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과 통신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by 센터 posted Aug 2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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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병길 센터 상임활동가



지난 6월 26일 퇴근 시간, 방송통신공공성 강화와 나쁜 인수합병 반대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이 주최하는 캠페인에 참가했다.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피켓을 들고 우리의 목소리를 전했다. 공동행동은 ‘방송통신 공공성 강화와 나쁜 인수합병 반대’를 위해 모인 166개 시민, 노동 단체들이다. 지난 5월 30일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2.기자회견.jpg

방송통신 공공성 강화와 나쁜 인수합병 반대 공동행동 출범 기자회견(@공동행동)


현재 LG유플러스는 CJ헬로 인수를, SK브로드밴드는 티브로드와 합병을 추진 중이다. KT는 국회에서 합산 규제에 대한 결론이 나오지 않은 탓에 딜라이브 인수를 잠정 중단했다. 물론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지 다시 인수를 시도할 게 뻔하다. 다른 재벌 통신사들도 군침을 흘리고 있음은 물론이다. 만약 통신 재벌이 계획대로 케이블 방송을 인수한다면 유료 방송, 초고속 인터넷 시장 90퍼센트 가량을 잠식하게 된다. 통신 재벌이 지배 중인 통신 산업처럼 사실상 독과점 시장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2016년 SK텔레콤은 CJ헬로비전 인수를 시도했으나 실패한 적이 있다. 그 뒤 한동안 잠잠하나 했더니 통신 재벌 영토 확장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과거와 달리 여론 지형이 많이 변했다. 케이블 방송 인수합병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약하다. 언론 역시 마찬가지다. 여기에 정부는 인수합병을 부추기고 있다. 김상조 전 공정거래위원장은 2016년 SK텔레콤의 인수 시도가 무산된 것에 대해 “다시 심사한다면 좀 더 전향적인 자세로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그때나 지금이나 통신 재벌의 독과점 우려는 여전한데 정부 입장만 뒤바뀌었다.


퇴근 시간이어서 그런지 다들 바삐 움직였다. 그 와중에 몇몇 이들은 고개를 돌려 피켓을 읽었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무료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 물끄러미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유인물을 나눠주는 활동가는 지나가는 사람을 한 명이라도 더 붙잡기 위해 노력했다. 마이크를 잡고 발언을 하는 이의 목소리가 분주한 거리를 가득 메웠다. 캠페인을 시작한 지 30분 정도 지났을까. 김진억 집행위원장이 나에게 다가와 다음 발언을 부탁했다. 얼떨결에 “알았다.”고 대답했다. 조금 걱정이 되었다. 방송 공공성이니, 지역성이니 하는 주제가 쉽지 않아 말을 잘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시간은 흘렀고, 나는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 방송과 통신은 공공재입니다. 물이나 공기와 다를 바 없습니다. 주파수는 자연적으로 존재합니다. 정부가 관리하고 기업에 잠시 임대해줄 뿐입니다. 정부는 국민에게 주권을 양도받아 행사하니 결국 방송과 통신은 우리의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매달 많은 비용을 기업에 지불합니다. 통신 재벌은 땅 짚고 헤엄치는 사업을 하면서 막대한 이익을 챙깁니다. 이제는 케이블 방송까지 장악하겠답니다. 이들이 원하는 대로 인수합병이 이루어지면 방송 요금 상승은 당연한 수순입니다. 자본의 논리에 따라 공공재를 시장에 맡겼습니다. 하지만 자본의 욕심은 끝이 없나 봅니다. 시장의 다양성과 자유경쟁마저 위협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통신 재벌 배불리기를 가만히 놔둬서는 안 됩니다. 케이블 방송의 공공성과 지역성을 지켜야 합니다.”


2.캠페인.jpg

지난 6월 26일 광화문에서 공동행동이 주최한 캠페인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활동가들.(@공동행동)


통신 재벌이 운영하는 IPTV(Internet Protocol Television: 초고속 인터넷을 이용해 정보 서비스, 동영상 콘텐츠 및 방송 등을 텔레비전 수상기로 제공하는 서비스)는 케이블 방송보다 이윤이 훨씬 크다. 인수합병이 이루어지면 케이블 방송 가입자 빼가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게 뻔하다. IPTV와 케이블 방송 결합상품 출시, 위약금 대납, 케이블의 고객정보를 바탕으로 한 불법 영업 등이 우려된다. 케이블 방송은 지역을 기반으로 한 방송이다. 중앙 방송이 전달하기 힘든 지역의 생생한 소식을 전달하며, 지역 미디어가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케이블 방송이 무너지면 지역의 다양한 목소리도 죽을 수밖에 없다. 통신 재벌로부터 케이블 방송을 지켜야하는 이유다.


통신 재벌도, 이들을 감시·감독해야 할 정부도 방송의 공공성과 지역성에 큰 관심이 없는 듯하다. 자본의 논리를 중심으로 이번 인수합병을 바라보고 있다. 정부는 인수합병 심사에 대한 정보나 기준을 명확하게 공개하지 않았다. 어떻게 방송의 공공성과 지역성을 지키겠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저 추상적이고 원론적인 말 뿐이다. 시청자, 노동자, 전문가, 시민단체 등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들어보려는 노력 역시 부족했다. 미리 답을 정해놓고 인수합병을 밀어붙이는 형국이다.


인수합병을 하면 노동자의 고용 안전성이 훼손될 우려도 매우 크다. IPTV와 케이블 방송 노동자 업무는 상당 부분 겹친다. 인수합병 이후 정리해고가 이루어진 사례는 무수히 많다. 정부는 노동자의 고용을 보장할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자본의 무한한 욕망이 노동자를 덮쳐도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케이블 방송 노동자 상당수가 그들이 일하는 지역 사람이다. 이번 인수합병은 지역 미디어뿐만 아니라 지역 일자리까지 뒤흔드는 지역 파괴 사업이다. 지방 분권, 지역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시대 흐름과 어울리지 않는다.


발언 마지막 즈음, 나는 시민들에게 이번 인수합병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통신 재벌의 케이블 방송 인수합병은 여러분 모두의 일입니다. 다들 스마트폰을 쓰고 텔레비전을 보지 않습니까? 이웃의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야 언론이 보도를 하고 국회가 정부를 압박합니다. 그래야 정부가 움직입니다.”


나쁜 인수합병을 막기 위해서는 결국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 가입자 빼가기를 방지하고, 케이블 방송 공공성과 지역성을 보장하며, 지역 일자리를 지킬 방안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수익의 일정 부분을 케이블 방송에 의무적으로 투자할 수 있을 것이다. 방송편성위원회, 시청자위원회를 설치해 방송의 독립성과 시청자의 권리를 보호할 수도 있다. 노동자가 피해를 보지 않도록 규제하고 필요하다면 직무 재교육을 적극적으로 지원함은 물론이다. 이외에도 인수합병의 부작용을 막을 여러 방안이 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시민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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