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대화] 좌담_기로에 선 사회적 대화

by 센터 posted Jun 2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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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2019년 6월 4일(화) 오전 10시
° 어디서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회의실
° 참석    김병철(청년유니온 위원장) 
            김학태(매일노동뉴스 기자)
            나지현(전국여성노조 위원장)
            이남신(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이조은(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선임간사) 
° 사회    이주환 센터 기획편집위원,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 정리    강인수 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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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노위 계층별 노동자위원 참여와 불참 사이

이주환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에 계층별 노동자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세 분 마음고생이 심했던 걸로 알고 있다. 경사노위에 참여하게 된 계기와 어떤 마음가짐이었는지부터 이야기 나눠보겠다.

나지현   노사정위원회와 달리 을들을 대화에 참여시키겠다는 의도를 들었다. 여성, 청년, 비정규직이 대화에 참여해 우리 사회 고질적인 차별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여성노조 활동을 20년 하며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을 조직해왔다.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권리를 높일 수 있다면 조그만 거 하나라도 합의를 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적극적으로 참여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여성 노동자들을 대표할 수 있냐는 주변의 의문도 있었지만, 양대노총이 아니면서 미조직 여성들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선택되고 합의됐다고 본다.

김병철   포용사회가 시대적 화두로 떠오르면서 노동 안에서도 다양한 목소리를 담은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 그래야 시대에 걸맞은 제대로 된 정책과 대안을 모색해나갈 수 있다. 경사노위는 이러한 새로운 실험의 장으로 출발한 것으로 본다. 청년유니온도 청년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기 위해 참여했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준비가 미흡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적 대화라는 수단을 통해 나아가려는 국가 모델은 무엇인지, 각계각층이 얼마나 합의를 해온 상태에서 사회적 대화에 임했나, 부족했던 것들이 확인되고 있는 과정인 것 같다. 

이남신   비정규센터도 고민이 많았다. 센터 내부 찬반 논란이 있었지만 양대 노총이 대변하지 못하는 90퍼센트 미조직 노동자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정치적 기회라고 판단해 참여했다. 공공부문은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정규직화를 선도하면서 조직화 진전이 있었지만, 민간부문은 꽉 막혀있어 노조 조직률을 올리기 위해 사회적 대화를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막상 경사노위에 참여하고 보니 노사정 모두 준비가 태부족이었고, 올바르더라도 소박한 문제의식으로는 사회적 대화가 어렵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조은   경사노위가 다양한 사회 주체들이 사회 통합, 양극화 해소를 목표로 협의해나가는 과정은 민주주의 확장 측면에서 의미있는 진전이라고 생각한다.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대화를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대화에서 생기는 갈등을 해소해가는 경험이 쌓이면서 사회적 대화도 성숙해질 거라 믿는다. 중대한 갈등으로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한 계층별 노동자위원들이 안타까웠지만, 사회적 대화의 밑거름이 쌓이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이주환   계층별 대표 참여가 실험이라면 실험이지만, 준비 부족이나 여러 요인으로 좌초한 거 같다. 경사노위에 참여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많을 텐데, 먼저 김학태 기자님은 경사노위 취재를 하면서 어땠나.

