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대화] 노동이 주도하는 사회적 대화

by 센터 posted Jun 2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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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문재인 정부와 사회적 대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2년이 지났다. 남북 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에 큰 걸음을 내딛는 성과와는 달리 경제와 노동, 일자리 등 민생 분야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평가는 부정적이다. 노동존중사회와 일자리 정부를 표방했지만 고용노동 분야의 긍정 평가는 25퍼센트를 넘지 못하고 있다. 노동 정책에 대한 낮은 평가는 보수와 진보 양쪽으로부터 비판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 분야 대선 공약으로 한국형 사회적 대화기구 구축을 통해 노동존중사회 기본 계획을 수립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정부가 추진했던 사회적 대화는 작동 불능 상태에 빠져 있다. 민주노총의 요구를 수용해 노사정위원회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로 개편하였지만, 민주노총 참여는 대의원대회에서 거부되었고,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 문제를 둘러싸고 비정규, 여성, 청년 대표 등 3인의 불참으로 본위원회는 수개월째 공전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사회적 대화 무용론이 좌우에서 제기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은 “국회 고유권한을 침해하고 국가 예산만 축내는 옥상옥의 경사노위는 해체하고, 사회적 합의 대표성을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갖는 것이 맞다.”고 당당하게 주장한다. 노동계 일부 정파들도 경사노위 불참을 넘어 해체를 주장하고 있다. 사회 양극화 해소와 사회 통합을 목표로 출범한 경사노위는 정말 필요한가, 사회적 대화 불참이 민주노총의 방침이라면 그 이후 노동계의 대안은 무엇인가, 사회적 대화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등이 이 글의 문제의식이다.   


2.토론회.jpg

2019년 3월 28일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열린 ‘사회적 대화의 길을 묻다’ 긴급 토론회


사회적 대화를 둘러싼 노사정의 역할   


사회적 대화 정상화를 위해서는 지난 2년 동안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고 있는 주체들의 판단과 입장이 어떠했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대화의 핵심 주체는 사용자, 정부, 노동조합이다.  


먼저 사용자 단체는 사회적 대화에 소극적이었다. 보수정부 당시 노사정위를 활용해 노동개혁(?)을 밀어 붙었던 사용자 단체들은 문재인 정부 초기 ‘꿀 먹은 벙어리’ 신세였다. 전경련은 적폐세력으로 전락하였고, 경총과 대한상의가 사용자 단체 대표 주자로 나섰다. 경총은 변화된 상황에 조응하는 정책 대안은 없이, 시간끌기로 일관했고 최근에는 사보타지 수준이다. 심지어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고수한다. 경총의 손경식 회장은 “산별노조 체제인 유럽과 달리 한국은 기업별 노조 중심 체제라는 노사 관계 특수성이 존재한다. 한국의 대립적·투쟁적 노사관계와 제도·관행 개선 없이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게 된다면 기업들의 노사 관계 부담이 더욱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한다. 국제 사회의 보편적인 노동 인권도 보장하지 않겠다는 노골적인 반대 입장이다.


정부는 사회적 대화를 통한 양극화 해소의 절박성을 호소한다. 또한 법제도 개선을 위해 여소야대의 국회 벽을 넘을 수 있는 사회적 합의가 꼭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과거 사회적 대화를 임했던 단기적 시각과 관료적 태도를 일신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여 년 동안 노사정위원회가 사회적 대화기구로 인정받지 못한 원인은 정부의 과도한 개입과 중립적 역할 방기放棄에서 찾을 수 있다. 사회적 대화기구를 협의 및 토론의 장이 아닌 정부 정책 추진을 위한 들러리로 삼았다. 과거 정부가 밀어 붙인 핵심 정책들은 정리해고, 비정규직 확대 등 노동시장 유연성을 확대하는 기업 편향적인 내용들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사회적 대화기구 개편 요구를 수렴해 노사정위를 경사노위로 형식과 내용 모두 바꾸었다. 성급한 합의보다는 ‘협의’에 방점을 찍고, 단기 성과보다 신뢰에 기반한 장기 성과를 위한 디딤돌로 만들겠다는 약속이었다. 하지만 탄력근로제 문제에서 보듯 정부가 노사 관계 미래의 의제 개발과 논의, 그리고 갈등 조정과 통합을 위한 촉진자facilitator가 아닌 선수로 뛰면서 문제가 악화되었다.


