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라는 직업, 그게 뭐라고

by 센터 posted Jan 0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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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주 대학 비정규직 교수



대학원에 다니는 사람에게 그리고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사람들에게 한 번쯤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라고 물어보자. 열에 아홉은 모두 자신의 꿈을 ‘교수’라고 말할 것 같은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대학원 박사 과정을 마쳐갈 즈음 대학원 신입생 환영회 자리에 간 적이 있다. 석사 과정부터 박사 과정까지 신입생들이 한 명씩 일어나서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었다. 자기소개는 크게 차이가 없었다. 다들 무슨 주제에 관심이 있어서 앞으로 이렇게 공부해보겠다는 식이었다. 어느 석사 과정 신입생은 너무 무미건조했는지 자기소개 말미에 “열심히 해서 꼭 교수가 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박사 과정 말년 차에 대학원 신입생 환영회에 가서 이제 막 대학원 공부를 시작하는 석사 과정 신입생이 “꼭 교수가 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걸 듣고 나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다들 박수 칠 때 나도 따라서 박수 치면서 속으로 말했다. ‘그래, 꼭 교수 돼라.’ 돌이켜보니 신입생 환영회 때 교수가 되겠다고 말한 신입생이 꼭 한두 명은 있었던 듯하다. 대학원을 곧 졸업해서 어떻게 해서든 먹고 살 궁리를 해야 하는 나 같은 선배들 모두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래 저 때는 저렇게 말할 수 있지···.’ 대학에 발 하나쯤 걸치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지금 교수가 아닌 자들은 자신의 꿈을 교수라고 말하는 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잘 알고 있다. 교수가 꿈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것은 그저 꿈에 불과한 일이고, 교수가 되겠다고 입 밖으로 말하는 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를 깨닫는 것은 대학원을 다니는 기간 동안 차츰차츰 다가오기 때문이다. 


얼마 전 알게 된 김 선생 역시 교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김 선생은 박사 학위를 마친 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물론 그 역시 교수가 되고 싶다는 말을 공개적으로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만날 때마다 어느 대학에 누가 교수가 되었다고 줄줄이 읊었다. 그리고 어느 대학 무슨 과 교수 누구는 이제 곧 정년 퇴임을 하게 된다고 했다. 정년 퇴임을 하고 나면 그 자리에는 누가 지원할 것이고, 경쟁자는 누구 누구다 라고 말한다. 온통 누가 교수가 되는지, 어떤 교수가 정년 퇴임을 하는지를 줄줄이 꿰고 있었다. 연구자가 아니라 무슨 교수 인력소개소 사장님 같았다. 내가 그에게 교수가 왜 되고 싶냐고 물었더니, 교수가 되면 방학도 있고 혼자 쓸 수 있는 연구실도 있어서 독립적인 연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에게 교수 말고 다른 길은 없다며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인정받는 직업’이라고 말했다. 교수가 되기 전까지 결혼도 못할 것이라고 했다. 교수가 돼서 뭘 할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고, 일단 교수가 되어야 한단다. 그런데 교수가 되고 싶다는 김 선생 역시 이미 교수다. 무슨 교수냐고? ‘연구교수’란다. 연구를 잘하는 교수라서 연구교수? 아니다. 실상은 한국연구재단의 사업을 따와서 연구사업을 수행하는 대학 부설연구소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연구원이다. 교수가 아닌데도 교수라는 이름을 붙여준단다. 그와 같은 연구교수들은 정해진 사업 기간만 고용된다. 정해진 사업이 끝나기 전이라도 언제든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비정규직이다. 그런데도 명함에는 ‘연구교수’라고 적혀있다. 이 동네는 온통 교수다. 누구는 대학에서 강의 하나 하는데 무슨 대학 겸임교수니 초빙교수니 외래교수니 이렇게 명함에 적고 다닌다. 교수가 되고 싶다는 김 선생에게 물었다. “이미 교수인데 무슨 교수가 되고 싶다는 소리죠?” 김 선생은 웃으며 말했다. “이런 이름만 있는 교수 말고 진짜 교수요!” 진짜 교수는 뭘까? 그럼 가짜 교수도 있단 말인가?


