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이 발생하는 방식

by 센터 posted Jan 0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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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르포작가, 센터 기획편집위원



그가 정말 운이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우연히 그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가계의 경제적 어려움을 덜고자 하루빨리 취업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실업계 고등학교를 들어갔다. 청년 실업률이 높은 이 사회에서 실업자가 되지 않기 위해, 그리고 감당하기 어려운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현장실습을 나갔다. 위험 업무를 외주화시킨 회사의 하청업체에 들어간 것도, 어떤 작업을 하게 될지 몰랐던 것도,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유해공정이 있는지 안내받지 못한 것도 그가 지독히 운이 없어서였을지 모른다. 


정말 그의 선택이 자유의지에 맡겨진 것이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에게 찾아온 우연과 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그때 그것을 불운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 개인의 자유의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와 형태는 다르지만 내용은 같은 비슷한 불운을 경험하는 청년들의 존재는 그들에게 ‘선택’이라는 행위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들의 비극은 그것들을 그들 스스로가 선택할 수 없었다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2.방사선기자회견.jpg

2019년 9월 서울반도체 정문 앞에서 열린 서울반도체 방사선 피폭 사고 피해 진상 규명과 대책 요구 기자회견(@생명안전시민넷)


한 청년이 있었다. 신안산대학교에 다니던 그는 교수 추천으로 서울반도체 자회사인 ‘에스아이세미콘’에 장기 현장실습을 나갔다. 감당하기 어려운 등록금을 해결하기 위해, 하루빨리 취업을 나가 가계의 생계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였다. 그의 전공은 기계과였고 당연히 전공과 관련된 현장에 나가 실습을 하게 되리라 기대했다. 그는 담당 교수를 믿었다.


그러나 그가 에스아이세미콘 사장과 면접할 때 전해 들은 것은 실습과 관련된 내용이 아닌 단지 “힘든 일을 할 수 있는데 버티면 나아질 거다.”는 ‘버티라’는 일종의 명령이었다. 첫 출근 때 자신이 하는 일이 어떤 공정인지에 대해서도 안내받지 못했다. 그에게 일을 가르쳤던 심 차장이라는 사람은 단지, 불량을 선별하는 방법, 불량을 발견했을 때 스티커를 붙이라는 작업지시, 기계를 작동하는 방법만 알려주었다. 심 차장은 기계 작동법 중에 장치(인터로크interlock) 해제하는 법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종이를 끼워 테이프로 막아 장치를 해제하는 것이 화면을 꺼뜨리지 않고 작업 속도를 높이는 법이라고 설명했다. 그 기계가 방사선이 나오는 위험한 기계라는 것도, 작업 속도를 높이기 위한 방법이 안전장치(인터로크)를 해제하는 방법이었다는 것도, 그리고 작업 화면이 켜져 있을 때는 방사능이 사방으로 퍼져 나오고 있는 상태라는 것도 그는 몰랐다. 아무도 그에게 그러한 사실들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는 방사능이 최대치로 뿜어져 나오고 있는 기계 속에 하루에 천 번 이상 손을 집어넣었고, 하루 서른 번 머리를 집어넣었다. 법적으로 방사선을 다루는 작업자에게 반드시 지급되어야 하는 안전장비나 피폭선량계, 경보기, 차폐막 등을 그는 구경도 하지 못했다. 


그가 하는 작업이 정확히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지, 또 그가 다루는 기계가 어떤 기계인지 전혀 안내받지 못했다는 것은 그 과정에서 배운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의미했다. 그것은 실습이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어떠한 교육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회사에게 그는 그저 단기간에 힘들고 위험한 작업에 투입해 쓰고 해고해도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그저 싸고 편리한 무엇에 불과했다. 


그는 그러한 위험을 감수하며 일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직장 상사의 모욕과 괴롭힘, 물량 압박에 시달렸다. 그는 작업 속도가 다른 동료들에 비해 빠른 편이었다. 그가 하루 1만 4,000개의 LED를 검사할 수 있게 되자, 심 차장은 다른 사람은 하루 5만 개씩도 뺐다고 하면서 하루 2만 개씩은 무조건 빼라는 지시로 그를 괴롭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출근 후 며칠 안 되어 12시간 맞교대를 지시하더니 토요일 노동을 강요하기도 했다. 그가 모르는 일을 시켜놓고 무작정 욕설을 한 적도 있었다. 그는 심 차장의 요구에 도저히 다다를 수 없었다. 하루 중 절반을 보내는 공장에서 그는 심 차장에게 덜 모욕당하기 위해 물량을 빼는데 집중하느라 몸의 이상도 금방 알아차리지 못했다. 


도저히 참기 힘든 통증을 비슷한 증상을 겪고 있는 동료와 함께 심 차장에게 호소했을 때 심 차장은 수년간 일한 사람도 괜찮은데 엄살피우지 말라, 담배 피워서 그렇다며 그들의 말을 묵살했다. 그가 퇴사를 통보하고서야 원자력병원에 데려갔다. 이미 통증은 손 전체에 퍼져있었고, 손톱까지 빠지고 있었다. 해당 분야 전문가는 허용 선량의 약 5,000배까지 노출되어야 이와 같은 외상이 나타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병원에서도 앞으로 20년간 암 등의 질병을 추적 관찰해야 한다고 했다. 스물셋 그의 미래는 그렇게 캄캄한 어둠 속으로 침잠해버렸다.  


회사와 학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책임을 개인의 잘못으로 떠넘기기 위해 애썼다. 신안산대학교는 교육부로부터 현장실습 사업인 LINC+사업(산학협력선도전문대학 지원사업) 연차평가 결과 ‘매우 우수’ 등급을 받아 사업비 6억 5,000만 원을 지원받기도 한 학교였다. 학교에 대한 교육부의 후한 평가와 거액의 지원금 혜택은 정작 그 학교 학생인 그에게 닿지 않았다. 실습 기간 동안 학교는 단 한 차례도 현장실습 산업체 방문이나 학생 면담 등을 진행하지 않았다.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서울반도체는 몇 년 전, 위험 공정을 하청으로 분리 독립시킨 뒤 그 공정에 대한 위험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노동자 수백 명이 열린 문으로 방사선이 뿜어져 나오는 기계를 지나다니면서 피폭이 된 상황 속에서도 회사는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했으며, 하청업체에 책임을 전가시키더니 최종적으로 피폭 피해자인 그에게 임의로 안전장치를 해제했다며 책임을 떠넘겼다. 이렇게 원청의 책임은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 가장 힘없는 비정규 노동자에게 도달하게 되었다. 


이 모든 사고 과정에서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고에 대한 책임을 어느 누구도 지지 않는 상황에 놓여있다. 가장 취약한 상태의 사회초년생 청년들이 위험 속에 계속 놓이게 되는 이 상황은 매우 문제다. 위험의 외주화는 이 나라 구성원들 개인의 선택지와 자유의지를 박탈하였다. 위태로운 삶, 비극은 이렇게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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