김학태   경사노위 취재하면서 두 가지 기억이 선명하다. 하나는 1월에 민주노총이 유튜브로 대의원대회 생중계한 것을 봤는데 답답했다. 경사노위 참여 찬성 논리나 반대하는 논리가 2004년 노사정위원회 때랑 똑같았다. 경사노위 참여에 반대하는 대의원이 계층별 대표에 대해 이야기하며 “당신이 통제할 수 있냐”고 위원장에게 물었다. 충격이었다. 반대 입장은 경사노위에 들어가면 예전처럼 파견법 받아주고 비정규직 다 죽는다는 논리를 대는데, 우리나라 노조 현실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나하는 생각에 화가 많이 났다. 또 하나는 2월 19일 탄력근로제 합의 발표 전날, 기자들이 몰려들었는데 기다려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간사회의를 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리고, 김주영 위원장이 커피를 쏟아 못가고 있는데 박태주 상임위원이 잡았다는 에피소드들만 회자되고 있었다. 명색이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인데 무슨 회의를 하는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2시 반 지나서야 합의가 안 됐다, 내일 다시 모일 거다, 라는 말이 들렸다. 어처구니없었다. 다음날 경사노위 고위 관계자를 찾아가, 대통령 직속기구인데 회의를 왜 이렇게 진행하냐, 어느 방에서 회의하는 줄도 모르겠고 설명해주는 사람도 하나 없다며 따졌다. 그리고 탄력근로제를 왜 이렇게 밀어붙이냐,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는 문제를 중앙 사회적 기구에서 할 건 아니지 않냐고도 물었다. 그분 말로는 보기 안 좋은 건 알지만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탄력근로제를 합의해주면 ILO핵심협약을 풀 수 있지 않겠냐며 얘기했다. 그때 그분한테 이렇게 말했다. “참 순진하시다. 경총이 바보인 줄 아느냐.” 그날 나눈 이야기를 보면 사회적 대화 기구가 왜 이렇게 됐는지 보여주는 것 같다.

이남신   3월 7일 본위원회에 처음 불참했다. 불참을 결심하기까지 너무 힘들었다. 비정규 단위 동지들이 경사노위 점거농성에 들어갔을 때 문성현 위원장 만나고 나오면서 거기 있는 동지들을 많이 만났다. 비정규센터는 어떡할 건지, 여성, 청년은 본위원회 들어갈 건지 계속 물어왔다. 유언비어도 많았고, 동지들하고 논쟁하고, 하소연도 하고…. 자정 넘어서까지 여러 얘기를 귀담아 들었다. 그런 와중에 김용균 어머니가 단식농성장에 들어왔다. 숨이 턱 막혔다. 이후 그날 내내 김용균 어머니 얼굴이 떠올라 맘이 착잡했다. 심정적으로 그때 불참으로 많이 기울어졌다. 센터 내에서도 센터 존폐를 걸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을 정도로 힘겨웠지만, 그것보다 어머니 얼굴이 잊히지 않았다. 미조직 노동 문제는 탄력근로제가 핵심인데 이성적인 논거로만 판단할 수 없었다. 그날 한나절 점거농성했던 동지들, 어머니를 뵀던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세 사람이 도원결의를 하며 불참을 결정했던 6일에서 7일로 넘어가는 자정어스름, 결정했다는 거 자체가 기분이 좋았다. 그 후로 감정노동이 극심했지만···. 

김병철   두 번째 본위원회 불참 결정하고 기자회견할 때였다. 당일 새벽에 불참 결정하고 기자회견을 준비했다. 급하게 준비했는데도 기자들이 많이 왔고, 그동안 억울하고 분했던 마음이 쏟아져 무슨 말을 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여러 생각이 밀려왔다. 우리 세 명이 경사노위 내에서 어떤 위치에 있구나 하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시작한 시점이었던 것 같다. 첫 번째 불참하고 언론에서 “꼬리가 몸통을 흔들었다, 일부에 의해 전체가 훼손됐다”는 말들이 떠돌면서 상처도 컸다. 경사노위는 우리랑 소통 없이 3일 만에 본회의를 잡았고, 경사노위를 둘러싼 갈등 국면이 탄력근로제로 촉발해서 계층별 노동자위원이 참여할 거냐 말 거냐 식 갈등으로 확장됐다. 처음엔 탄력근로제가 문제였다면 이때는 사회적 대화가 올바르게 작동되기 위해서는 주체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판단했다. 우리가 사회적 대화 반대론자도 아니고 어떻게든 참여해서 잘해보고 싶은 마음도 컸는데 억울함이 많았다. 

사회적 대화, 무엇이 문제인가

이주환   사회적 대화기구는 동등한 위치에 선 주체들이 토의하고 숙의하는 공론의 공간이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가장 크게 영향을 준 요인은 무엇인가.

