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패러다임 대전환이 필요한 때

by 센터 posted Oct 3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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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병호 센터 이사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2년 6개월. 이제 임기의 절반을 막 지나고 있다. 집권 초기 80퍼센트를 웃돌던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수 주째 40퍼센트 초반으로 반 토막 난 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국정 운영을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적인 지표도 50퍼센트에 이르고 있다. 반면에 자한당의 지지율은 민주당 지지율 턱밑까지 쫓아왔다. 조국 전 장관 문제가 정치 쟁점이 되면서부터 정국은 요동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와 신뢰를 철회하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조국이 장관직에서 사퇴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쉽게 반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들어서 보수·수구세력들이 빠르게 결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2년 6개월 전 촛불항쟁으로 박근혜가 탄핵되면서 함께 사형선고를 받았던 세력이다. 그래서 이들이 서울역, 시청광장, 청계광장, 광화문광장 등에서 박근혜 구명 집회를 할 때 그러려니 했다. 어느 시점부터 우리공화당(전 대한애국당)이 광화문 광장을 점거하고 세를 불리려고 할 때도 “말도 안 되는 소리로 국민을 현혹시키고 있다.”고 속으로 조소했다. 또 자유한국당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며 정치를 파국으로 몰아갈 때도 “그래봐야 자신들의 표만 갉아먹을 뿐이지”하며 도리어 내심 반기기도 했다. 그런데 10월 3일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300만 명이 광화문광장에 모였다. 자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했던 일이 저들에게 일어났다. 이에 고무된 듯 황교안 대표는 그날 ‘한미보수연합대회’에 참석해 인사말에서 “지금 선거를 치르면 이길 수 있느냐고 말하면 자신 없다. 그렇지만 앞으로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며 세 불리기에 기대와 자신감을 보였다. 연세대 류석춘 교수는 성희롱 막말도 부족했던지 지금까지 아무리 보수 우익이라 해도 함부로 하지 못했던 전태일을 평가 절하하고 폄훼하는 막말을 당당하게 지껄이고 있다. 보수·수구세력은 준동을 넘어 자신들의 세상인양 거침없이 행동하고 있다.

왜 이런 웃지도 울지도 못할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조국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함으로써 보수·수구세력에게 빌미를 줬고 검찰이 함께 동조했기 때문에? 상당한 이유이고 표면상으로는 그렇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을 신뢰하고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고 지지를 철회한 것은? 과연 조국이라는 한 사람의 문제로 환원시켜도 될까? 그렇다면 좋겠다. 이미 조국은 사퇴했고, 문재인 대통령이 그 특유의 화려한 언술로 대국민 사과를 한 번만 하면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그렇게 간단하게 모든 것이 씻은 듯이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조국 문제로 불거져 나왔을 뿐 본질은 다른 데 있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을 바르게 판단하고 제대로 대처하려면 다시 3년 전으로 돌아가 당시를 복기하며 답을 찾아야 한다.

2016년 11월 12일, ‘2016년 민중대회’가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렸다. 전국에서 올라온 100만여 명의 노동자·농민·시민들은 시종일관 “박근혜는 퇴진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그렇게 해서 박근혜 퇴진 투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곧 전국의 광장에 촛불을 밝혔다. 1,700만이 넘는 시민들이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촛불을 들었고, 마침내 이듬해 3월 10일 헌법재판소로부터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라는 결정을 이끌어냈다. 그때 민주당은 촛불에 결합하는 것을 망설였고, 당시 유력한 대선 후보자로 불리던 문재인 대통령은 탄핵 불가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다 판이 커지면서 결합했다.