교수라는 직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실로 대단한가 보다. 대학에 발만 걸치고 있어도 교수라고 불리니 말이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대학에 발 하나 걸치고 있었다는 이유로 내 이름 뒤에 ‘비정규직 교수’라고 쓰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 동네에서 교수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자신이 왜 교수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비전이 있을까? 진리 탐구와 학문의 발전, 사회 공헌, 후학 양성이 교수가 되려는 사람들의 비전일까? 아니면 그냥 좀 더 많은 월급과 좀 더 많은 권력, 그리고 조금 더 유명해지는 게 목표일까? 


교수가 꿈이라고 말하는 게 부끄럽게 여겨지는 시대이지만, 교수가 되는 꿈을 꾸면서 살아온 이들은 교수가 되기 위해서라면 지금의 어려움쯤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떨까? 모두가 교수를 꿈꾸지만 모두가 교수가 될 수 없는 현실이 눈 앞에 펼쳐진다. 김 선생은 “‘진짜 교수’가 되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래서 오로지 교수 자리 하나 보고 견딘다고 했다. 교수가 되는 것이 지난날의 고생을 모두 보상받는다는 생각이다. 교수가 되면 진짜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좋아할 일일까? 지난날의 모든 고생은 진짜 교수가 되면 다 보상받을 수 있을까? 불행히도 반드시 그런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얼마 전 한 신문에는 ‘대학을 떠나며’라는 칼럼이 실렸다. 칼럼 저자는 오랜 시간 동안 비정규직을 전전하다 2018년에야 비로소 정규직 교수 자리를 얻은 이였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여기저기를 떠돌다가 겨우 자리를 잡았으나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공부가 좋았고 가르치기를 즐겼다고 한다. 그런데 교수가 되고 나서 수많은 학술 행사와 잡무, 공문, 평가, 봉사활동 등을 하면서 “연구자가 아니라 기획사 직원 같았다.”라고 고백했다. 그가 대학을 떠나기로 했다는 것이 알려지자 대학에 발을 걸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그의 결정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다. 어떤 이는 그가 박차고 나온 교수직을 자기한테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고, 또 다른 어떤 이는 교수는 많은 일을 해서 돈도 많이 받기 때문에 그게 싫으면 떠나는 게 맞다고도 했다. 


그러나 나는 좀 다른 생각을 했다. 대학의 현실이야 대학에 발 걸치고 있는 사람 모두 다 아는 일인데, 교수라는 직업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대학을 떠난다는 칼럼이 이렇게 화제가 될까? 평생직장도 평생직업이라는 말도 이제 옛말이 되어버린 지 오래인데, ‘퇴직의 변’이 신문 칼럼에 실리는 직업이 교수 말고 다른 직업이 있을까? 공부가 부족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까지 누가 제빵사를 그만두면서 ‘빵집을 떠나며’, 누가 정비사를 그만두면서 ‘카센터를 떠나며’라는 신문 칼럼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누군가 어떤 직업을 얻었다고 해서, 그 직업을 그만둔다고 해서 화제가 되는 일은 보지 못했다. 누군가가 어떤 직업을 얻고 그만두는 일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면서 왜 유독 교수라는 직업은 과도한 관심을 받게 되었을까? 


나는 교수라는 직업도 다른 일과 별반 다르지 않은 평범한 직업이 되면 좋겠다. 그래서 누가 교수가 되든, 누가 교수를 그만두든 우리 인생사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되면 좋겠다. 그래서 오로지 교수가 되기만을 꿈꾸다가 되지 못했다고 자살하는 사람도 없고, 결혼을 못하는 일도 없고, 교수를 그만둔다고 해서 뭐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닌 것으로 여겨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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