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캐노피에 오르다

by 센터 posted Aug 2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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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화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 지부장



지난 628일 해고를 이틀 앞두고 서산톨게이트에서 마지막 문화제를 하면서 6월 한 달 동안의 집회를 마무리했다. 순차적 해고로 인해 이미 해고당한 동지들을 위한다기보다 7월의 대량 해고, 나 자신의 해고를 막아보기 위해 전국 영업소를 돌며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매일매일 순회집회를 했다. 조합원들은 3교대 근무를 병행하며, 남은 연차를 다 써가면서 집회에 참석했다. 마지막 집회는 고생한 조합원들을 위해 맛난 음식과 연대 동지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2시간여 문화제를 마치고 한국노총과 회의를 다녀온 민주일반연맹 사무처 동지를 통해 30일 새벽에 서울톨게이트 캐노피에 오르자는 내용을 전달 받았다. 물론 각 노조의 승인이 있어야 했지만 한국노총 톨게이트노조와 함께하는 첫 번째 공동투쟁이었다. 이변이 없는 한 한국도로공사는 1,500명을 해고할 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에 공동투쟁을 하지 못할 이유도 안 할 이유도 없었기에 흔쾌히 동의했다. 다음날 함께 올라갈 조합원들을 조직하고 배낭에 짐을 꾸리면서 이런 상황까지 내몰고 있는 도로공사의 행태를 다시 한 번 되짚어 보았다.


1.집회.jpg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대량해고를 규탄하고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집회를 열었다.(@톨게이트지부)


톨게이트는 영업소마다 사장이 다르다. 도로공사 조기 퇴직자들이 보상 차원에서 영업소 운영권을 받았고, 그 사장들은 수납원들의 복지나 처우에는 애당초 관심도 없었다. 계약 기간 동안 본인들의 이익을 위해 최대한 빼먹을 수 있는 것은 다 빼먹었다. 심지어 인건비마저도 착취하는 아주 악덕 사업주들이었다. 거기에다 거의 여성 노동자들이었고 생계를 위해 일터로 나온 사람들을 상대로 성희롱에 인권 유린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물론 관리자라는 도로공사가 모를 리 없었다. 본인들의 선배가 사장이었기 때문에 전관예우 차원에서도 섣불리 건들지 못했다. 심지어는 도로공사 관리자들의 성희롱도 만만치 않았다. 본인들의 지위를 이용해 사장보다도 더 악독하게 수납원들을 탄압하고 무시했다. 사장들을 감독하는 일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면서 수납원들을 희롱하고 탄압하는 데는 한 치의 망설임마저도 없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싫어도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못했고, 부당함을 알면서도 묵인하면서 근무를 할 수밖에 없었다. 밉보이거나 튀는 행동으로 인해 그나마 그 일자리마저도 잃어버릴까하는 불안감에 크게 숨도 못 쉬고 살았다.


하이패스가 전국으로 도입되면서 우리는 소리 소문 없이 하루아침에 쫓겨날 수 있겠다는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 하이패스 이용량이 늘어날수록 감원 인원은 계속적으로 늘어나고 도로공사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공문 한 장으로 우리를 해고하기 시작하였다. 감원 인원만큼 용역 계약 기간을 늘려주었기에 사장들 손해는 없었고 이참에 말 안 듣고 미운 애들 정리하는 좋은 기회로 여길 뿐이었다. 지금은 해고 대상이 내가 아니라는 안도감도 잠시, 다음에는 내가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더 입도 귀도 막았던 세월이었다.


2013년에 암암리에 일부 수납원들이 각 영업소마다 상주하면서 직접적인 업무 지시와 관리 감독을 한 도로공사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했다. 20151차 판결, 20172차 판결 모두 우리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도로공사는 법원 판결을 이행하지 않았고 대법에 상고했다. 그러던 와중에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정책에 따라 소송 없이도 직접고용 기회가 생겼다. 고등법원까지의 판결과 정부 정책에 따라 2018년부터는 도로공사 정규직으로 근무할 거라는 생각에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악한 도로공사는 정부 정책을 본인들의 입맛대로 악용해 직접고용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로 자회사를 들고 나왔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우리를 협박하고 회유했다. 뜻대로 되지 않으니 자회사를 밀어붙이듯이 강행했고,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자회사를 반대하는 수납원 1,500여 명을 자회사 출범 시기에 맞춰 모두 해고했다.


1.케노피.jpg

서울톨게이트 캐노피에서 차 매연과 소음 속에서도 농성 중인 톨게이트 노동자들(@톨게이트지부)


630일 새벽 1시에 집을 나서며 다시 한 번 도로공사의 만행에 치를 떨었고, 새벽 3시에 캐노피에 오르면서 이런 상황에 이르기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히려 자회사를 조장한 정부에 분노했다. 이제는 도로공사만의 책임이 아닌 정부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잘못된 정규직 전환으로 인한 피해는 우리 몫이 되었고 직장마저도 잃어버린 해고자가 되었다.


우리가 자회사를 갈수 없는 이유는 너무나 명백하다. 돈을 더 달라는 것도 아니고 정년을 더 늘려달라는 것도 아니다. 또 다른 용역회사와 다를 바 없는 자회사가 아닌, 해고당할 불안 없이 다닐 수 있는 안정적인 직장을 원하는 것이다. 임금을 30퍼센트 올려주면 뭐할 것이며, 정년을 1년 더 늘려주면 뭐할 것이며, 승진이 왜 필요하단 말인가? 임금이 더 적어도 정년이 더 짧아도 승진의 기회가 적다해도 우리는 직접고용을 요구했다. 계약 만료라는 표현을 쓰며 집단해고를 당한 우리를 보더라도 그렇고, 이미 앞전 동료들이 하루아침에 해고되는 걸 지켜봤고 그런 불안감 속에 지내온 나날들이었기에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더 이상 그렇게 살지 않겠다! 라는 우리의 외침을 도로공사와 정부는 외면하고 있다. 듣기 싫다고 안 듣고, 보기 싫다고 안 보고 있는 그들을 상대로 우리는 귓구멍이 뚫릴 때까지 눈을 뜰 때까지 외치고 보여줄 것이다.


캐노피에 올라 온 지 46일이 지난 지금 우리는 많이 달라졌다. 대오가 흐트러지지 않고 너무나 잘 싸우고 있다. 캐노피 동지들은 청와대에서 고생하는 동지들을 보며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며 잘 버티고 있고, 청와대 동지들은 우리를 보면서 하루라도 빨리 내려오게 하려고 열심히 투쟁하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이유가 되어준다. 우리를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한 동력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 불안감은 있었지만 처음으로 우리가 한 선택이 옳다, 라고 생각했던 것이 확실히 옳았음을 확인하며 확신에 차있다.


양보하고 포기했던 우리의 권리였다. 그래서 선택도 할 수 없었다. 처음으로 우리의 권리를 우리 손으로 직접 찾겠다는 우리의 선택으로 시작한 투쟁이다. 우리는 이 투쟁 반드시 이길 것이다. 아니 이길 수밖에 없다. ? 우리는 이길 때까지 싸울 거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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