이조은   정부 책임이 크다고 본다. 시작부터 말도 안 되는 의제를 올렸다. 누가 봐도 명백하게 노동계에서 협의, 합의해줄 수 없는 의제인 탄력근로제, 정부가 당연히 밀어붙여 비준해야 할 ILO기본협약처럼. ILO가 제시하는 사회적 대화의 기본조건 중 하나는 노동기본권 존중이다. 노동기본권이 전제되지 않은 의제를 밀어붙이는 건 정부가 사회적 대화에 대한 이해가 낮았다는 걸 명백히 보여준 사례다. 중요한 갈등이 생겼을 때 조율해야 될 입장에 있는 문성현 위원장부터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일부에 의해 전체가 훼손된다’거나 ‘보조축’이니 하는 이야기를 해서 오히려 관계를 악화시켰다. 그리고 민주노총 불참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민주노총은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해왔고, 조합원 중 30퍼센트 가까이 비정규직 노동자이기도 한데 경사노위의 중요성을 간과한 것 같다. 비정규직, 청년, 여성 노동자를 대변하는 계층별 노동자위원들이 경사노위 안에서 발언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더 큰 우산이 돼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노총은 이미 11개 분야 60여 개 정부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상징성이 가장 큰 경사노위에만 빠졌다. 내부에 여러 어려움이 있겠지만 경사노위에 불참한 것은 너무 아쉽다. 또한 경사노위에서 국제노동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무리한 요구를 해온 경총이 큰 문제다. 경총은 회사법인 조직률이 0.79퍼센트에 불과해서 경영계 대표성도 부족하고 재벌 대기업의 입장만 대변해왔지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대변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심지어 경총은 삼성 노조 파괴에 개입하는 등 부당노동행위를 해왔다.

나지현   사회적 대화가 왜 잘되지 않는지 얘기하다가 ‘우리를 모양 좋게 만들어주는 사람들 정도로 여겼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본위원회 불참하고 나서야 존재감이 드러났다. 위원장을 만났는데 “본위원회 위원이니까 앞으로는 자기가 직접 챙기겠다”고 말했다. 그전에는 그런 생각을 안 했다는 거다. 비공식 대화에 대한 고민도 있다. 탄력근로제가 합의된 사실을 우리도 신문을 통해 알게 됐다. 의제개발조정위원회에 우연히 방문했다는 김주영 위원장과 우연히 연락한 대표들이 모여서 어딘가에서 결정하고, 이걸 의제개발조정위원회에서 추인하고 노사정 합의라며 올라온 상태인데 우리는 그 과정에서 어떤 정보도 듣지 못했고 나중에야 통보 받았다. 그때 상임위원이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얘기할 수 없고 평소에 비공식적으로 자주 봐야 하는데….” 라고 말했다. 나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얘기해야지 자꾸 뒤에서 얘기하려고 하냐. 그게 문제 아니냐.”라고 문제제기했다.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보면 비공식 대화도 메이저하고만 계속 해온 걸 자기들끼리는 대화를 많이 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공식에서도, 비공식에서도 모두 배제돼 있었다. 경사노위법도 그랬다. 계층별 대표가 활동할 수 있는 공간 자체가 거의 없다. 2월 27일에 탄력근로제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다. 경사노위 측 태도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식이었다. 누가 발언하느냐에 따라 답이 다르고, 문제제기하면 위압적인 표현으로 말을 끊는다. 중재자 역할을 하는 사람도 없었다. 의견 들으며 대화하고, 잘 안 되면 조율하고 중재도 하고, 화가 나면 가라앉히기도 하고, 이런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없고 그분들이 오히려 더 화를 낸다. 그동안 노사정이 교섭 경험은 있어서 주고받는 것만 연습돼있는 것 같다. 그런데 사회적 대화는 주고받는 것이 아니지 않나. 합의하든 협의하든 왜 그런지 이해하는 과정이 전제되어야 다음 대안이 나온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런 과정 없이 그냥 주고받기 식이고, 뭔가 합의를 하면 의심을 한다. 조직을 의심하고, 합의에 대해 의심하고, 개인을 의심한다.

