 일곱 번째 죽음이다. 말 관리사 282명, 경마기수 35명, 320여 명이 일하는 한 사업장에서 이렇게 많은 이들이 죽었다. 이것은 한국마사회(아래 마사회)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음을 의미한다. 죽어간 노동자들의 유서에서도 드러난다.


   ▪이명화 기수, 2005년 사망 당시 26세 :

   “고통도 없고 편히 숨 쉴 곳엘 가기 위해….” 

  ▪박진희 기수, 2010년 사망 당시 28세 :  

   “경마장 기수들이 최고 힘들고 불쌍해. 

    도대체 부산에서 몇 번의 자살 시도냐.”

  ▪박용석 말 관리사, 2011년 사망 당시 35세 : 

   “입사 이래 5번의 골절, 한 번의 뇌진탕, 수많은 상처들 (중략) 

    이제는 그런 쳇바퀴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박경근 말 관리사, 2017년 사망 당시 38세 : 

   “X 같은 마사회” 

  ▪문중원 기수, 2019년 사망 당시 41세 : 

   “도저히 앞이 보이질 않는 미래에 답답하고 불안해서 살 수가 없다. 

    조교사의 부당한 지시가 반복되고 거절하면 말을 태우지 않는다.    

    조교사 면허를 땄지만 높은 사람과 친분이 없으면 마방을 받을 수 없다. 

    혹시나 해서 복사본 남긴다. 마사회 놈들은 믿을 수가 없어서”



그러나 마사회는 자신들을 ‘사용자가 아니라 경마 시행체’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기수와 말 관리사, 마주, 생산자들에게 아무런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사회는 실제 불합리하고 부당한 구조를 이용해 막강한 권한을 행사해 왔다.마사회와 경마 관계자라는 생산자, 마주, 조교사, 기수, 말 관리사들과의 관계는 아래 그림과 같다. 마사회는 구조의 맨 꼭대기에서 마사회법과 경마시행규정, 규칙 등 제도를 통해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고 있다. 바로 등록권과 면허권이다.


1.그림.jpg


생산자는 마사회에 등록해야 지원받을 수 있고, 마사회 소유의 씨수말 교배도 가능하다. 마주 또한 마사회법에 따라 마사회에 등록해야 한다. 생산자와 마주를 제재하는 사유 중에는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가 있다. 마사회만의 잣대가 이들을 통제하는 데 사용된다. 실제 2015년 마사회의 수입 말과 국산 말을 동시 경주에 출전시키겠다는 ‘경마 혁신안’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생산자를 징계하고, 개인 블로그에 마사회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마주를 징계한 사례가 있다. 


1993년도 개인마주제가 도입되면서 소위 ‘소사장’, ‘하청사장’ 역할을 하는 게 조교사다. 조교사도 마사회로부터 면허 갱신과 마사대부 통제를 받는다. 조교사 면허 발부와 갱신은 마사회 권한이다. 면허가 있다 하더라도 마주로부터 말을 위탁받아야 하고, 위탁받았다 하더라도 마사회가 전체 소유하고 있는 말을 키우고 훈련시키는 마사(마방)를 대부받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마사대부 심사는 외부위원 2명, 마사회 내부위원 5명이 심사한다. 막강한 권한이 있는 마사회에 밉보이기라도 하면 마사대부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조교사는 마사회의 마름, 소사장 역할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과정이 공개되지도 않는다. 오롯이 마사회가 결정할 수 있는 구조이다. 


조교사와 근로 계약을 체결하는 말 관리사나 기승 계약을 하는 경마기수는 조교사에 의해 철저히 통제된다. 마사회법에 따르면 기수는 경기마다 최선을 다해 전력 질주해야 한다. 그러나 종종 조교사를 통해 작전 지시라는 명분으로 부정한 지시를 받는다. 이를 거부하면 피라미드 가장 밑에 있는 말 관리사와 기수는 생존을 위협당한다. 이것이 마사회의 다단계 하청 구조이자 갑질 구조다. 


기수는 개인사업주라 한다. 노동자이지만 노동자로 불리지 못하는 특수고용노동자다. 사업주이기에 수익의 40퍼센트가량에 달하는 4대 보험과 세금, 장비 구입 등을 제한 금액이 개인 수익으로 남는다. 마사회에 잘못 찍히면 최저임금 수준에도 못 미치는 금액으로 한 달을 살아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마사회가 운영하는 한국의 경마장은 서울, 부산경남, 제주 세 곳이다. 기수의 수입은 세 곳이 다르다. 노동자 임금으로 비유하면 소위 기본급이 높은 곳이 서울이다. 부산경남은 경쟁 순위에 따라 책정되는 경마 순위 상금 비율이 훨씬 높다. 경마기수들은 기본급을 보장받을 수 있는 서울 기준을 부산경남과 제주에도 동일하게 적용하면 좋겠다고 한다. 그런데 마사회는 ‘선진 경마’ 체계에 맞춰 경쟁을 높여야 기수들이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한다며 무한경쟁의 잣대를 들이대 반박한다. 그렇다면 서울은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있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잇따른 죽음을 부르는 마사회


7명의 말 관리사와 기수가 마사회를 비판하며 목숨을 끊었다. 문중원 열사는 유서에 부정한 지시가 어떻게 있었고, 이를 따르지 않았을 때 받았던 불이익과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상세히 적어 놓았다. 문중원 열사는 2017년 박경근 열사, 이현중 열사 등 두 명의 말 관리사 죽음에 대해 마사회가 재발 방지를 약속하며 노조와 합의하고서도 이를 지키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문중원 열사가 마사회의 갑질과 부조리에 항거하며 자결을 결심하기 몇 개월 전, 또 한 명의 죽음이 있었다. 그러나 마사회와 유가족의 합의로 죽음은 드러나지 않고 조용히 묻혔다. 문중원 열사는 혹여 마사회가 자신의 죽음을 은폐할까 봐 ‘유서에 사본을 남긴다’고 친필로 적었다. 남은 이들에게 ‘죽음의 경주를 멈추어 달라’는 절규다. 