마지막으로 노동계 입장이다. 과거 사회적 대화기구에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아 사회적 대화는 온전히 운영될 수 없었다. 민주노총 김명환 집행부는 변화된 환경에서 사회적 대화가 필요함을 강조했고, 직선제 선거에서 이를 공약으로 제출하고 당선되었다. 하지만 사회적 대화 참여 전략은 대의원들의 동의를 구하지 못해 실현되지 않고 있다. 대의원대회 결정은 존중되어야 하나, 대의원과 현장 조합원들과의 온도 차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더 큰 문제는 정치·사회적 역관계에서 민주노총의 향후 대안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경사노위에 불참하고 있지만 정부 산하 각종 기구에 참여하고 있으며 업종별 교섭을 제도화하기 위한 다양한 실천을 전개하고 있다. 민주노총이 일자리위원회는 참여하지만 경사노위는 불참하는 이유를 일반 노동자들의 시각에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다. 민주노총은 문재인 정부 집권 후반기 노정 및 노사 관계를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가에 대한 전략 판단이 요구된다. 민주노총의 참여를 반기지 않는 사용자 단체, 관료들의 어깃장 등 대내외적 환경은 쉽지 않다. 노동운동은 ‘반대와 저항’에서 ‘형성 전략’으로 나가야 한다. 과거 정부의 노동 정책에 반대하고 저항하는 것이 노동의 기본 임무였다면, 이제 노동의 과제는 산업 정책(제조업 살리기 등)에 개입하고 일자리의 양과 질을 높이고 전체 노동자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구현해나가야 한다. 


노동이 사회적 대화를 주도해야 


한국에서 사회적 대화의 안정적 제도화와 원활한 작동은 정책 결정 및 노사관계 제도 전반의 국가 중심성, 대기업 중심성 등의 특성에 비추어 보았을 때 쉽지 않은 길이다. 이 결과 사회적 대화는 20년 역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발육부전發育不全 상태에 놓여 있다. 노동 입장에서 사회적 대화는 버릴 수 없는 활용 카드이다. 보수독점의 국회, 낮은 노조 조직률, 기업별노사 관계의 제도적 한계를 극복하고 노동 문제 사회 의제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공간이다. 


현재 사회적 대화 기구의 여러 한계에도, 그 어려움을 슬기롭게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도 노동계의 몫이다. 노동이 이것을 팽개쳤을 때 가장 좋아할 것은 사용자이고, 정부의 일부 관료들이다. 사회적 대화는 중앙 차원의 경사노위가 전부가 아니다. 지역·산업·업종 단위 다양한 형태의 소통과 대화도 활성화되어야 한다. 중앙은 안 되더라도 최소한 서울, 경기 등 광역 차원의 새로운 노사정(노정) 협의 틀을 형성해 나가야 한다. 


문재인 정부 후반기 노동 정책 우경화를 막고 국정과제 실현, ILO 비준, 산업정책 참여, 사회안전망 확충 등을 목표로 경사노위 참여에 대한 조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사회적 대화가 절실하게 요청되는 이유는 한국 노동시장의 핵심 문제인 양극화 등 문제가 어떤 특별한 정책이나 한 당사자만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난제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노동존중사회 실현을 위해 민주노총이 추진해 나갈 여러 전략 중 하나로 사회적 대화는 지속되어야 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경사노위 참여 문제가 과잉 정치화되어서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질적인 도약과 실질화를 위해서는 경제와 일터 영역에서 민주적 의사 결정과 이해대변 기제가 발전해야 하며, 경제와 일터 민주주의 심화를 위한 기초 수단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사회적 대화이다. 이는 기업, 산업, 지역노동시장, 국가의 노동사회복지정책 의사 결정과 관련한 영역에서 당사자인 일하는 사람들의 참여 기회의 보편적 증진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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