김병철   나이가 다르고 성별이 다르고 각자 처해진 위치가 다르다고 일방적으로 대하며 관계 맺고 대화하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는 것 같다. 그런 풍토 속에서 사회적 대화를 하다 보니 사회적 관계를 맺기 굉장히 어렵고, 폭력적이고 일방적이다. 정책을 만들고 사회를 주도하는 책임 있는 주체들 간에 대화가 안 되는 것도 이런 한국 사회 문제를 보여주는 단면이 아닌가 싶다. 끊임없이 차별 받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고뇌를 충분히 알고 헤아리면서 동등한 주체로 대하는 모습이 없으면 어려운 것 같다. 거시적 담론뿐만 아니라 대화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우고 느꼈다. 

이남신   경사노위에 들어가기 전과 후가 많이 다르다. 투쟁과 교섭을 같이 하는 게 바람직하고, 교섭을 해야 투쟁도 더 활성화되지 않나. 당연히 들어가야 한다는 당위적인 생각이 강했다. 그런데 막상 노사정 주체들의 실망스런 모습을 보면서 사회적 대화 요건이 뭐지 하는 고민이 깊어졌다. 다들 사회적 대화에 대해 왜곡된 시각을 갖고 있었다. 너무 과도하게 과잉돼 있다 보니 모 아니면 도로 생각한다. 사회적 대화를 하면 다 해결되거나, 아니면 다 어그러지거나. 세상에 이런 일은 없다. 문제는 사회적 대화를 주도하는 주체들이 기득권자라는 거다. 양대 노총, 경총 보면서 많이 느낀다. 독단과 패권, 몽니로 일관해 왔다. 경사노위를 어그러트린 첫 번째 요인은 대통령과 정부가 경사노위를 하위부속기구, 고충처리기구로 여긴 것이다. 민주노총 불참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한국노총의 독단적 행태도 문제를 꼬이게 만들었다. 지금은 경총이 때를 만났다며 패권을 행사하고 있다. 사회적 대화가 의미 있으려면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대표들이 주도하거나 최소한 엔분의 일의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지금 구도는 힘 있는 기득권 세력이 주도하면서 사회적 대화기구라고 포장한다. 사회적 대화도 켜켜이 쌓인 경험, 신뢰 속에서 가능한 거지 문재인 정부가 노동존중사회를 선언했다고, 새로운 경사노위를 출범시켰다고 되는 게 아니다. 탄력근로제를 다루는 순간 경사노위는 헤어나기 어려운 늪에 빠진 꼴이 됐는데 냉철하게 잘 평가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 대화가 필요 없다거나, 경사노위를 해체해야 되는 건 전혀 아니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학태   2015년 9.15 노사정 합의했을 때 김대환 노사정위원장이 이런 말을 했다.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대화는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라고. 지금 보면 그분도 돼지 목인데 말자체로 보면 틀린 말이 아니더라. 지금 상황을 보면 노동자에게 조금 유리한 게 나오면 무조건 빠지는 대표성 떨어지는 사용자 단체가 있는 거고, 정부와 여당은 자기들 정치 관철을 위한 수단으로, 노동계 한 축은 사회적 대화에 들어가면 노동자 계급에 대한 배신으로 보고 있다. 계층별 대표에 대한 배려가 필요했는데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처리되고, 탄력근로제 이야기 나오면서 민주노총 사회적 대화 반대파 수만 키운 꼴이 됐다. 정부도 사회적 대화에 진정한 관심이 없었다고 보인다. 총선만 생각해서 그랬을 수도 있고. 

나지현   정부 관료들은 노사정위원회 등 사회적 대화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경사노위에 민주노총 들어오라고 하면서 탄력근로제를 통과시키면 어떻게 들어가나. 겉으로만 계속 들어오라 하고 민주노총을 비난하기만 하고. 그러면서 사회적 대화 파행 원인을 계층별 노동자위원 셋한테 미루고 있다. 그러곤 보조축이 흔들지 못하게 하겠다, 어디서 합의를 해오든 합의로 봐야 한다는 식이다. 그러려면 애초 대표자들끼리 악수하고 합의하면 되는 거 아닌가. 