아무튼 문재인 정부는 촛불항쟁의 힘으로 높은 지지 속에서 안정적으로 출범할 수 있었다. 바꿔 말하면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광장에서 외쳤던 시대적 요구를 성실하게 이행해야 할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지고 탄생했다는 것이다. 촛불항쟁에서 가장 많이 외쳤던 구호는 “나라다운 나라”, “차별 없는 세상”, “진실은 거짓을 이긴다” 등이다. 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나라다운 나라’에 대해서는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고 화답했고, ‘차별 없는 사회’에 대해서는 노동존중 사회를 만들겠다고 화답했고, ‘진실은 거짓을 이긴다’에 대해서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전면 재조사해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밝히겠다고 화답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화답에 국민들은 환호했고, 그래서 한때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90퍼센트에 육박하기도 했다. 어쩌면 전무후무한 기록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은?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조국’ 때문이라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완전한 대답은 아닌 것 같다. 지금의 상황은 문재인 대통령이 촛불이 부여한 시대적 요구를 수행하는 데 충실하지 않았던 데에서 기인한 결과이다. 이것이 본질이다. 경제를 살리고 양극화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소득주도 성장을 주창해 왔지만 결과는 참혹하다. 저성장 시대에 소득주도 성장이 가능하려면 대기업 자본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부가 중세영세기업 및 노동자들에게 나누어질 수 있도록 하는 획기적인 재분배 정책을 펴야 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그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2018년 통계청 3분기 ‘가계동향조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상위 20퍼센트 소득은 8.8퍼센트나 늘었고, 반면에 하위 20퍼센트 소득은 7퍼센트나 줄어들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차별은 얼마나 개선되었을까? 여성에 대한 차별,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이주 노동자에 대한 차별, 장애인에 대한 차별 중에 무엇 하나도 제대로 개선되었다고 할 만한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근거는 아직 보지 못했다. 예컨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우선해서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해놓고 결과는 자회사를 만들어 채용하는 방식이었다. 대부분 차별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더 나빠진 경우도 있다고 한다. 민간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해서는 아예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다. 전체 비정규직의 수는 별로 줄어들지 않았다. 정말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었다면 ‘사용사유 제한’과 ‘고용의제’를 법제화해야 했다. 촛불의 힘이 시뻘겋게 살아있던 집권 초기에 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노동존중 사회’는 말과 행동이 크게 다르게 나타났다. 최저임금은 초기에 반짝 올리는가 싶더니 최저임금 산입 범위를 확대해 효과를 반감시켜버렸다. 종래에는 최저임금 1만 원 약속은 지킬 수 없다고 선언했다. 주 52시간 상한제를 도입하고서는 곧바로 탄력근로시간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중소영세비정규 노동자들이 피해 대상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 모두가 윗돌 빼서 아랫돌 괴고, 줬다가 다시 뺏는 식이다. 그리고 시대와 상황과도 완전히 거꾸로 가는 정책이다.  ILO기본협약 비준안과 비준과 관련된 법 개정안을 조국대전이 한창이던 시점에 슬그머니 국회에 제출했다. 사업장 내 쟁의 행위를 금지하는 등의 상당히 심각한 개악 내용이 담긴 것은 차치하고라도 노동계는 이 시점에 비준안과 관련법 개정안을 낸 정부의 저의를 황당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누가 봐도 20대 국회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고, 내년 4월이면 현재 국회에 계류된 모든 법안은 자동 폐기되기 때문이다. 이 또한 집권 초기에 처리했어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세월호 5주기를 맞아 자신의 페이스북에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철저히 이뤄질 것입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그렇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는 국가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었더라면 애당초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고, 설령 그런 일이 일어났다 해도 304명이나 되는 귀한 생명이 죽음으로 내몰리지 않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점점 문재인 정부의 진상규명 의지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다. 국정원의 세월호 관련 조사는 국정원이 관련된 명백한 근거가 확인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으로 처리되었다. 2차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졌으나 제대로 된 조사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위원회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다시는 이런 애매한 조직이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한 언론매체 보도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초기 청와대에서 발견된 A4용지 두 박스에 해당하는 세월호 관련 문건이 폐기되었다고 한다. 이를 인지한 검찰도 조사하지 않았다. 더 기막힌 일은 수습된 유골을 은폐했다고도 한다. 정말 문재인 정부에서 있었던 일인지 믿기지 않는 일이 버젓이 있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오늘 날 직면하고 있는 상황을 조국이라는 한 개인의 문제로 좁게 보아서는 안 된다. 지금은 현상도 봐야겠지만 본질을 더 무겁게 받아들일 때이다. 이 사회가 차별 없는 사회로 가고 있는지, 노동존중 사회로 가고 있는지, 투명한 진실의 사회로 가고 있는지 되돌아 볼 때이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던 다짐은 자신과 주변에서부터 얼마나 엄정하게 적용되고 있는지, 대통령이 항상 말하듯 정말 제대로 된 나라다운 나라가 되고 있는지를 잘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과감하게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남은 임기 동안 촛불항쟁에서 확인되었던 시대적 과제를 완수하는데 진력해야 한다. 그것만이 문재인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오래 기억되는 길이고, 촛불항쟁이 촛불혁명으로 승화되는 길이고, 새로운 정치가 살아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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