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대화] 한국 사회와 사회적 대화

by 센터 posted Jun 2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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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우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전문위원 

 

 

사회적 대화는 노·사 중심 대화

 

‘사회적 대화social dialogue’란 노·사 혹은 노·사·정 간 대화다. 유럽에서 노·사를 ‘사회적 동반자social partner’라고 일컫듯이, 사회적 대화에서 ‘사회적’이란 관형사는 노사(정)를 의미한다. 이는 서구에서 사회권과 사회보장제도 형성과 운영에 있어 조직된 노·사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사회적 대화 목적은 주체들 간에 이익 교환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부정책자문’으로 일컬어지는 정부 정책 수립 시 노·사 의견 개진 및 조율 행위 또한 중요하다. 

 

이와 유사하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해온 시민사회단체가 정치 과정에 참여해 의견을 개진하는 시민적 대화civil dialogue가 존재한다. 복잡성이 더해가는 현대 사회에서 환경, 교통, 질병, 도시, 교육, 빈곤, 지역, 에너지, 금융, 정보화, 문화 등의 의제를 정부나 의회에서 논의하기 전에 조직된 시민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과정이다.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대화가 요구되는 것은 핵심 의제와 주체 측면에서 노동이 배제된 민주주의 체제와 연결되어 있다.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 체제는 시기적으로 현 체계를 결정했던 1987년 개헌 정국 이후 노동자들의 대투쟁이 분출됨에 따라 새로운 노동 체제로 이어지지 못하고 민주화의 수혜로부터 멀어지면서 ‘노동 없는 민주주의’라 평가받는다. 그리하여 민주화 이후에도 한동안 정부는 노동의 요구에 대해 비생산적인 것을 넘어 불온시하는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촛불혁명 이후 문재인 정부가 던진 노동존중사회 화두는 우리의 민주주의에 대한 진단에 따른 것이다.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 개편 과정에서 새로운 참여주체로 경제 영역을 넘어 사회 영역으로까지 확장되지 않고, 중견기업, 중소기업, 소상공인이나 청년 노동자, 여성 노동자, 비정규 노동자로 노·사에 한정되었던 것은 노동이 배제된 한국 민주주의에서 노·사를 중심으로 한 사회적 대화 원리가 필요하다는 생각과 결부되어 있다.  

 

1.본위원회.jpg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제1차 본위원회(@경사노위)

 

‘노동 없는 민주주의’와 사회적 대화 

 

노동 배제 민주주의 극복, 즉 노동 참여 민주주의 체제는 제도적 측면에서 보면 입법 과정이나 정부 운영 과정에서 정당들의 노동성 강화와 사회적 대화를 통한 노동의 목소리 포용이라는 두 축으로 실현될 것이다. 물론 두 가지 방안의 발달 근저에는 노조 조직력과 영향력의 지속적인 확대를 전제한다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한편, 오토 키르히하이머O. Kirchheimer가 언급한 대로 현대 정당이 특정 계급 대변 정당이 아니라 공익추구 포괄정당catch-all-party으로 수정하는 경향이나 좌우이념정당이 중도실리정당으로 수렴하는 현상이 보여주듯이 정당을 통한 노동성 강화는 쉽지 않다. 실제 진보정당 운동은 민주화 이후 2012년 19대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이 13석을 확보한 이래 여전히 전체 의석의 5퍼센트 선을 넘지 못하고 있다. 향후 선거 제도 개편과 더불어 지속적인 고민이 필요하겠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사회적 대화라는 경로가 주목받는다. 노조가 적어도 형식상으로는 1/3이상의 지위를 점할 수 있으며 정치 과정에 직접 참여해 의견을 개진하고 조정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의미를 지닌다. 그리하여 노동의 요구가 보수적인 국회에서 왜곡·수정되는 것을 방지하는 유력한 방안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사회적 대화는 노조 측에서 보면 높은 수준의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항상 사용자 단체 동의를 요구한다는 결정적인 어려움을 지닌다. 사회적 대화가 시민적 대화와 다른 점은 노동의제에 대해 상호 대척점에 서있는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가 서로 의견을 조율하고, 이해당사자 성격으로 인해 노동 관련 의제에 대한 노·사 합의에 다른 모든 관련자들이 존중하게 된다. 사용자 단체 설득을 위해선 노조 요구를 획득하는 대신 사용자 단체가 요구하는 것을 일정 정도 양보하는 일종의 교환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대화를 효과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선 단체 내 이견을 조율할 수 있는 정도의 중앙 집중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교환은 매우 어려우며 높은 수준의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특히 사회적 대화가 지난 기간 동안 기업 내에서만 진행되었을 뿐 산업이나 지역 차원에서는 진행되지 않아 단체 내부 혹은 진영 내 조율성이 매우 떨어진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다른 정부기관 자문위원회와 달리 경사노위 참가가 노조에 민감한 이유는 정책 자문뿐만 아니라 바로 이와 같이 교환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측면에 있다. 

