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클로, 어코드, 한일 역사 전쟁

by 센터 posted Aug 2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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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덕 쉼표하나 회원



유니클로를 꽤 즐겨 입는다. 주말 외출할 때도, 평일 출근할 때 입는 옷도 마찬가지다. 옷장에 있는 평상복 대부분이 그 회사 옷이다. 여러모로  편하니 자연스레 자주 입는다. 굳이 이유를 대자면 요즘 말로 가성비, 가격 대비 성능이 만족스럽다. 좀 젊어 보이게(?) 입고 싶은 취향에도 맞고 가격도 부담 없다. 지난달 세일 때도 여름옷과 속옷, 실내화를 샀다.


몇 해 전 있었던 일. 어느 노동 토론회에서 한 청년 노동자가 말했다. 자기는 좋은 옷 입고 다닐 돈이 없어 맨날 싸구려 유니클로만 입고 다닌다고. 그날도 유니클로를 입었던 나는 당연히 마음이 살짝 상했다. 또 한편 의아했기도 했다. ‘아! 유니클로는 돈 없는 사람들이 입는 싸구려구나.’ 그런 이야기는 생전 처음 들었다. 물론 그 생각이 그만의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도 같은 생각인지 확인할 길은 없다. 아무튼 그 일 이후에도 꿋꿋이 그쪽 옷을 입고 다닌다. 입기 편하고 남들한테 피해 안 주면 되지, 싸구려라고 하든 말든 내가 왜 남 눈치를 보냐 싶다.


흔히들 차는 남자들의 ‘로망’이라는데 개인적으로 그리 큰 관심은 없었다. 그런데 주위에 외제 차가 부쩍 늘어나고 회사 동료들도 비싼 국산 차나 외제 차를 타는 걸 보니 ‘나도 언젠가 폼 나게 외제 차 한번 타보자.’ 싶은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는 가격과 성능에서 국산 차와 외제 차 간에 차이가 없다고 하던데 속 내용은 잘 모르겠다. 그래도 혹시나 다음에 외제 차를 산다면? 그러면서 떠올린 건 일본 혼다 어코드와 독일 차 폭스바겐.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왠지 평소 그 차들이 마음에 들었다. 또 한편 이런 생각도 들었다. ‘에이! 그래도 명색이 한국 사람인데 일본 차를 타는 건 좀··· 왠지 마음이 허락하지 않네.’(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일본 차 탄다고 문제 있다는 뜻이 아니다. 그냥 내 생각이 그랬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주면 좋겠다.) 사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대단한 애국자도 아니고, 이미 세상은 글로벌global한데 어느 나라 제품인지가 뭐 그리 중요한가. 취향에 맞으면 그만이지.


평소 일본에 대해 이렇게 생각해 왔다. ‘여러 측면에서 보면 한국이 일본에 배울 점도 있다. 경제력에서는 아직 상당히 큰 격차가 있다. 다만 일본은 지난 제국주의 시대 저지른 역사의 과오를 깨끗이 인정하고 합당한 책임과 행동을 해야 한다. 그걸 제대로 하지 않으면 당시 피해를 입은 동북아 여러 나라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힘들다. 특히 한국에 대해 그들이 해야 할 최우선 과제는 위안부 피해자들께(개인적으로 전시 일본군 성노예가 맞는 표현이라고 보지만 많은 이들이 이렇게 쓰니 따라서 한다.) 진정 사과하고 합당하게 배상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일본이 보인 지난 역사에 대한 인식과 노력은 실망스럽기만 하다. 더구나 최근의 우경화 움직임은 개탄스럽기까지 하다.’ 이런 생각을 나름 오랫동안 해오다 보니 일본에 대한 거부 반응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돌아보면 스스로가 참 양면적이고 모순이라는 생각도 든다. 일본 회사 옷을 즐겨 입으면서 또 한편 일본 차는 타지 말아야지 하는 건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으니.


갑자기 일본 옷과 차를 떠올린 건 최근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시작된 한일 간 갈등 때문이다. 경제와 무역을 그리 잘 알지 못하지만 이번 분쟁에서 일본의 주장은 한마디로 억지, 태도는 무례다. 그리고 이 분쟁은 경제를 가장한 역사 전쟁이다.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이니 말이다. 역사는 되풀이되고 청산되지 않은 역사는 언젠가 다시 분쟁의 불씨가 된다. 생각지 못한 상황에서, 너무도 억지스런 주장으로 치졸한 경제 보복을 하는 걸 보니 이 전쟁이 꽤 오래 갈 거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이번에는 우리가 100여 년전 구한말 때처럼 호락호락 당하지 않을 거라 믿는다. 물론 한국 관광객 감소나 불매 운동이 당장 일본 경제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지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이건 알아야 한다. 사람은 한 번 마음이 떠나면 모든 게 떠나고 끝이라는 사실.


이 와중에 “한국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장기간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유니클로 일본 본사 임원의 말은 불난 집에 부채질을 했다. 많은 국민들이 공분했고 그만큼 불매 운동도 빠른 속도로 번져가고 있다. 나도 같은 마음이다. 있는 옷이야 어쩔 수 없이 입어야겠지만 당분간 유니클로를 새로 사거나 일본 차 타볼까 하는 생각은 아예 없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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