이남신   사회적 대화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사회적 대화가 딜은 아니다. 사회 구성원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최대한 합의 수준에 버금가는 정도의 민주주의 절차를 거쳐 성과 있는 결과물을 내는 게 사회적 대화라고 생각한다. 굉장히 민감한 노동의제를 단기성과에 얽매여 사회적 대화로 포장해 합의를 졸속적으로 서두른 건 잘못됐다. 의제를 발굴하고, 숙의 민주주의 절차와 과정도 밟고, 각 주체들의 합의, 협의 수준도 높게 형성해가고, 서로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과정도 병행해야 한다. 특히 진영 논리가 강한 대립적 구도가 고착화된 우리 사회에서 심혈을 기울여도 어려운데 정치 일정에 예속돼 처리하는 방식은 노사정위원회 때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이조은   노사정위원회에서 경사노위로 개편되면서 목적이 사회 양극화 해소와 사회 통합 도모로 바뀌고, 노동의제를 기본으로 경제사회 영역으로 의제가 확장되는 변화가 있었다. 그런데 사회적 대화 근저에 있는 대화의 원칙이나 문화, 기조 자체는 바뀐 게 없고 껍데기만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쉬운 건 문성현 위원장이 조정자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가 성과내기에 급급해 무리한 정책을 통과시키려고 드라이브를 걸면, 위원장이 나서서 브레이크를 걸고 경사노위 구성원들이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

나지현   그렇다. 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없다. 장을 만들면 거대 노사가 주도하거나 정부가 개입할 수 있게 돼있다. 요즘 구청에도 갈등조정관이 있는데 국가에는 없다. 경사노위 자체 권한은 별로 없더라. 정치적 역할하든 중재 역할하든 내부에 그런 팀이 있고 전권을 줘야 해결된다. 

이남신   경사노위가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이긴 하지만 문성현 위원장이나 박태주 상임위원은 사회적 대화 기구 수장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잃으면 안 된다. 사회적 대화를 어그러뜨린 첫 번째 주범은 대통령과 정부지만, 노동계가 먼저 나서서 사회적 대화를 살려야 한다. 절박한 당사자가 나설 수밖에 없다. 우선 최저임금위원회 수준의 양대 노총 공조, 계층별 위원회 대표를 포함한 노동계 공조가 이루어지면 좋겠다. 노동계 내에서 단일한 입장을 정리하고, 목소리를 내서 힘을 모으지 못하는데 무슨 노사교섭을 하겠는가. 노동계 스스로가 제대로 서지 못하면 사회적 대화는 불가능하다. 

경사노위 변화 가능한가

이주환   메이저 노사와 계층별 위원 간 대표성에 대한 입장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그 안에 사회적 대화에 대한 개념 차이도 있다. 지금까지 관행은 거래하는 거였다. 우리가 이거 내놓을 테니 너희는 저거 내놔라 식으로. 기존 노사정위원회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이해하는 대표성과 대화 방식을 지금의 경사노위는 사회적 대화기구로서 어떻게 바꿔야 할까. 

이남신   계층별 위원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용자 계층별 위원들도 역할을 하면 좋겠다. 소상공인, 중소·중견기업 위원 세 분이 우리랑 손잡고 함께하면 좋겠다. 특히 최저임금 관련해서는 여섯 명 계층별 위원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인상률만큼 중요한 게 을들의 연대이기 때문에 상생할 수 있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지, 사회적 공론화를 할 수 있는 유일하고 가장 의미있는 장이 경사노위라고 생각한다. 양대 노총이나 경총의 한계가 있지만 선임 대표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다만 대등한 수준으로 대표성을 보완할 수 있는 계층별 위원들의 역할을 어떻게 담보하느냐가 경사노위 승패를 좌우할 것이다. 경사노위 운영위원회 참관을 비롯해 운영구조 개선, 양극화와 사회안전망 확충 중심 의제 발굴 등이 대표성과 연동돼 있다고 본다. 누가 대표할 건지 단선적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김병철   ILO를 비롯해 국제적으로 합의된 노동기본권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사회적 대화로 모든 걸 해결하려다 보니 민주노총은 그걸 통해서 안 들어갈 명분이 역설적으로 생기는 거고, 노동계 입장에서도 부당거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패권을 계속 부린다면 양극화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다양한 주체들과 대화를 해나가는 것만이 올바른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인식해야 대표성 논의에 시비가 없을 것 같다. 국회도 사회적 대화를 존중해야 한다. 아무리 유의미한 합의가 이루어져도 국회의원들끼리 입법 처리해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다. 정치가 중요하다고 본다.