 

오늘날 국가 수준의 사회적 대화는 전 산업에 기반을 둔 노·사 총연합 단체와 집권당이 주도하는 정부가 결합해 구성한다. 과거엔 임금이나 노동 조건처럼 합의의 집행 책임이 노·사 당사자 의제도 존재했지만, 오늘날엔 노동법이나 사회보장제도처럼 주로 의회에서 입법을 통해 보편화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정치·제도적 측면에서 우리나라 사회적 대화가 서구 유럽과 상이한 점은 집권당을 매개로 한 정부와 의회와의 관계이다. 의회 다수가 정부를 구성하는 의회제 국가에선 정부 합의가 의회 통과를 다수당을 매개로 보증하게 된다. 하지만 한국의 대통령제에선 정부와 국회가 구분되어 있어 정부 합의가 국회 통과를 보증하지 못한다. 정부와 국회 사이에서 정부의 활동 공간, 자율성 여지가 확장되며 국회로 이전되면서 ‘합의 이행 책임자’가 희미해진다. 오히려 보수성 짙은 국회 반대와 왜곡을 극복하고 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압력 수단으로 사회적 대화가 활용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대화가 안정되기 위해선 노·사의 신뢰 높은 참여도 필요하지만 이와 동시에 노·사 합의 이행에 대한 시민적 공감대civil consensus가 형성되어 이행 경로가 일상화되어야 한다. 

 

사회적 약자 포용은 한국 사회적 대화 실험의 리트머스

 

2010년 전후를 관통했던 유럽 경제재정위기 상황에서 국가 수준 사회적 대화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를 두고 바카로L. Baccaro와 컬페퍼P. Culpepper 교수는 공통적으로 노조의 정통성과 대표성 하락을 주요한 이유 중 하나로 꼽았다. 지난 20년간 유럽 대부분 나라에선 노동계약제도 유연화를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가 확대된 반면 노조 조직률,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률은 지속적으로 떨어져 양극화라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정규직 중심 노조가 주도하는 사회적 대화가 유효하지 않음을 지적했다. 그리하여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국가에서 사회적 대화를 정비하면서 노조의 대표성 및 대표 방식에 대한 성찰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대화 목적은 양극화 해소와 사회 통합에 있다. 이를 위해 노·사 단체 중심성을 높이고, 노·사 단체 대표성을 보완하기 위해 취약계층을 대변하는 인사들로 본위원회 위원 1/3을 배정했다. 조직 노·사가 일반적으로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에 조직되지 못한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려고 했다. 이미 2013년 사회적 취약계층을 협의에 포함하자고 노·사·정이 합의했지만, 5년이 지난 2018년 경사노위 설치 과정에서 반영됐다. 경사노위 원년에는 노·사 주체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경제 노동 부문 사회적 과제를 논의할 수 있는 틀을 마련했다는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양극화 개선을 위한 논의 구조를 마련했다는데 성과를 갖는다. 

 

사회적 대화는 양극화 격차를 축소하고 개혁하기 위한 도구임과 동시에 노동 포용 민주주의 체제를 일궈내기 위한 목적을 지니고 있다. 이를 위해선 지금까지 주목받지 못했던 노동계 의견을 귀담아 들을 수 있는 체제를 형성해냄과 동시에 노동계는 자신들이 포괄하지 못했던 취약계층 목소리를 넓게 반영해야 한다. 본위원회 위원으로 취약계층이 위촉되었을 뿐, 이들의 목소리를 실질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운영이나 장치는 마련 중에 있다. 무엇보다 자신들 스스로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취약계층의 결사가 지원돼야 한다. 

 

이해관계자들이 양립해 맞서고 있는 노동 문제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전진으로 해결되는 경우가 드물다. 절실한 주체들의 요구에 따른 개혁이 추진되고, 반대쪽에 서있는 사람들에 대한 보합이 뒤따르는 형국을 지닌다. 이는 70년대 중반 이후 서구 다른 나라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최저임금 인상과 산입범위 조정, 노동시간 단축과 탄력근로제 조정에서 보듯이 보수적 정치 구조에서 나타나는 불가피한 모습이 존재한다. 다만, 이와 같은 개혁이 과거와 같이 노·사 간 등가교환을 통한 제자리걸음이 아니라 사회적 어려움을 지닌 취약한 노·사가 혜택을 받아 사회적 격차가 축소되는 방향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이것이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대화가 갖는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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