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당선작_우수상] 직영은 들어오면 안 됩니다

by 센터 posted Jan 0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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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희  거제시비정규직근로자지원센터 사무국장


4.터치업.jpg

여성 노동자들이 주로 터치 업 일을 한다.


자동차 산업과 함께 대표적인 노동집약적인 산업 중 하나가 조선업이다. 그 넓은 야드와 도크장에서, 좁디좁은 블록 안에서, 구부리고 쪼그리고 심지어 바닥을 기어 다니며 일을 하는 대표적인 3D업종 중 하나다. 거대한 골리앗 크레인과 엄청나고 우람한 규모의 배를 보고 있으면 가히 경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한편 그 엄청난 규모의 선박을 만들기 위해 바쳐야만 하는 소중한 목숨과 그 속에 스민 노동자들의 피땀이 섞인 노동을 생각하면 현대중공업의 ‘조지나’ 공장이란 말이 왜 생겨났는지 어느 정도 상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조선산업은 대표적인 노동집약 산업이고, 3D업종이고, 대부분 남성 노동자가 일하는 곳이다. 그만큼 육체적으로 힘이 들고 골병드는 직종이다. 하지만 그 힘들고 어려운 일 대부분인 조선소에도 여성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남성들과 함께 배관이나 용접, 취부 직종의 일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화기 감시 등 그나마 육체적 부담이 덜한 일을 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많은 여성 노동자가 일하는 곳이 도장부서다. 


바다를 오가며 석유제품이나 컨테이너, 곡물, 그리고 원유나 LNG를 운반하기 때문에 짜디짠 바닷물에 철판은 부식된다. 이를 막기 위한 가장 중요한 부서 중의 하나가 도장이다. 선박 외벽부터 탱크, 배관 파이프 하나하나, 갑판(deck)부터 바닥(bottom)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녹을 제거하고, 몇 차례 도장을 하고, 개선 작업을 하고, 마무리 청소까지 손이 안 가는 곳이 없고, 노동자들의 피땀이 서리지 않은 곳이 없다. 도장이란 물건 표면에 도료를 바르는 것이다. 부식으로부터 보호하고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더해 주는 작업으로 배의 유통기한과도 연관성이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작업 중 하나다. 이와 같이 도장은 배의 최후 마무리로 상품 가치를 높여준다.


도장 작업에서도 직종이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파워, 스프레이, 터치 업. 파워는 그라인더를 이용해 선체 표면의 녹을 제거하는 일이고, 스프레이는 스프레이 건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페인트를 분사해 도색하는 일, 그리고 터치 업은 스프레이 건으로 못하는 사각지대를 붓이나 롤러를 이용해 페인트칠하는 작업과 마무리 청소를 하는 직종이다. 주로 여성 노동자들이 터치 업을 많이 한다. 용접 후에 벗겨진 곳을 롤러 붓이나 일반 붓으로 페인트칠하는 배의 마무리 작업까지로 폭이 넓다. 도장 작업이야 밖에서도 많이 봤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소 도장은 선박의 외관뿐만 아니라 내부도 작업하는데 내부는 협소한 곳이 많고 밀폐된 곳도 많으며 작업 특성상 시너 냄새에 많이 노출되는 특성이 있다.


조선소, 그중에서도 도장부, 그리고 그중에서도 터치 업을 비롯하여 여성 노동자들이 일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몇 가지 소개한다.


