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노동건강전국센터 20년 발자취

by 센터 posted Jun 2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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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직수 센터 정책연구위원



총평(노동조합총평의회) 해산은 일본 노동안전보건운동 전개 과정에서 커다란 변화의 계기였다. 일본 안전보건운동은 노동건강전국센터와 노동안전전국센터라는 안전보건운동 전문단체가 주도했다. 이 두 단체는 노동자 건강권 쟁취를 목표로 예방과 사후대책 양면에서 활동한다.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 환자단체, 보건의료단체, 연구자, 의사, 법률가 등이 협력하고, 풍부한 경험과 정보력으로 전국적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그리고 일본 노동안전보건운동 내에서 위상을 지니며 신뢰를 얻고 있다. 이 글에서는 두 단체 가운데 올해로 출범 20주년을 맞은 노동건강전국센터의 발자취를 되짚어본다.


1989년 총평 해산과 더불어 일본노동자안전센터 역시 해산하게 된다. 미이케 탄광 탄진 폭발 사고를 계기로 1960년대를 거치며 노동조합 주도로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활발히 벌이던 센터가 해산되었지만, 노동조합운동 분열의 충격 속에서 부분적인 재건 시도는 결실을 이루지 못했다. 달리 말하면 노동조합 주도로는 노동안전보건운동의 중심을 세우는 것이 쉽지 않았던 시기다. 이후 1992년 노동안전보건 분야 대표적 연구자이자 이전에 일본노동자안전센터와도 긴밀한 협력관계를 갖고 활동하던 세 명이 중심이 되어 노동안전 심포지엄을 개최하면서 노동자안전센터 재건 필요성을 제기했다. 일본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던 직업병대책연합회, 환자단체, 단위노조, 법률단체 등이 참여하면서 교류를 강화했지만 전반적으로 노동조합운동은 커다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가운데 1989년 독립적인 노동조합 전국조직으로 출범한 전노련(전국노동조합총연합)이 1993년부터 안전보건센터 설립을 추진하며 전문가단체, 환자단체 등과 교류를 넓혀가기 시작했다. 전노련이 참여하면서 노동안전보건 단체들의 전국 교류회가 매년 개최되며 센터 설립이 구체화되었고, 1996년 전노련 외에 보건의료단체인 민의련(전일본민주의료기관연합회의) 등 5개 단체가 중심이 되어 구체적인 검토를 거쳐 이듬해에 전국센터설립준비위원회를 발족했다. 총평 시기 노동자안전센터는 노동조합 산하 조직으로서 어디까지나 노동조합에 의해 운영되며 전문가들이나 외부단체들이 협력하는 방식으로 안전보건운동이 이루어진 반면, 새로운 센터는 설립과 운영 자체를 노동조합, 전문가단체, 시민사회단체 협력을 통해 공동으로 추진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였다. 그 배경에는 총평 안전센터 주축을 이루던 노동조합이 철강업, 광업 등의 대규모 사업장 노조였던 데 반해, 전노련의 경우 공무원, 서비스업 등이 중심을 이루는 노동조합으로서, 제조업 작업장 안전보건 중심의 당시 노동안전보건 활동 경향 속에서 직접적인 관련성이 비교적 적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동시에 일본 노동조합운동의 분열이라는 조건 하에서 정파적 한계를 조금이나마 극복하기 위해서도 가장 적절한 방식이기도 했다. 또한 전국센터는 기본적으로 지역 또는 전국 수준 노동안전보건 단체들이 단체회원 자격으로 연합해 결성한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 연구자, 의사, 법률가 등 전문가들에게 대등한 개인회원 자격을 부여해 참여도를 높이고 긴밀한 협력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는 총평 노동안전센터에 관여하던 전문가들이 해산 과정에서 소외되었던 경험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1998년 초부터 비교적 규모가 큰 전노련과 민의련이 각각 한 명의 전임자 인력을 지원하면서 사무국이 개설되었고, 전국센터 준비위원회 소식지도 발간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전국센터 사무국과 지역별 센터가 상하관계를 갖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지역센터들의 연합체 형태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이는 노동조합운동의 분열과 그로 인한 안전보건운동의 후퇴 배경에 경직된 운동 방침과 조직 구조가 있었다는 반성의 산물인 동시에, 노동운동 후퇴 국면에서도 독립적으로 산재 및 직업병 대책 활동을 벌여왔던 지역단체들에 대한 존중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이윽고 1998년 12월 ‘일하는 사람들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전국센터’(노동건강전국센터, 이하 전국센터)가 출범했다. 전국센터는 그간의 활동을 네 시기로 구분하고 있다. 출범 이후 신자유주의적 노동개혁에 대응하면서 지역센터를 확장하고 운영체계를 확립하며 활동 범위를 넓혀 갔던 2003년까지의 시기, 2003년 규제완화 추세 속에서 정부에 의해 추진된 노동재해보험 민영화를 저지하기 위한 투쟁을 계기로 운동성이 강화되고 노동안전보건 관련 예방 활동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한 2004년에서 2007년 사이 시기,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계기로 대규모 비정규직 해고 등 고용위기 대응에 중점을 두었던 2008년부터 2012년 사이 시기,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관련 대응을 중심으로 활동 방향 전환을 겪은 2013년 이후가 그것이다.


