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한일 관계 개선,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by 센터 posted Oct 3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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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학수 일본 노동정책연구연수기구 부총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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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일 관계는 역사상 최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직접적인 발단은 일본이 2019년 7월 1일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한국 수출 규제이다. 일본 정부는 ‘국제 수출 관리 시스템을 고려하여 외국 환율 및 외국 무역법에 근거하여, 대외 거래의 정상적 발전과 일본 및 국제 사회 평화 및 안전 유지를 목적으로 필요 최소한의 관리를 실시하는’ 일환으로 취한 수출 규제라고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러나 왜 반도체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를 하는지 구체적인 배경을 공개적으로 제시하지 않아 규제 조치에 대한 정당성을 얻기 힘든 상황이다. 반도체 수출 규제 조치에 이어 일본은 소위 백색국가에서 한국을 배제하였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일본의 조치에 대응하여 8월에 지소미아(GSOMIA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9월엔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배제하였다. 이러한 조치와 대응은 증폭되어 양국 관계가 최악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일본의 한국 수출 규제는 공식적으로는 안전 보장상의 이유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2018년 10월 대법원의 징용공에 대한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라고 여겨지고 있다.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한 공식적·비공식적 이유가 다르고, 우리나라는 그에 대한 비판 및 대응이 양국 관계 악화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필자는 양국 정부 대응에 관해 더 이상 직접적인 코멘트를 하기보다는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짚어보기로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양국, 양국 국민 간 인식 격차 해소라고 생각한다.


나는 1991년 일본으로 유학 왔는데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일본인에게 첫 강연을 하게 되었다. 일본 중고생이 평화와 관련된 세계 대회 참가를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데 한국에 대한 기초 정보를 이야기해달라는 부탁을 받아서 한 강연이었다. “여러분, 전쟁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입니까?”라는 나의 물음에 참가자의 거의 90퍼센트가 “피해”라고 응답하였다. 세계 제2차 대전 때 입은 원폭 피해가 가장 상징적이겠지만, 실은 일본의 주요 대도시는 미군의 공중 폭격으로 완전히 쑥대밭이 되었다.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배웠기 때문에 전쟁이라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피해”라는 응답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많은 일본인은 전쟁의 피해자라는 의식을 갖고 있지만, 가해자 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 우리나라에 대한 침략과 식민지 지배라고 하는 가해의 역사적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반면, 많은 우리나라 사람은 일본에 대한 피해 의식이 매우 강하다. 침략과 식민지 지배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한일 양국 간, 양국 국민 간의 지식/인식의 격차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그것이 한일 관계 악화의 근원이면서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 넘어야 할 가장 큰 과제이다. 


과제 해결에 가장 중요한 것이 역사교육이지만, 한일 양국 모두 지금의 역사교육 내용을 바꾸기 쉽지 않다. 우리나라는 근현대사를 중시하는데 일본은 고대사를 중시하고, 입학시험에 출제되는 문제도 그것을 반영하고 있어 학생 때 식민지 지배를 둘러싼 가해와 피해 의식을 공유하는 것은 어렵다. 일본이 한국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가해자 의식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이다.


경제 발전에 대한 한일 상호주의 인식의 격차도 크다. 한국의 경제 발전은 ‘일본 덕택이다’라는 의식을 갖고 있는 일본인이 적지 않다. 식민지 시대 때 철도 등 사회 인프라를 깔아 주었고, 한일 국교정상화 때 경제 협력해준 덕택에 한국은 경제 발전했다 등. 이러한 의식은 고령자일수록 강하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지만 일본인들의 의식은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실제 우리나라의 급속한 경제 성장은 일본을 빼놓고는 힘들었을 것이다. 삼성의 전기전자 산업 기틀은 산요전기三洋電機의 기술이고, 현대자동차의 기틀은 미쯔비시자동차三菱自動車 기술을 받았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대부분 일본 기술을 통해 발전하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수출 규제를 한 반도체 3개 품목이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경제는 서로가 이익을 얻기 위해서 거래되기 때문에 ‘덕택’이라는 용어가 적절치 않을지 모르지만 그러한 역사적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과연 그런 인식을 어느 정도 갖고 있는가?


양국의 관계 개선은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상호 공유하는 데서부터 기대할 수 있다. 양국 정부가 보다 더 그러한 인식을 갖고 정책을 추진하길 바라지만 상황을 이용하기 쉽기에 실현은 쉽지 않을 것이다. 양국 국민이 개인, 민간 차원에서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지평을 넓혀 인식 격차를 해소해 국경을 넘는 것이 먼 길이지만 가장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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