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민중 투쟁을 바라보는 역사적 소고

by 센터 posted Jan 0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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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흥준 센터 정책연구위원 



2019년에도 세계 곳곳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민중들의 투쟁이 이어졌다. 그 중에서도 칠레Chile 민중들의 투쟁은 예상치 못했으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내부적 모순이 적지 않고, 우리에게 제공하는 시사점도 많다


20191014일 시작된 칠레 민중들의 투쟁은 잘 알려진 대로 산티에고 지하철 요금을 30페소(0.05달러, 46) 올린 것이 도화선이었다. 요금 인상은 소액이었지만 저소득층 가구에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지하철 요금 때문에 칠레 민중들이 두 달 넘게 목숨을 걸고 투쟁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최근 남미 국가들의 정치적, 경제적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투쟁이 잇따라 일어나고 있다. 페루에서는 반부패에 항의하는 시위가 있었고, 에콰도르는 긴축 재정 종식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칠레 역시 오랫동안 경제적 불평등이 사회적 갈등의 뇌관이었다


칠레는 남미의 경제 강국인 동시에 불평등이 매우 높은 나라이다. 1인당 국민소득은 25천 달러로 남미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불평등지수 또한 매우 높아 지니계수가 47(100=완전불평등)에 이르고 있었다([그림 1] 참조). 국민소득이 높고 불평등이 심하다면 부의 편중이 과도함을 의미한다. 칠레 민중들의 투쟁을 불평등에 대한 개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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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현 상황을 올바로 해석하려면 칠레의 현대사를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칠레 근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두 명이다. 한 명은 짧은 집권(19701973)동안 사회주의 개혁을 이루지 못하고 대통령 궁에서 쿠데타 세력에 의해 사망한 아옌데 대통령이고, 다른 한 명은 1973년 쿠데타를 일으킨 독재자 피노체트이다. 냉전이 극심했던 1970, 칠레는 사회주의 정부로는 최초로 국민투표를 통해 아옌데 대통령이 집권한다. 그는 남미에서의 새로운 사회주의 개혁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1973년 피노체트에 의해 쿠데타가 발생하자 대통령궁에서 무장으로 저항하다 생을 마감한다. 이후 피노체트는 1990년까지 16년간 집권하며 강력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쳤다. 외국자본 유치와 국영기업 민영화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 정책은 경제 성장을 이끌었고 피노체트 이후 집권한 중도좌파 정부의 경제 정책도 다르지 않았다. 그 결과 경제는 성장했지만 성장의 열매가 국민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지지 않는 기형적인 경제 구조가 고착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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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에서 보는 바와 같이 칠레의 국내총생산(GDP)1990년 피노체트를 몰아내고 중도좌파 정부가 집권한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해 20년 만에 2배 가까운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소득 상위 10퍼센트가 전체 소득의 절반 이상인 54.9퍼센트를 차지했다. 심지어 소득 상위 1퍼센트가 전체 소득의 23.7퍼센트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칠레는 2010OECD에 가입했지만 불평등지수는 가장 높은 나라이다


칠레의 민중투쟁은 지난 1014일 시작된 이래로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희생도 적지 않다. 무능한 피네라 대통령이 사과와 함께 최저임금 17퍼센트 인상을 약속했지만 국민들의 저항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다. 그만큼 절망감이 컸던 탓이다


칠레 민중들의 투쟁은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성장이 더디더라도 기초 구조를 튼튼하게 하고 분배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칠레와 우리나라는 1990년대 이후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룬 공통점이 있다. 차이가 있다면 칠레는 양극화와 불평등에 대해 적극적인 대처가 부족했고 한국은 2000년대부터 양극화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어 양극화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는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최저임금 정책이었고 비정규직 차별 해소였다. 물론 한국의 노력을 성공적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경제 성장과 함께 노동시장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선하려고 노력한 것은 사실이다


둘째, 경제 성장의 동력을 무엇으로 삼는가이다. 칠레는 공공자산의 민영화를 통해 성장 동력을 만들었고, 그 결과 광산, 국민연금, 건강보험, 대중교통, 전력, 금융 등 많은 공공서비스가 민간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양질의 공공서비스는 기대하기 어렵고 대신 국민들은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구조가 되어 버렸다. 선진국의 경우 공공부문이 시장의 균형을 유도하는 역할을 하고 정부는 공공부문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칠레는 반대의 길을 걸었고, 그 결과 정부는 더 이상 시장에 개입할 힘을 상실했다. 돌아보면, 우리나라도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 공공부문 민영화 바람이 거세게 분 적이 있다. 다행히 노동자들의 투쟁과 성숙된 시민의식으로 전력 민영화, 철도 민영화 중단을 이뤄내기는 하였으나 공공부문의 사회적 가치 실현은 아직 초보적인 단계이다


칠레 민중투쟁은 앞으로 우리가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도 잘 보여준다. 무엇보다 아직은 더디기만 한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와 격차 해소라는 사회적 과제가 하루 속히 이행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불평등 정도도 낮지 않기 때문이다. 칠레에 비해서는 낮지만, 한국의 소득 상위 10퍼센트는 전체 소득의 43.1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으며 소득 상위 1퍼센트가 12.1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다양한 형태의 소득 재분배 정책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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