전국센터 설립을 추진하고 결실을 맺은 1990년대 중후반은 일본에서 신자유주의적 노동개혁 광풍이 몰아치던 시기였다. 1995년 경영자단체인 일경련이 발표한 ‘신시대의 일본적 경영’은 그 선언문이었고, 이후 파견노동 규제완화 등 수많은 노동권 침해 시도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국센터는 우선 정보 교류와 확산에 노력을 기울였다. 출범 직후 월간 소식지인 《전국센터통신》을 발행해 각 지역별 활동의 소통의 장이 되었다. 이듬해부터는 동일본과 서일본에서 각각 대규모 포럼 형태로 교류회가 시작되었고, 이후 규슈, 관동, 홋카이도 등 지역별 블록세미나 형태로 발전했다. 설립 초기 전국센터의 지역별 블록세미나는 안전보건 활동가 양성과 신규 지역센터 설립의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 지역별 교류회 외에도 각 지역센터 활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전체적인 안전보건 활동 방향을 논의하는 전국교류회 역시 시도되었고, 2001년부터는 핵심적인 당면과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하는 과제별 교류회 형태로 발전하였다.


전국센터 활동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면서 2000년대부터는 활동성과를 바탕으로 작업장 안전보건 Q&A, 새로운 과로사 노동재해 인정 기준 자료집, 작업장 정신건강 등 간행물을 발행해 큰 반향을 얻었다. 한편, 전국센터 설립 준비 단계부터 계속되어 온 연구회 활동은 현장과 전문가, 활동가를 이어주는 중요한 장이 되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과로사연구회와 장시간노동연구회가 2002년부터 통합해 활동하면서 전국 및 각 지역센터 활동방향에 대한 제언과 제도개선 방안을 제출했다. 그밖에 국제산업안전보건연구회는 ILO와 교류를 통해 다양한 과제를 도출했고, 2003년부터 시작된 정신건강연구회 노동자 입장에서 정신건강 대책을 수립하고 조사연구 활동을 벌였다. 보건의료 전문가 외에 법률 분야 전문가들과 협력 또한 강화하기 위해 매년 두 차례 판례 검토회도 열렸다. 그 성과로 새로운 과로사 인정 기준, VDT 안전보건기준, 요통 및 경견완 인정 기준이 제출되었다.


