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이니까 참아야 하는 것들

by 센터 posted Jun 2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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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주 대학 비정규직 교수



사람으로서 존중받을 권리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공동체 일원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일 것이다. 그러나 노동시장에서의 신분은 때때로 존중 받는 정도의 차이를 가져오기도 한다. 누군가 비정규직이라면, ()의 비정규직이라는 신분은 그()가 사회에서 존중받지 못하는 하나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는 나는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 교수인 나는 대학이라는 공동체에서 얼마만큼 존중받고 있을까? 비정규직 교수가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대학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존중해줄 것을 바라는 것은 무리일까? 길지 않지만,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나의 비정규직 교수로서의 삶을 돌아보면 나는 대학 구성원들에게 존중보다는 무시와 모욕을 당했던 경험이 더 많다. 가장 자괴감이 들었던 무시와 모욕은 강의실에서 일부 학생들이 나를 대하던 태도다


강의자로서 나는 수강하는 학생들이 어떤 개념과 이론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래서 수업시간에 다루는 개념과 이론에 대한 설명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사례 제시가 필수적이다. 문화에 대해서 강의하던 어느 날, 문화는 고정적인 것이 아니고 그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방식이고, 다른 문화와 교류를 통해 전혀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내용을 강의할 때였다. 이 강의를 준비하면서 나는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 전혀 새로운 그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대한 예시로 한국의 돌침대와 라이스버거를 준비했다. 서양 침대 문화와 한국 온돌 문화가 결합한 돌침대’, 그리고 서양 햄버거가 들어와서 한국의 밥과 만나 라이스버거가 탄생한 것은 문화의 변화, 변동, 변용에 관한 아주 좋은 예시였다. 준비한 사례에 대한 설명을 했을 때 학생들은 제각기 또 다른 사례들을 이야기하면서 즐겁게 수업에 참여했다


강의가 끝나갈 때 즈음 한 학생이 손을 들고 말했다. “동물 사체를 수업 예시로 언급하지 말아주세요. 동물 사체가 수업에서 언급되는 것이 매우 불편합니다.” 이 말을 한 학생은 본인이 채식주의자임을 수업시간에 종종 언급했다. 수업시간에 동물 사체를 언급했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잘 이해되지 않아 다시 물었더니, 그 학생은 햄버거와 라이스버거를 문화 변용의 예로 설명한 것이 동물 사체를 언급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수업시간도 다 끝났고, 나는 바로 다음 시간에 다른 건물에서 수업이 있었기 때문에 일단 알았다고 하고 강의실을 나왔다. “불편하니까 언급하지 마라.”라는 말이 어떻게 나올까? 내가 비정규직이라서 그런 것은 아닐까? 수업시간에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들었던 사례를 자신이 채식주의자이기 때문에 고기가 언급되는 것이 불편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를 일주일 내내 고민했다


다음 주 수업시간에 나는 이 문제를 학생들과 토론했다. 수업에서 말한 사례는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고, 수업 내용 중에 사람들의 삶의 방식 중 하나인 식습관 또는 선호로서의 육식을 옹호하거나 채식을 비하하지 않았는데 채식주의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학생이 동물 사체가 언급된 것이 불편하다면서 앞으로는 이런 내용을 수업시간에 말하지 말라고 발언한 것의 의미에 대한 토론이었다. ‘내가 싫어한다고, 내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타인의 발언을 막는 것이 정당한가?’에서부터, ‘수업이라는 공적인 공간과 시간에서 개인 취향과 정체성을 어디까지 존중해야 하는가?’를 둘러싸고 토론이 벌어졌다. 토론을 정리하면서 강의자로서 나는 지난주 수업시간에 채식을 혐오하거나 육식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불편하다고 해서 타인 발언을 막는 행위는 바람직한 민주 시민의 자세가 아니라고 말했다. 또한 수업에서 강의자는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사례를 선택할 권리가 있고, 그 사례가 언급된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라고 말했다. 이에 덧붙여 나는 불편하니 언급하지 말라라는 말은 자신과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는 비민주주의적인 태도이며, 성소수자가 축제를 개최하는 것이 보기 싫으니 축제를 벌이지 말고 밖으로 나오지 말 것을 요구하면서 퀴어축제 진행을 방해하는 성소수자 혐오세력과 다를 것이 없는 태도라고 말했다.