2월 18일, 열사가 마사회에 항거하며 자결한 지 82일째. 유가족은 문중원 열사가 유서에 남긴 직접적인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권리만 있고 책임은 없는 마사회의 71년 뿌리 깊은 무소불위 권력에 맞서 고인을 모시고 서울로 올라와 54일째 광화문 한복판에서 고인과 함께 싸우고 있다. 


그동안 언론을 통해 밝혀진 불법 베팅룸 운영, 해외 원정 도박단 유치 등 마사회의 불법·부패 행위는 정직, 감봉 등 솜방망이 처벌뿐이었다. 마사회 스스로 경마 시행체일 뿐이라면서도 경마 관계자들에게는 자격 정지와 박탈, 등록 취소 등 무소불위 권력을 휘둘렀다. 문중원 열사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마사회를 이대로 둔다면 여덟 번째 죽음이  없으라는 보장이 없다. 


1.서명.jpg

문중원 열사 진상규명과 한국마사회 적폐 청산을 위한 서명운동(@문중원시민대책위)


적폐 청산 외면하는 무책임한 정부 


문재인 정부 들어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만 네 번째 죽음이다. 정부는 적폐 청산을 하겠다며 가장 핵심이었던 삼성과 최순실 사이의 거래에 얽혀 있던 마사회에 대한 적폐 청산 보고서를 혁신위원회를 통해 작성하게 했다. 보고서는 작성되었지만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다. 문중원시민대책위가 어렵사리 입수한 적폐 청산 보고서에는 마사회의 수많은 부정과 비리가 담겨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사후 조치와 처벌은 없다. 의심스러운 것은 혁신위원회를 통해 적폐 청산 보고서 작업을 했던 자가 현재 한국마사회 상임감사라는 사실이다.


석 달이 다되도록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을 외치고 있는 유가족에게 싸늘한 문재인 정부는 잔인하다. 대통령이 직접 한국마사회 회장을 임명해놓고도 갑질과 부조리로 사람을 죽이고 있는 공공기관에 대해 어떠한 문책도, 관리·감독조차 하지 않고 있다. 


7명이나 죽어도 자기성찰과 반성이 없는 마사회가 스스로 제도 개선을 발표하고, 구조적 문제를 셀프 조사하겠다고 한다. 고인이 돌아가신 날 경마 경기를 하지 못했다며 20여 일도 지나지 않아 보전경기를 하겠다고 나섰던 마사회는 자정 능력이 없음이 확실하다. 설 전 해결을 위해 18일 동안 집중 교섭을 열한 차례나 진행했어도 “경찰에 직접 수사 의뢰한 결과가 나와야 처벌할 수 있다.”는 말만 되뇌었던 마사회는 여전히 꼬리 자르기를 할 생각에 여념이 없다. 그렇게 71년간 권력을 유지해온 마사회가 공공기관으로 정부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박근혜/최순실에게 말을 갖다 바치는 등 약점 잡힌 적폐 정부 시절이야  마사회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고 치자. 그것을 혁신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지금 태도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현 마사회장을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임명했다. 정부가 공공기관을 관리하고 감독해야 하는데, 오히려 정부가 관리받고 세금 챙긴다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문재인 정부는 즉각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시민대책위 활동


전근대적 법이라고 평가받는 마사회법으로 정부 위에 군림하는 마사회의 적폐 권력을 해체해야 한다. 그래야 더 이상 사람이 죽어나가지 않을 것이다. 한국마사회 문중원 경마기수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을 위한 시민대책위(이하 문중원시민대책위)는 2월 19일, 마사회의 불법, 부정행위 국민감사 청구를 접수한다. 공공기관으로 독점적 지위를 이용하는 마사회가 나라를 투전판, 도박판으로 만들고 있고, 사람을 무려 7명이나 죽이고 있는 현실을 국가기관이 제대로 관리·감독하라는 취지다. 부정부패 행위를 제대로 처벌해 설립 취지에 맞는 공공기관으로 탈바꿈하는데 역할을 하라는 뜻이다. 문중원 열사 죽음의 책임자는 정확히 마사회다. 책임자 처벌을 흐지부지할 수 없다. 그러면 또 죽기 때문이다. 


3월 7일이면 문중원 열사가 고인이 된 지 100일 되는데, 정말 그날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문중원시민대책위는 온 힘을 다해 문재인 정부에 책임 있는 역할을 촉구하는 실천 행동에 나설 것이다. 정부도, 국회도 총선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죽음의 일터 마사회, 문중원 열사의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에 그 어떤 조치도, 그 어떤 입장도 내지 않으면서 총선 승리, 정권 재창출을 구걸하는 꼴이 가당치 않다.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