전국센터는 설립 직후 각 지역별 운동을 연결하고 또 현장과 전문가 및 활동가들을 이어주는 역할에 중점을 두었다. 설립 당시 47개 도도부현 가운데 9개 지역센터가 있었으나 꾸준히 확대해 2002년에는 21개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각 지역센터는 주요 도시 및 기초지자체 수준에도 노동안전보건 단체들이 설립될 수 있도록 지원했고 일부 지역에서 결실을 맺었다. 또한 운동의 확장을 위해 2001년부터 각종 노동안전보건 및 재해 관련 상담 활동을 했다. 이후 각 지역센터에 상담실이 자리를 잡으면서 2004년부터 전국센터 사무국 상담활동은 중단되었다. 전국센터는 일본 전국 및 지역 외에도 설립 초기부터 국제교류활동 역시 활발히 벌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의 원진직업병관리재단과의 교류다. 2000년에는 한국에서 한일노동보건학술교류회가 열려 이황화탄소 중독 환자들과 교류했다.


전국센터 활동 제2기라 할 수 있는 2004년부터 2007년 사이 시기는 노동재해보험(산재보험) 민영화 시도, 쿠보타 쇼크 등 다양한 이슈와 관련한 ‘투쟁의 시기’였다. 먼저 2003년 12월 일본 규제개혁위원회가 노동재해보험 민영화를 제안하면서 주요 노동조합 및 노동안전보건운동 단체들은 반대투쟁에 돌입했다. 전국센터 역시 다양한 수단을 통해 총력투쟁을 벌였고, 결국 이듬해 3월 정부는 민영화를 무기한 연기했다. 2005년에는 노동안전위생법(산업안전보건법에 해당) 개악 시도가 이어졌다. 노동시간 관련 규제 폐지 또는 완화가 핵심적인 내용이었다. 저지투쟁에도 불구하고 개악안 자체는 결국 국회에서 통과되었지만, 개정 법안 부대결의안에 전국센터 등 노동안전보건 단체들의 의견이 부분적으로나마 반영되었다. 다만 2007년 화이트칼라에 한해 노동시간 관련 규제를 적용 제외하려는 시도는 저지에 성공했다. 이 시기 일련의 제도 개악 가운데 절정은 2008년 1월의 노동재해 심사제도 개악 시도였다. 심사결과에 대한 이의제기 및 불복에 제한을 가하는 내용으로 환자 및 가족들의 권리를 대폭 제한했다. 노동조합은 물론이고 노동건강전국센터 외에 전국노동안전센터연락회의(노동안전전국센터), 일본노동변호단, 전국과로사변호단 등을 중심으로 투쟁을 이어갔고, 결국 개정안은 2009년 폐기되었다. 그밖에도 이 시기에 걸쳐 전국센터는 정신장해, 석면재해, 진폐(터널공사 진폐) 등과 관련한 노동재해 및 직업병 인정기준을 재검토하고 개정을 요구했다.


한편 2005년 효고현 아마가사키의 쿠보타 공장에서 발생한 석면 재해가 인근 주민에게까지 확산되면서 이른바 ‘쿠보타 쇼크’로 알려지게 되었는데, 전국센터 역시 피해 실태조사, 상담, 건강진단, 교육 등의 활동에 집중했다. 나아가 피해자 구제 및 방지 대책 제정운동을 벌였고 입법 이후에는 피해자 소송 지원 활동도 했다. 이를 계기로 전국센터는 석면 문제에 대한 대응을 주요 활동의 일부로 강화했다. 이처럼 제도개선(개악 저지) 투쟁, 석면 문제 대응을 통해 전국센터는 사후 대응보다 예방이 중요함을 다시 한 번 절감하고, 예방 활동 강화에 필수적인 안전보건 활동가 양성에 노력을 기울인다. 전국센터는 2005년부터 현재까지 매년 현장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노동안전보건학교를 개최하고, 2007년부터는 각 단위노조 및 산별노조 대표자회를 개최해 노동조합의 자체적인 안전보건활동 강화를 촉진하고 있다.