나지현   온갖 억측과 욕 먹어가면서 왜 경사노위에 참여하냐는 말을 듣곤 한다. 의미가 있을까 의문을 제기하지만 정부 공식 단위에서 얘기하고 방법을 찾아나가고 정책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의미 있다고 본다. 밖에서 소리 내는 것도 한계가 있다. 우리는 힘없고, 조직화되지 못한 이 사회 다수의 목소리를 대표하는 것이 아닌 대변하는 사람들이다. 대변을 잘 못하면 꾸짖고, 이런 걸 대변해달라 얘기하는 게 맞다. 양대 노총, 사용자들은 모든 걸 자기네가 다 내놓아야 할 존재라고 생각해서 사회적 대화를 안 하려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내 주머니에서 내놓아야 할 시기가 됐다. 촛불에서 얘기했던 사회 발전, 누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먹고 살 수 있는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사회적 대화기구는 필요하다. 진보적 생각을 하는 모두의 책임으로 여기고 함께 만들어 가면 좋겠다. 

김학태   당분간 경사노위의 실력에 맡기고, 비쟁점 의제부터 시작해서 가능한 합의부터 시작하면 좋겠다. 무리하게 합의했을 때 사회적 갈등이 더 커지는 것 같다. 사회적 대화라는 게 주고받는 게 능사는 아니지만 아예 안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노동조합에서는 정규직 임금 자제하고 하후상박하자고 제안하고, 우리는 정리해고는 허용 못하지만 다른 건 내놓을 수 있다, 사용자는 총 고용 보장해주고 뭐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싶다.

이조은   장기적으로 볼 때 사회적 대화는 문재인 정부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앞으로 강화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정권이든 잘 협의할 수 있는 기구가 되기 위해서는 제도를 갖춰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리고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꼭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노총 조직률이 앞으로도 계속 높아져야겠지만, 지금의 조직률로는 대변하기 어려운 90퍼센트 미조직 노동자를 위해서는 아직까지 경사노위가 중요하다. 계층별 노동자위원들도 언젠가는 경사노위에 돌아가겠지만 민주노총도 계층별 노동자위원들과 함께 하루빨리 참여하면 좋겠다.

이주환   문재인 정부는 정책 결정의 중요한 수단으로 경사노위를 활용한 것이다. 합의 공간이기보다는 사회 의제를 공론화하고, 발굴되지 않은 정책적 의제를 논의하기 위해 경사노위를 만들었다. 논의 과정을 보면 그런 형식에 맞는 변화는 잘 일어나지 않았지만 변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계층별 위원들과 노동계가 많은 변화를 만들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거나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지현   조합원이나 처음 만나는 젊은 사람을 대할 때 내가 말을 많이 하고 있지 않나 늘 고민한다. 자기성찰을 하게 되는데 상대의 말을 귀담아 듣고 존중하는 자세를 가지고 대화하면 좋겠다. 

이남신   나지현, 김병철 위원장과 같이 얘기하면서, 세 조직에서 협의하는 과정에서 많이 배웠다. 보통 내 이권만, 내 주장만 관철할 생각을 하지 상대방 얘기를 귀담아 듣고 타협점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계층별 대표들과 세 조직은 합의하는 과정이 있었다. 그 부분이 의미 있었다고 생각한다. 

김병철   우리처럼 대화를 편하게, 원활히 하면서 사회적 대화를 하는 건 순진하다고 보고, 뭔가 이권을 주고받는 건 실력 있는 대화라고 보는 오류의 함정이 만연한 것 같다. 나는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조은   비정규직, 여성, 청년을 대변하기 위해 고생하는 계층별 노동자위원들을 지지한다. 계속 응원하겠다.

이주환   6개월 동안 고군분투하며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쌓인 지혜들이 앞으로 경사노위가 개편되는, 숙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하는데 영향을 주면 좋겠다. 이상으로 오늘 좌담을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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