이날 수업이 끝난 이후, 나는 그 학생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이메일에서 그 학생은 자신의 태도를 퀴어축제를 방해하는 성소수자 혐오세력과 유사한 태도라고 규정한 것이 몹시 불쾌하다며 나에게 수업시간에 학생들 앞에서 공개 사과를 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동물 사체를 수업시간에 예시로 들지 않겠다고 학생들에게 공개 선언을 하라고도 요구했다. 나는 너무나도 당황스러워서 키보드 위에 올려놓은 손가락을 덜덜 떨어가면서 내가 공개사과할 이유가 없으며, 수업에서 어떤 사례를 제시하든 그것은 강의자인 내가 결정할 문제라고 간단히 답장을 보냈다. 이날 그 학생은 계속해서 나에게 공개사과하라는 이메일을 보냈다. 그 학생의 이메일에는 가르치는 사람에 대한 존중 따위는 전혀 있지 않았고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시간강사 따위에 대한 경멸과 모욕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자신이 불편하다고 해서 선생에게 공개 사과를 요구하고 수업 내용을 바꾸라고 요구하는 학생이라니. 나는 너무나도 분해서 선배에게 전화를 해서 자초지종을 말해주면서 엉엉 울었다. 내가 음주 강의를 했나, 성희롱을 했나, 욕설을 했나, 혐오발언을 했나···. 역시 비정규직 교수인 선배는 나에게 강 선생, 우리가 별 수 있나. 다음 학기에도 강의해야 하잖아.”라면서 이런 말밖에 못해줘서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눈물과 콧물이 뒤범벅된 채로 선배와 통화하면서 머릿속 내 생각은 생활인으로서의 생존과 지식인으로서의 자존심사이를 계속 오고 갔다. 그래! 맞다. 선배 말이 맞다. 나는 다음 학기에도 강의를 해야 한다. 강의를 못하면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 일단 먹고 사는 것 앞에 지식인의 자존심과 학자의 양심이 무슨 소용인가?! 하지만 이건 아니다. 내가 이런 모욕을 받으면서까지 이렇게 살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룻밤을 눈이 퉁퉁 부은 채 뜬 눈으로 지새운 나는 그 학생에게 장문의 답장을 보냈다. 쓰고 싶은 말은 더 많았지만, 비록 비정규직이지만 나는 학자로서 교육자로서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다는 의중을 담아 메일을 보냈다그 중 일부를 여기 옮겨본다.


 OOO 학생의 "불편하니까 언급하지 말아 달라"라는 언급그리고 오늘 처음 보내온 메일에서 OOO 학생이 자신이 옳음을 강조하며 저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것을 통해 저는 다시 한 번 제가 가진 대학 사회에서의 위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잘 아시겠지만저는 비정규직 시간강사입니다대학 사회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존재입니다매학기 학생들의 강의 평가 결과로 재계약 여부가 결정되는 16주짜리 단기계약 노동자입니다흔히들 말하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저는 '고객'인 학생들의 요구에 저의 양심과 자존심을 내려놓아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OOO 학생이 "불편하니까 언급하지 말아 달라"라고 할 때비정규직 시간강사 주제에 고객님 말씀하시는데… 그냥 알았다고 넘기면 될 일이었습니다그러나 제가 가진 학자의 양심교육자의 양심 상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일이라 생각해서 수업 시간에 공개적으로 토론한 것입니다그래서 '맥락'에 대한 강조를 했고, "불편하니까 언급하지 말아 달라"라는 발언이 가진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그래서 우리 사회 구성원은 모두 동등한 구성원인데, "불편하니까 언급하지 말라"라는 논리가 대표적으로 발견되는 성소수자 혐오세력 이야기를 했습니다그랬더니 OOO 학생이 자신의 발언이 성소수자 혐오세력과 같은 논리라고 설명한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하라는 요구를 하니 제 입장에서는 더욱 더 모욕적입니다. OOO 학생의 발언을 통해 저는 강의자로서 강의 내용을 결정해야 하는 '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를 받았으며,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비정규직이라는 제 위치 때문에 교육자인 제 존재를 부정당하고 억압당했다고 생각했습니다만약 제가 정규직 교수였다면, OOO 학생이 "불편하니까 언급하지 말아 달라", "공개적으로 사과하라이렇게 했을까 라는 생각이 계속 들고 있습니다


-OOO 학생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메일


이 일이 있고 난 후 그 학생이 수업을 철회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학기가 끝날 때까지 나가지 않고 계속 수업을 들었다. 그 학생을 수업시간에 마주치는 것은 내 자존심과 양심에 너무나도 불편한 일이었다. 그래서 불편하니까 강의실에서 나가 달라.”고 하고 싶었으나 실제로 그렇게 말하지는 못했다. 그랬다면 학생 내쫓는 비정규직 시간강사라고 에타1가 발칵 뒤집혔을 것이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으니까. 그게 비정규직이니까. 나는 다행히도 해당 학기에 학교 공식 강의 평가에서 괜찮은 점수를 받아 다음 학기에도 강의를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내 자존심과 양심의 일부를 버리고, 나는 또다시 16주 짜리 단기계약을 따낼 수 있었다. 그래,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지! 씁쓸한 웃음밖에는···.


나중에 이 학교 정규직 교수를 만나 내가 경험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 이야기를 다 들은 정규직 교수는 강 선생이 마음고생 많았겠네요. 정규직 교수들한테는 절대 그렇게 못하면서 유독 비정규직 교수들에게 그렇게 하는 학생들이 있네요. 내가 대신 사과합니다.”라고 나를 위로했다. 비정규직이라서 참아야만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비정규직 교수는 대학 강단에 서면서 간신히 먹고살기 위해서라면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자존심과 양심조차 내려놓아야만 하는 걸까? 언제쯤 나는 내 자존심과 양심을 지키면서 연구와 교육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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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학생들이 많이 이용하는 익명 커뮤니티 사이트 에브리타임의 줄임말. ‘에타에서는 강의 정보 교환, 강의 한줄평 등이 이루어진다. ‘에타에서 특정 수업 및 특정 교수에 대한 낮은 평가는 그 다음 학기 수강 신청 학생 수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이 수강 신청할 때 이전 학기 해당 수업 및 교수 수업을 수강한 학생들이 남긴 에타 평가를 선택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에타가 안 좋은 평가로 채워지게 되면 수강 신청 인원 저조로 폐강될 우려가 있다. 정규직 교수는 수업이 폐강되더라도 일자리를 잃지 않지만, 비정규직 교수에게 수업 폐강은 곧 일자리 상실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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