세계금융위기가 발발한 2008년 하반기부터 자동차산업을 비롯한 일본의 제조 대기업을 중심으로 파견 노동자 및 기간제 비정규 노동자들의 대량해고가 발생하는 등 이른바 ‘고용 파괴’가 가속화되었다. 전국센터는 파견 노동자, 하청 노동자 등 비정규 노동자들의 건강권 강화를 위한 내용을 포함한 안전보건 관련 제도개선 요구안을 마련해 후생노동성 측에 전달했다. 또한 2010년에는 예방 및 보상 관련 내용 강화를 중심으로 한 석면대책기본법 개정 요구안을 제출했다. 그런데 금융위기 여파 이상으로 일본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준 사건이 이듬해 발생했다. 바로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다. 전국센터는 대지진 및 원전사고 관련 복구 작업 노동자들의 안전보건 문제에 집중하면서 화학물질연구회 등을 중심으로 현지 조사를 실시하고 방사선과 더불어 피해 지역 석면 확산 문제를 제기했다. 2008년부터 2012년 사이는 일본 사회가, 특히 노동시장이 커다란 위기를 맞은 뒤 회복해 가는 과정을 되풀이한 시기로, 이 과정에서 전국센터는 소외된 비정규 노동자, 중소영세기업 노동자들의 건강권 문제를 제기하는 활동을 이어갔다.


일본은 일찍이 고령사회에 진입한 만큼 노동운동과 시민사회운동을 주도하던 베이비붐 세대의 고령화가 문제되었는데, 2010년대에 진입하면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전국센터 역시 2013년 15주년을 맞아 새롭게 ‘과제와 활동방향’을 재정립하면서 후속세대 양성과 지역센터 확대를 최우선 과제로 정했다. 동시에 청년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큰 문제로 부상한 직장 내 괴롭힘, 이른바 ‘블랙기업’ 문제에 관한 활동을 강화했다. 무엇보다 2013년 이후 최근에 이르기까지 전국센터 활동과 관련한 중요한 사건으로 과로사방지법 제정과 석면 소송에서 국가와 기업 측 책임이 인정된 일이다.


먼저 후속세대 양성과 관련해서 노동조합 활동가를 대상으로 한 노동안전보건학교와 전국 및 지역센터 활동가 양성을 목적으로 한 교육 과정을 별도로 연간 두 차례 개최했다. 지역센터 확대를 위한 노력도 계속되었다. 2018년 오키나와에도 지역센터가 설립되면서 31개에 이르렀다. 영역별 활동에서는 연구자 등 전문가와 연계를 통한 활동이 두드러졌고, 화학물질 관련 활동이 대표적이다. 이 과정에서 후쿠이현에서 발생한 미쯔보시 화학공장 직업성 암 문제에 대한 대응 활동에서는 현장과 전문가, 활동가 간 연계뿐만 아니라, 동일본과 서일본이라는 지역 간 연계, 정파적 차이를 넘어선 건강센터와 안전센터 등 조직간 연계가 두드러졌다. 또한 IT노동자건강연구회 활동은 열악한 노동조건, 장시간 노동,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잘 알려진 정보통신업계를 중심으로 ‘블랙기업’에 관한 문제제기를 구체적으로 제기하며 활동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지난 수 년 사이 과로사방지법이 제정되고 석면 소송에서 승리한 일은 일본 노동안전보건운동의 주요 성과이다. 노동건강전국센터가 장시간 노동 및 과로사 문제에, 노동안전전국센터가 석면 문제에 강점을 지니고 있다는 측면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 양 센터는 화학물질 위험 문제와 관련해 긴밀한 협력 하에 대응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 노동조합운동 분열과 붕괴를 맞은 이후로도 일본 사회 내에서 노동자 건강권에 대한 문제제기가 끊임없이 이어지며 다시금 노동운동에도 작지만 새로운 원동력이 제공되고 있는 배경에는 지난 20년간 현장과 당사자, 전문가를 이어주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노동건강전국센터 등 노동안전보건단체의 역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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