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섬 카탈리나

by 센터 posted Oct 3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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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정 쉼표하나 회원



상상했던 것보다 큰 여객선이다. 뉴포트항 카페에서 너무 여유를 부렸나보다. 평일인데도 사람들로 이미 세 개 층이 가득 찼다. 한 시간을 가야한다는데 빈자리가 없다. 미국에 사는 조카 지나와 딸 수빈이는 갑판에 서서 가겠다고 한다. 역시 스무 살의 젊음은 다르다. 아마 빈자리가 있어도 바람을 맞으며 서서 가겠지. 안쪽 깊숙한 테이블에 한 자리가 비었기에 앉는다. 배 안에선 스낵을 사먹으라고 큰소리로 안내 방송을 한다. 둘러보니 아무리 미국이지만 작은 지구처럼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타고 있다. 모두 약간은 흥분한 표정들이다.


바다도 잘 안 보이고 인터넷도 안 되고. 책을 꺼내서 테이블에 펼쳐만 두고 있다. 주변 사람들을 관찰한다. 하릴없이 있을 때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은 재미있다. 내 앞의 흑인 남자 애. 열한 살 정도. 볼과 이마에 여드름이 가득하다. 고민이 많겠네. 약간은 수줍어하는 듯. 말이 없고 눈을 한 곳에 두질 않는다. 역시나 눈썹은 짙고 속눈썹은 낙타 눈썹 같다. 잘 생겼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히스패닉 커플. 사귄 지 얼마 안 된 듯 여자가 남자에게 잘 보이려하는 모습이 보인다. 눈웃음, 까르륵, 물잔도 예쁘게 잡는다. 둘은 한참을 얘기하다 엎드려 잔다. 옆 테이블은 인디언 가족 같다. 뚱뚱하다. 내 테이블 여인과 사뭇 다르다. 처진 입가. 원래는 하나였을 두개의 턱. 드러나는 몸매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편한 대로 앉았다. 엔트로피의 법칙. 질서에서 무질서로 간다는 법칙은 저 여인에게도 적용되나 보다. 예전엔 날씬하고 이뻤을 텐데. 흐트러지고 낮아진다. 저 부부도 예전엔 이쪽 커플과 같았으리라. 앞자리의 남편은 목소리가 다정하다. 부인의 대답이 심드렁하다. 그렇지만 무질서는 오히려 안정적이다.  그래선지 이들에게선 가족을 이룬 편안함이 느껴진다. 


어느새 도착. 카탈리나. 참 아름답다. 미소 띤 사람들. 행복해 보인다. 아마도 여기 카탈리나에서 사람들 얼굴을 찡그리게 할 수 있는 건 눈부신 태양 빛뿐이리라. 작고 아담한 해변. 예쁜 상점들. 나는 기웃거린다. 상점에서 파는 물건들은 거의 비슷하다. 거대한 남대문 시장도 파는 물건들이 비슷하듯이. 다른 게 있다면 각 상점의 꾸밈이 아기자기하다. 나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된 기분이다. 노랑, 파랑, 빨강···. 섬 전체가 어릴 적 친구들 앞에서 자랑스레 펼치던 48색 크레파스 같다. 사람들의 피부색까지도. 그리고 그 키가 5, 6층 높이는 족히 돼 보이는 야자수. 여기 분위기에 잘 어울린다. 조카 말이 야자수는 원래 미국에 없는 종이란다.  한 그루당 비싼 금액을 주고 수입해 온 나무란다. 미국 야자수는 이민자였던 미국인처럼 이민 와서 뿌리내리고 사는구나. 갑자기 제주도 워싱턴야자수가 생각난다. 여기처럼 잘 자라고 있으려나.


골프카트를 타고 섬을 둘러보라는 광고가 눈에 띈다. 그러고 보니 골프카트가 많이 보인다. 가이드북에 환경을 위해 이 섬에선 가솔린 자동차 허가를 안내준다는 설명이 있다. 타볼까···. 아니다. 힘들고 다 둘러보지 못할 지라도 현지인이 되어 섬을 걷기로 한다. 즐겁게 웃으며 걸어가는데 어깨에 뭔가가 툭 떨어진다. 큰 벌레인가 싶어 손으로 떨어냈다. 이크, 새똥이다. 애들이 웃고 난리다. 그러면서 정수리에 안 맞은 것이 다행이라며 깔깔거린다. 이렇게 재수 없을 수가. 조카가 미국에선 새똥 맞으면 재수가 좋다고 한다며 로또를 사잔다. 그 말이 진짜였으면 좋겠다. 감탄하며 돌아다니다보니 배가 고프다. 두고두고 가끔 꺼내서 추억할 멋진 식사를 하고 싶어진다. 같은 거리를 여러 번 왕복 하고, 구글을 뒤지고, 식당 손님들의 수와 접시의 음식까지 힐끗거리고. 게다가 뷰도 좋아야지. 결정. 역시나 심사숙고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서비스도 엉망. 해산물도 신선하지가 않다. 매니저가 음식 값의 10프로를 깎아 주겠단다. 영어로 싸울 때 외국어 실력이 가장 빨리 는다는데. 애들이 음식 사진을 찍고 평점을 낮게 줘 구글에 올리는 걸로 나름 소심한 분풀이를 한다. 결국 두고두고 할 추억이 생긴 셈이다.


계획한 반나절의 시간이 어느덧 지나간다. 아쉽지만 터미널로 간다. 여행지에 오면 용감해진다. 배 시간까지 시간이 남아 벤치를 하나씩 차지하고 누웠다. 피부가 좀 타면 어떠랴. 누워서 하늘을 본다. 하늘은 지나칠 정도로 파랗고, 그림에서나 본 하얀 구름들이 떠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 시원하다. 돌아가는 배 안. 내 자리 앞은 한국 여자애 둘이 떠들고 있다. 이번엔 내가 지쳐 엎드려 잔다. 빨리 돌아가서 편히 자고 싶다. 안녕 카탈리나. 안녕 나의 동화책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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