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단상

by 센터 posted Aug 2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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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원 센터 이사



누구든 살아가려면 직업을 갖게 된다. 그런데 인생에서 어떤 직업을 갖느냐는 매우 우연적 사건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물론 천재성을 가지고 태어나 특수한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하는 극소수의 사람이 있다. “7세 때부터 한 사물을 보면 상하 전후 좌우 여섯 각도의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졌다.”는 만화가 고우영 씨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이른 바 신동이라는 사람들이 이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 대부분 개인의 특성보다는 그 시대의 경제 사회 등 시대적 요구에 맞춰 직업을 갖게 된다. 나도 예외적이지 않다. 청년 시절에 인권과 민주주의를 말살하는 군사독재에 대해 분개했고, 학생운동에 이어 현장에서 노동운동을 시작하게 됐다. 적성에는 안 맞아도 여차저차 노동조합을 거쳐 초대 소장 박승흡 동지를 만나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설립과 2대 소장을 맡았다.


그러다 2013년 우연한 기회에 내 인생에서는 색다른 직업을 갖게 되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비정규직 정규직화 일환으로 자회사를 만들어 서울메트로 청소용역 노동자들을 편입시킨 것이다. 주변 권유로 자회사 대표이사에 지원해 4년간 경영자로서 임무를 맡았다. 노동운동 출신 경영자로서 1,700명 남짓한 회사를 운영하면서 겪은 일과 소회를 간략히 적어 본다.


취임하여 제일 관심 있게 본 것은 현장 상황과 조직 운영 방식이었다. 그동안 듣던 대로 용역회사의 실상은 말이 아니었다. 첫 번째 놀란 것은 여성 사업장임에도 불구하고 남성 중심의 지시 문화가 지배적이었다. 당시 1~4호선 역에서 근무하는 분들이 1,000명 남짓이었는데, 이중 85퍼센트 이상이 여성들이었지만, 중간관리자 60명은 모두 남성이었다. 성역할이 고정된 대표적인 성차별적인 사업장이었다. 중간관리자 대부분은 장교 출신으로 특수한 조직의 리더십에 익숙한 분들이었다. 이에 전 직원에게 내 전화번호를 알려 언제든지 자유로운 통화가 가능하도록 하는 한편, 현장 직원 대상의 17주 50시간의 리더십 과정Course을 개설해 과정을 마친 직원 중 지식과 능력을 갖춘 사람을 승진시켰다. 2017년 퇴임할 즈음에는 현장 출신 여성 중간관리자가 20퍼센트에 이르렀다. 현장 출신 여성 중간관리자의 능력이 기존 관리자에 비해 나으면 나았지 떨어진다는 소리는 안 들었다. 이후에도 리더십 과정과 현장 승진 제도는 계속 이어짐에 따라, 지금은 여성 중간관리자 비중이 이보다 높아진 것으로 알고 있다.


두 번째 충격 받은 것은 5개 기지의 전동차 청소 직원 350명이 탄력근로제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오전 9시에 출근해 다음 날 새벽 2시에 퇴근하니 무려 17시간을 체류하고 휴식시간 3시간 뺀 14시간을 노동하고 있었다. 물론 격일제지만 어떻게 소도 아닌 사람이 하루 14시간 고강도 육체노동을 평생 할 수 있단 말인가? 쉬는 날 한의원과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 받는 직원들을 보면서 ‘야만적인 노동’이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이후 인력과 비용이 더 들어가지만, 1년간 자회사 자체 예산으로 하루 8시간제(4조 3교대)를 시범적으로 실시하다가 마침내 모기업과 협의를 거쳐 정식으로 제도화되었다. 나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핫이슈로 떠오른 탄력근로제 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늘이는 법 개정 방안에 반대한다. 4년간 현장에서 그 폐해를 생생하게 목격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탄력근로제는 사유제한을 받아야 한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사유가 있는 경우, 즉 계절적 노동이나 일시적 업무량이 증가한 경우 엄격한 요건을 충족할 때에만 허용해야 한다.       


세 번째로 실망한 것은 조직 문화였다. 위계에 기초한 억압적 문화는 노동자 사이에서도 만연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고참들의 위세나 횡포가 군대와 다를 바 없었다. 대등한 관계에서의 건설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또한 한 역에 배치 받으면 퇴직 때까지 한 자리에서 일하기 때문에 바쁜 역과 한가한 역 사이에 형평성 문제도 아울러 있었기에,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순환전보를 실시하니 형평성과 수평적 의사소통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끝으로 불편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이 노동조합, 특히 민주노총 간부에 대한 인식이 별로 좋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노동조합 출신이라고 하니까 마치 ‘말썽꾸러기’,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으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일을 함께해본 사람들이 나중에 “오실 때 걱정 많이 했는데, 일을 합리적으로 처리해서 안심이 됐다.”며 솔직한 말을 하기에 “민주노총 간부 90퍼센트는 저와 비슷한 사람들입니다.”라고 대꾸한 적이 있다. 노동조합은 때로는 과격Agressive할 수 있다. 그러나 말썽꾸러기로 비쳐져서는 안 된다. 노동조합 간부가 경영자보다 지적 능력에서나 도덕적으로 우월해야 기업을 넘어 사회적 대안세력으로 자리 잡을 수 있지 않을까?


노동운동을 하던 사람이 팔자에 없는 경영계에 들어선 지 7년째에 접어들었다. 조금의 정의감과 합리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용역회사의 비합리적 관습과 문화를 고쳐 나갔으리라고 생각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나의 경영학적인 지식과 경험의 대부분은 노동조합 활동에서 배우고 익혔다는 점이다. 그 점을 나는 고맙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재무제표를 읽는 법, 문서를 생산하고 행정 처리하는 법, 대인관계를 하는 법, 회의와 토론하는 법,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법, 교육을 기획하고 운용하는 법 등 모두 노동조합에서 배웠다. 노동조합은 연대를 배우고, 소통을 하며,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배우는, 한마디로 인간 성장과 사회화의 유용한 도구이다. 특히 교육이 중요하다.        


경영계에 들어선 이후 알게 된 것은 기업들이 노동조합에 비해 엄청난 예산을 들여 직원들을 교육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업은 단순히 이론이나 태도만 아니라 리더십, 의사소통, 갈등 조정, 업무 위임, 창의성 개발 등 조직 생활에 필요한 온갖 지식과 기술Skill을 제공한다. 요즘에는 코칭까지 해가며 직원 성장을 돕고 있다. 과연 노동조합의 교육투자는 어떠한가? 한국 비정규 노동에 바라는 게 있다면, 활동을 시작한 비정규 노동자들의 교육과 훈련에 조금 더 역량을 썼으면 한다. 한 활동가가 배출되기 위해서는 경험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동물도 경험을 통해 배우지만, 인간은 학습이라는 고유한 능력을 통해 성장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노동 운동가로서 요구되는 리더십 내용을 비정규 운동 활동가에게 체계적으로 제공하자. 그리하여 유능한 노동 운동가로 성장한다면 노동운동의 미래가 지금보다 더 밝지 않겠는가. 2,500년 전 공자가 한 말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저절로 아는 사람이 최상이요, 배워서 아는 사람이 그 다음이며, 막힘이 있어 배우는 것은 그 다음이다. 막힘이 있어도 배우지 아니하는 것은 최하이다.”

孔子曰 生而知之者上也 學而知之者次也 困而學之 又其次也. 困而不學 民斯爲下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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