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으로 돌아갈 줄 알았다

by 센터 posted Oct 3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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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헌호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지회장




다시 겨울을 맞는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에 살갗이 돋는다. 천막농성장에서 맞는 다섯 번째 겨울이다. 농성장 구석에 놓인 난로를 다시 손본다. 2015년 여름, 해고되면서 공장 정문에 천막을 설치했다. 천막에서 5년째 생활할 줄 꿈에도 몰랐다. 천막농성장은 우리의 일상이 모두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회의와 간담회를 하고, 교육을 하고, 문화제와 미사도 한다. 아침선전전을 마치고 라면도 끓여 먹는다. 여기를 둥지 삼은 조합원들에게 투쟁과 연대는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해고된 지 4년 4개월이 흘렀다. 아사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일본 기업 아사히글라스에서 문자 한 통으로 해고됐다. 최저임금, 징벌조끼, 권고사직 등 부당함에 맞서 노조를 만들었더니 하루아침에 178명을 공장에서 쫓아냈다. 

아사히글라스는 연평균매출 1조 기업이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을 벌면서 비정규직에게는 최저임금만 지급했다. 식사시간은 20분이었다. 일하다가 조금만 잘못하면 붉은 조끼를 입혔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두 달간 붉은 조끼를 입고 일했다. 모멸감을 견디며 일했다. 그러나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현장1.아사히1.jpg

민사소송 1심 소송에서 승소한 조합원들이 헹가래를 치며 기뻐했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노동부, 검찰, 법원 모두 불법파견 인정


우리는 2015년 7월 노동부에 부당노동행위와 불법파견으로 아사히글라스를 고소했다. 노동부는 2년이 지나서야 부당노동행위는 무혐의, 불법파견은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넘겼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다시 1년 6개월이 지나서야 아사히글라스를 불법파견으로 기소했다. 아사히글라스를 기소하기까지 3년 7개월이 걸렸다.

우리는 2019년 8월 23일 근로자지위확인 민사소송에서도 승소했다. 법원은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 “23명을 직접고용하라”고 판결했다. 해고된 지 4년 2개월 만에 법원도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우리는 4년을 싸워 ‘아사히글라스가 직접고용하라’는 법원의 판단까지 받아냈다.

노동부, 검찰, 법원 모두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법원 선고가 있던 날 헹가래를 치며 기뻐했다. 곧 현장으로 돌아갈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행정부와 사법부 모두 우리의 손을 들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우린 여전히 천막에서 생활하고 있다.


현행법을 모두 무시하는 아사히글라스


아사히글라스는 노동부의 직접고용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 17억 8천만 원의 과태료도 내지 않았다. 오히려 김앤장을 고용해서 노동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넣었다. 해고된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라는 법원의 1심 판결도 이행하지 않았다.

공기업인 한국도로공사도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지 않았다. 당연히 민간기업, 외투기업이 법을 지킬 리가 없다. 요즘은 노동자들이 법원 판결 이행하라고 싸워야 한다. 노조할 권리도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어렵게 법원 판결을 받았으나 자본가는 지키지 않는다. 아사히글라스는 한국에 들어와 떼돈을 벌면서 현행법은 모두 무시하고 있다. 아사히는 얼마 전 집회에 참석한 10대 학생들까지 고소해 국정감사장에서 매서운 추궁을 당했다.  


현장속으로-아사히.jpg

법원 앞에서 승소 소식을 듣고 좋아하는 조합원들.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불법파견은 심각한 범죄다


불법파견은 심각한 사회적 범죄이며 형사처벌 대상이다.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다. 정규직 일자리에 비정규직을 채워서 착취하는 범죄 행위다. 엄중 처벌해야 한다. 하지만 노동부 검찰은 아예 기소조차 하지 않는다. 기소된 사건도 대부분 벌금 몇 푼으로 끝난다. 솜방망이 처벌이 전부다. 기업은 불법파견으로 몇 백억에서 몇 천억의 이윤을 챙긴다. 어떤 기업이 불법을 해도 처벌받지 않는데 거저 챙기는 이윤을 포기하겠는가. 불법파견이 독버섯처럼 번지는 이유다.  


아사히글라스의 불법파견도 저절로 기소된 게 아니다. 해고된 노동자들이 포기하지 않고 싸워서 만든 성과다. 불법파견 증거자료가 명백해도 검찰은 불기소했다. 이에 맞서 로비점거와 검찰청 천막농성을 하며 싸웠다. 결국 검찰이 기소하면서 우리는 자신감을 얻었다. 노동부, 검찰, 법원 어느 기관도 법 앞에 중립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않다. 우리의 문제는 스스로 싸워서 해결해야 한다. 아무도 대신 해결해주지 않는다. 우리가 투쟁하는 만큼 쟁취한다. 


아사히 비정규직 투쟁은 반드시 이긴다. 패배할 수가 없다. 우리는 해고되고 많은 것을 배우고 알게 됐다. 오랜 시간 싸우고 있지만 투쟁 과정은 우리 모두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됐다. 우리는 투쟁하며 자존감을 찾고 당당한 노동자가 되었다. 우리는 이미 승리했다. 마지막 승리하는 그날까지 굴하지 않고 싸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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