나는 조선소에서 정규직으로 2년 정도 근무했던 경험이 있다. 티그(TIG) 용접사로 일해서 도장부 터치 업 하는 분들을 가끔 만나기도 했다. 내가 일하는 부서가 석유화학제품운반선(PC선, product carrier & chemical tanker)의 SUS(스테인리스) 파이프 용접하는 업무가 많다 보니 작업을 하다 보면 탱크 안에서 혼자 터치 업 작업이나 청소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을 간혹 만나곤 하였다. 탱크 안은 도장 스프레이 작업이 끝난 상태로 며칠이 지나도, 마스크를 써도 페인트 특유의 시너 냄새가 진동하였다. 그런 곳에서 혼자 일하다가 같은 노동자가 와서 그런지 유난히 친근하게 대하는 경우가 있었다. 상냥하게 웃기도 하고 잘 모르는 사람인데도 붙임성 있게 말을 건네기도 하였다. 높은 곳에 놓고 온 장비들도 곧장 챙겨다 주시기도 했다. 조금 낯설어서 같이 일한 동료한테 물어보니 “취해서 그런다, 저 사람. 시너에 취해서 그런 거 아이가.” 자세히 보니 그 여성 노동자는 마스크도 쓰지 않고 일하고 있었다. 어떤 선배 노동자 이야기를 들으니 한 번은 마무리 보수 작업하러 탱크에 들어갔는데 여성 노동자 한 분이 이미 시너에 취해서 노래 부르고 춤을 추고 있는 것을 본 적도 있다고 했다. 상황을 보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중에 터치 업을 하는 분들에게 물어보니 “술 취한 거마냥 어질어질하지. 하지만 귀찮기도 하고, 좁은 곳을 다녀야 하는데 방해도 되고, 마스크 등 안전장구 다 착용하고 일하면 ‘나는 초짜다’라고 남에게 알려주는 꼴이 되어 다른 동료들에게 무시당하기도 해서 그냥 참고 일하지.”라고 하였다.


석유화학제품운반선 SUS 파이프 용접을 하다 보니 후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PC선 성능과 품질에 적잖은 악영향을 미친다. 용접은 정규직이 하고, 후행 마무리는 비정규직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한다. 석유화학제품이 굳지 않도록 가정용 보일러처럼 스팀을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배관 파이프를 히팅코일이라고 한다. 히팅코일 또한 SUS 파이프이기 때문에 마지막 녹 제거 작업은 염산 같은 유독물질로 한다. 히팅코일을 고정하는 볼트가 제대로 체결이 됐는지 마지막 확인을 하기 위해서 탱크 안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탱크 안에는 평상시와 달리 많은 노동자가 있었고, 그중 대부분은 여성 노동자였다. 한쪽에서는 히팅코일을 염산 등을 이용해 수건으로 녹을 제거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방독 마스크를 쓰고 들어갔지만 워낙 냄새가 심해서 눈이 따가울 정도였다. 작업을 관리하던 반장쯤 되는 관리자가 우리 작업복에 달린 정규직 명찰을 보더니

“아저씨들, 직영은 지금 이 탱크에 들어오면 안 됩니다.”

“왜요? 우리도 작업하러 왔는데요?”

“여기 유독물질로 녹 제거하는 거라 냄새가 심해서 안 됩니다. 나중에 오세요.”

“저기 다른 분들은 일하고 있잖아요.”“우리들은 이미 인이 박여서 괜찮습니다. 아저씨들은 위험하니까 나중에 오이소.”

눈도 따갑고 목도 아프고 해서 알겠다고 하고 나오는데 그 위험하다는 유독물질을 마스크도 없이 작업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보니 안타깝기도 하고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였다.


2015년부터 불어 닥친 조선산업 위기에 따라 일자리와 임금은 줄어들고 노동강도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거기에 맞추지 않으면 고용 불안에 더욱 시달릴 수밖에 없다. 그 속에서 그나마 다른 직종보다 고수입이 가능한 조선소 여성 노동자들이 느끼는 불안감과 감내해야 할 피해는 커져만 가고 있다. 남성이 대다수인 조선산업에서 여성을 위한 휴게실이나 화장실 등 기본적인 공간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또 다른 불편함을 감내하면서 일한다고 한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지난 5월까지 조선업종에서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는 총 116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사고사망자 가운데 하청 노동자가 84.4퍼센트 차지하고 있다. 특히 2019년 10월까지 조선업에서 발생한 사고사망자 10여 명의 경우 전원이 하청업체 소속인 걸로 나타났다.


조선산업 경제위기를 틈타 노동강도는 강화되었지만, 안전에 대한 문제는 더욱 느슨해지고 있고, 외면당하고 있고, 그 속에서 노동자들의 건강권은 계속 약화되고 있다. 조선업계의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한 위험의 외주화는 계속될 것이다. 사내도급에 대한 책임만이 아닌 원청 책임을 강력하게 묻고 실질적인 안전관리가 이루어질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가진 거라곤 몸뚱어리밖에 없는 노동자가 가족 생계를 위해, 먹고 살기 위해서 일할 수밖에 없지만 노동자 건강권에 대한 인식부터 하나하나 개선해 나가야 한다. 매일 술에 취해 있는 것도 그렇지만 시너(유기용제)에 취해가며 일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생각하니 가슴 한쪽이 먹먹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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